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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김종관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평점 :

김종관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일단 영상미가 좋기
때문이다. <최악의 하루>, <더 테이블> 둘 다 여름밤의 냄새까지도, 실내의 무거운 공기까지도 여실히 보여주는 화면이
인상적인 영화다. 그래서 감독의 작품 세계와 일상이 궁금해졌다. 선뜻 책을 읽었던 계기기도 하다.
내 기억의 김종관 감독은 몇 해 전 읽었던 책
《라이카, 영감의 도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카메라 프레임에 정지된 화면을 담기를 좋아하는 감독이기도 했다. 이 책에는 그가 찍은 듯한 사진도
수록되어 있다. 몽환적이이면서도 슬픈, 그러나 따뜻한 사진들이 툭하니 읽다 보면 등장한다.
관객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의 더듬거리는 말솜씨와 허접하고 실없는 농담도
열심히 들어주고,
시끄러운 음악 소리, 소음의 와중에 눈은 마주치지
않아도 몸을 비스듬히 세워 귀를 기울이며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좋은 친구들.
P132
영화를 보러 기꺼이 와주는 관객을 향한 러브레터
같다. 영화와 함께한 10년의 기록을 나눈다. 에세이를 통해 더 가까이 알아갈 수 있었다. 제목처럼 당신과 가까운 곳에 서 있는 기분이다.
가난한 집에서 자라며 부잣집 아이를 동경했던 어린 시절. 짝사랑의 취향이 바뀌던 아이의 몸에 난 화상 자국.'아름다움을 보고, 부러진 날개를
보았을 때, 그때 비로소 좋아하는 마음이 깊어진다'라는 말. 자꾸만 곱씹어 보아도 아련하고 잊히지 않는 말이다. 상대의 상처까지도 보듬어 줄 수
있을 때야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겉모습에 치여 내면의 아름다움을 알아가기 힘든 요즘, 참 와닿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책은 김종관 감독의 시나리오 씨앗들이 즐비하는 씨앗
컬렉션 같다. 왜냐면. 짧은 글이지만 길게 늘어트려 놓으면 한 편의 단편이 될 것 같은 묘한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다. 씨앗을 저장해 놓았다가
언제든지 물을 주고 볕을 보여 나무로 성장시킬 가능성이 농후했다. 어쩌면 에세이 속 일들이 영화화되어 스크린에서 만나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아마도 이후 김종관 감독의 신작을 볼 때면 조금은
다르게 보일 것이다. 그 사람의 모든 것인 것 마냥. 영화라는 속성으로만 그 사람을 판단하고 있었다. 일종의 편견이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대로,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이게 감독들의 에세이를 읽는 맛인가 보다.
몇 해전 '데이빗 린치'감독의 에세이 《데이빗 린치의
빨간방》을 읽었을 때도 그랬다. '이경미' 감독의 《잘돼가? 무엇이든》이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도 그랬다.
이렇게 영화감독의 에세이를 하나 더 추가했다. 앞으로 더 감독의 사적인 생각이 궁금하다. 더 많은 감독의 사생활을 알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