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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의 과학 - 하나의 세포가 인간이 되기까지 편견을 뒤집는 발생학 강의
최영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7월
평점 :
발생학이란 생소한 학문, 책은 하나의 세포가 하나의 개체로 변화하는 과정을 공부하는 생물 분야 발생학을 쉽게 재미있게 접근한다. 동물 배아를 조용히 관찰하며 시작한 발생학은 실험실에서 구현해내는 연구의 범위를 넓혔다. 줄기세포의 무한한 가능성처럼 나를 만드는 과정을 탐구하는 것과 비슷하다. 하나의 세포가 인간이 되기까지 편견을 뒤집는 발생학 강의를 들여다보자!

《탄생의 과학》은 정자와 남자의 만남을 시작으로, 자연유산, 임신중독, 여성의 몸, 줄기세포가 발달해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 등이 담겼다. 깊은 정보를 제공한다기보다 얕지만 이해 가능한 대중과학을 위해 쓰인 듯하다. 과학의 권위를 내려놓고 쉽게 설명하기 위하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중간의 삽화나 사진뿐만 아니라 존대어를 사용해 과학자가 직접 설명해 주는 듯한 느낌이 배가 된다.
임신중독은 전자간증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도 2004년이 되어서야 전자간증의 원인은 50퍼센트 이상이 유전적 요인이라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어떤 유전자가 어떤 식으로 병을 일으키는지는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엄마 몸속에서 영양분을 섭취하는 아이는 엄마의 자원과 보호 없이는 온전히 태어날 수 없다. 하지만 임산부가 겪는 변화에 대해서는 실험실도 지원도 부족한 현실이라고 한다.
저자는 모성애라는 단어 아래 엄마의 고통과 인내, 희생이 당연시되어야 한다는 암묵적 합의가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앞으로 과학적 검증된 조언, 임신 중과 출산 후에도 나타나는 변화들에 대한 연구, 출산 후 겪는 크고 작은 질환들에 대한 서비스가 진행되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임신과 출산의 그늘이다. '내가 언제 태어나게 해달라고 했어?'라며 부모에게 날선 말을 던졌던 날들을 반성한다. 배 속 아기가 항상 천사가 아님을 상기시켜주는 책이다.
또한 어디서도 배워본 적 없는 교과서 밖의 과학도 흥미롭다. 지금까지 정자 혼자서 열심히 헤엄쳐 자궁 속 난자와 결합하는 게 수정이라고 배웠다면. 이 책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과학은 틀에 박힌 생각의 저장소에서 나오면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정자는 혼자 경주하지 않고 수정이 되기까지 자궁 근육이 돕는다. 난자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난자는 화학 물질을 내뿜어 정자가 쉽게 올 수 있게 유도한다. 정자는 올챙이처럼 꼬리를 흔들며 지그재그로 나아가지만 수정 능력을 획득한 후 머리와 꼬리를 빙글빙글 돌면서 헤엄친다.
난자는 흔히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다고 배웠지만, 여성이 몸에 갖고 태어나는 난자는 미성숙 난자다. 그중 완전한 성숙을 마친 난자만이 배란되어 정자와 만날 수 있다. 이 난자들은 사춘기부터 폐경까지 한 달 주기로 성숙하며, 난포 자극 호르몬 양이 급격히 줄어 의존도가 낮은 난자 하나만 살아남는다. 다른 미성숙 난자는 퇴화한다. 그러니 이미 정자를 만나기까지는 올림픽보다 어렵다는 양궁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과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세상에 쉬운 건 하나도 없다.

황우석 박사로 줄기세포에 대한 대한민국의 관심은 크다. 논문 조작 사건 15년이 가까워진 지금, 줄기세포 연구는 어디까지 왔는지도 알 수 있다.
줄기 세포라 몸을 구성하는 모든 세포가 유래된 세포라고 이해할 수 있다. 줄기세포는 자신과 똑같은 줄기세포를 만들기도 하고 우리 몸을 구성하는 여러 세포가 되기도 한다. 특정 세포가 되는 '분화능력'을 갖는데 이를 통해 불치병 치료도 가능하다.
그런데 줄기 세포라 해도 다 같은 줄기세포가 아니란다. 다양한 세포가 될 수 있는 발달 잠재력을 줄기세포는 갖는데, 크기에 따라 등급을 매긴다. 가장 높은 등급은 전능성, 한 단계 아래는 만능성 또는 전분화성이라고 한다. 그 아래는 다능성이다. 세포는 처음에는 전능성을 갖다가 만능성을 갖고, 마치 어릴 적 꿈이 점점 현실화되듯 만능성을 잃고 특정 세포가 되어간다.

때문에 만능성을 가진 세포들은 태아를 구성하는 세포만 만들 수 있다. '배아 줄기세포'란 만능성 세포를 꺼내 실험실에서 배양해 만든 세포다. 즉, 배아 줄기세포는 우리 몸 그 어떤 세포로도 분화할 수 있는 높은 발달 잠재력을 지녔다. 때문에 불치병 치료를 위해 거부반응을 최소로 하는 환자와 유전적으로 똑같은 인간 배아를 만들어 복제한다. 이 부분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모든 장기를 실험실에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사실상 모든 장기에서 가능하지만 아직 노력이 필요한 단계다. 만약 오가노이드가 발전한다면 실험실 쥐나 동물들의 희생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다. 미디어에서 부풀려지거나 막연하게 보도되는 기사의 이면을 정확하고 흥미롭게 살펴볼 수 있다. 과학은 생각보다 더디다.
흔이 과학은 진실로 간주된다. 과학적 사실이라는 테크가 붙으면 맹목적으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과학적 사실은 진리가 아닌, 과학자들이 여러 방법으로 도출해낸 실험 경과를 서로 합의한 의견에 불과하다. 때문에 이미 오랫동안 믿어온 사실도 몇 년, 몇 십 년 후에 얼마든지 새로운 질문을 던져 개진할 수 있는 매력적인 분야다.
책을 통해 발생학이라는 분야를 알게 되어 기쁘다. 더불어 오도하고 있던 정보도 수정할 수 있었다.'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있기까지 얼마나 긴 여정이 있는지 곱씹어 보기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