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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멸종 위기인 줄도 모르고 - 예민하고 소심해서 세상이 벅찬 인간 개복치의 생존 에세이
이정섭 지음, 최진영 그림 / 허밍버드 / 2019년 8월
평점 :

개복치는 복어목의 물고기며, 돌연사 전문 생물이라 한다. 하지만 이보다 사람 얼굴을 본떠 생겨 일본에서는 민간설화의 대상이기도 하고, 성어가 되어 바다로 나가면 그래도 단단한 멘탈로 살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어릴 때 염려 때문에 죽고, 겁먹어서 죽고, 예민해서 죽고. 인간 개복치를 선언하는 주의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나도 소심하긴 한데..'
소심함의 기분이 무엇일까? 구매한 물건이 뜯어보니 상세 페이지와 다르거나 흠집이 나있었다. 화가 나서 환불하고 싶다. 그래도 그 사람이 싫어하거나 안 해줄까 봐 그냥 넘어가는 일? 식당에 가서 단체로 주문한 음식 중에 내 음식만 안 나온다. 그래도 그냥 마냥 기다리는 일? 사람마다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행동 참아가며 집에 가서 이불킥하는 수치가 다르다. 집에 와서 뒤늦게 후회한다. 그때 할걸, 살걸, 말하고 넘어갈 것. 불이익이 조금씩 쌓이면 당신의 정신 건강까지 좀먹을지 모른다. 마치 살짝 만 닿아도 죽고 마는 개복치처럼. 당신은 인간 개복치인가?
저자는 기자이기도 했고, 잡지사의 에디터를 거쳐 마케터로 일하고 있다. 혼자서 일해도 상관없는 만화가, 소설가, 연구원, 학자 등등이 아닌 사회생활이 필요한 사람이다. 기자란 처음 보는 사람과의 말도 능수능란하게 섞어야 하며, 뻔뻔하게 가지 말라는 곳에 들어가고 사진을 찍으며 약간의(?) 말싸움,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아야 하거늘. 이 소심한 남성이 어찌 기자로 일했을지 궁금했다.
저자는 자신을 예민하지만 공생을 꿈꾸며 순수한 개복치에 비유한다. 20 대에는 개복치처럼 유리 멘탈의 극치를 달렸지만 마흔. 이제는 당당히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하고 개선의 여지를 이야기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역시 사람은 나이가 들면 무던해지는 걸까? 지혜를 얻는 걸까? 무엇이든 상관없다.

저자가 겪었던 에피소드를 읽다 보면 입가에 '피식'하고 웃음기가 서린다. 무심한 듯 시크한 동네 카페에 자주 갔는데, 정말 이곳이 좋아 잡지에 글을 써냈더니 그 후로 사장님이 환대와 관심에 떠났다는 이야기. 반대로 친구들과 혼자서도 자주 갔던 술집의 바텐더가 꾸준히 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만 몰라보는 무관심에 비친 이야기. 듣다 보면 나도 저런 적 있는데 하면서 공감하고 있다. 이런 게 바로 에세이 저자와의 궁합이 맞는 독서임을 실감한다. '아.. 이 저자 글맛 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