여성의 설득
메그 월리처 지음, 김지원 옮김 / 걷는나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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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는 신고율이 낮다. 피해자 대부분이 몸과 마음의 상처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보복이 두렵거나 2차 가해에 노출되기 때문에 신고를 꺼리는 이유다. 신고를 했다 해도 반복되는 진술은 끔찍한 기억이 아물기도 전에 들쑤시는 더 큰 폭력이다.

 

최근 할리우드에는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문 폭로로 미투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여파는 한국에까지 불어와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었다. 페미니즘 역사 중 세 번째 물결이 일어나고 있다고 봐도 좋다. 예리한 시선으로 풀어낸 현대 여성의 서사를 소설 《여성의 설득》에서 만날 수 있다. 소설의 가능성과 반향을 알아본 배우 '니콜 키드먼'이 영화 제작을 발표하며 더욱 화제가 되었다.

 

 

"다음 경험을 향해서 뛰어들어요. 당신의 목소리를 써보려고 노력하는 게 어때요? 난 가끔 세상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은 스스로 외향적이 되는 법을 익힌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P66

 

이 이야기는 예일 대학교에 합격하고도 부모의 실수로 변두리 대학에 입학한 '그리어'를 다룬다. 학교 파티에서 성범죄가 '대런'에서 성추행을 당하게 된다. 알고 보니 그리어 말고도 이미 다수의 여학생이 피해를 받았지만 학교는 가만히, 조용히 있으라 한다. 이에 반박한 그리어는 징계위원회를 소집하도록 요구하지만 힘과 권력의 벽 앞에서 무력함을 감출 수 없다.

부당한 학교의 처사에 속만 앓고 있던 그리어는 우연히 친구를 따라 간 강연에서 여순 세 살의 페미니스트 '페이스 프랭크'의 강연을 듣고 감복한다. 그녀는 여성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 어떻게 자존감을 지키고 권리를 목소리를 내어야 하는지 알려준 진정한 어른이었다.

"어디서 일을 하든 나도 뛰어들어서 뭔가 진정한 일을 하고 싶어. 내가 정말로 열정을 가질 수 있는 걸로" P185

 

 

시의적절한 소설은 마치 내가 겪은 이야기, 내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성차별과 혐오에 관한 이야기다. 여성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좋은 멘토를 만나 성장하는 이야기이기도하다. 숨겨야 미덕이었던 여성의 권력과 야망, 권력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직시하는 눈을 길러준다. 지금 바다 건너 미국이 아닌 대한민국에 사는 여성들에게도 통하는 보편적인 가치다.

 

 

소설 속 캐릭터들이 처한 사항은 각기 다르지만 한 가지로 귀결된다. '행동하라!' 이는 비단 여성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장애인, 노동자, 성소수자, 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 각계각층의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귀를 열고 들어볼 것을 촉구한다.

 

 

페미니즘의 역사의 '제1물결'은 여성의 권리, 즉 참정권을 촉구한 운동 '서프러제트'였다. 1960-70년대의 여성운동은 제2의 물결 페미니즘이라고 불린다. 다양성과 개인의 자유에 초점을 맞춘 제3물결 페미니즘은 1990년대부터 시작되었는데 지금까지 유효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미투 운동으로 제4의 물결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미국이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낯설지 않은 기시감을 갖는 이유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사정도 다르지 않기 때문일 거다. 대한민국은 세월호 사건에서 익히 들은 바 있다. 정부나 권력의 힘에 휘둘리지 말고 주관을 가지고 행동하란 것. 안전하니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에도 밖에 나가 상황을 파악하고, 언제 올지 모를 구조대를 구하는 대신 직접 행동하는 일이 필요하다. 무엇인가 읽고(보고) 침묵했다면 암묵적인 동의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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