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청소부 매뉴얼
루시아 벌린 지음, 공진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7월
평점 :
예술가들의 슬픈 현실은 생전 좋은 평가나 경제적 부를
누리지 못하고 사후에 재평가된다는 것이다. '루시아 벌린'도 그랬다. 사후 11년 만에 문학 천재라는 수식어로 전 미국 언론이 극찬했고, 표제작
《청소부 매뉴얼》로 한국에서 첫 발간되었다.
"차를 타고 지나가는 부자들은 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절대로 보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은 차를 타고 지나다니면서 늘 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본다. (중략) 가난한 사람들은 많이 기다린다.
사회보장연금 수령, 실직수당 신청, 빨래방, 공중전화, 응급실, 감옥, 기타 등등. "
표제작 《청소부 매뉴얼》부터 들여다봤다. 자신의
경험담처럼 생생한 묘사와 날선 블랙 유머의 진수였다.
청소부를 고용한 부인들의 집에서 대부분 사소한 물건을
훔친다. 마치 전리품처럼 꺼내놓고 자랑하기도 하고 고용주를 걱정하기도 한다. 고학력 블루칼라인 '매기 메이'의 눈을 통해 하층민의 삶과 부자들의
위선을 들여다볼 수 있다. 주인공 '매기 메이'는 수면제를 훔쳐 모은다. 만약을 대비한다는
이유로..
매기 메이는 자신이 청소하는 집들을 돌며 매뉴얼을
완성한다. 매기 메이는 각 집마다의 특징을 요약해 이렇게 말한다. 대부분의 미국 여자들은 하인을 두는 것을 매우 불편하게 여기며, 청소부가
있으면 뭘 해야 할지 모른다. 반면 유대인 집이나 흑인 가정은 점심을 챙겨주기까지 하며 직업을 존중해 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고용주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매뉴얼 중 인상적인 점은 앞으로 해방된 여성을 많이
볼 것이라 말한 대목이다. 첫째는 여성의식 함양 모임, 둘째는 청소부, 셋 째는 이혼이다. 마치 선언하듯 여성의 권리를 적어 두었다.
《청소부 매뉴얼》은 영화 <헬프>를 보는
듯했다. 60년대 미국 남부, 흑인 가정부는 백인 주인과 화장실조차 같이 쓸 수 없던 시절. 흑인 보모와 큰 유지니아가 그들의 삶을 책으로 완성
시키는 감동의 이야기다. '캐슬린 스토킷'의 동명의 소설이 원작이다.
작가의 기구한 삶을 들여다보면 청소부는 작가 자신임을
알 수 있다. 《에인절의 빨래방》에서는 언젠가 마주친 인디언을 《H.A 모이니핸 치과》의 소녀와 할아버지의 그로테스크함은 아마도 유년시절의
기억일 테다.
서부의 탄광촌과 칠레에서 보낸 10대 시절, 버클리와
뉴멕시코, 멕시코시티에서의 생활은 단편 곳곳의 배경이 된다. 고등학교 교사, 전화 교환원, 병동 사무원, 청소부, 내과 간호보조 등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를 오가면 세 번의 결혼 실패 후 싱글맘으로 네 아이를 키우면 겪은 경험을 녹여내 소설을 썼다. 평생 척추옆굽음증과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다 2004년 암으로 사망했다. 인생의 그늘 속에서도 틈틈이 76편의 단편을 써냈다.
늘 자신의 고통과 불행에 천착해 음울하고도 직선적인
시선으로 글을 썼다. 죽음, 차별, 병, 가난, 우울, 아이러니 등 슬픔을 주제로 다양한 사람들의 삶 속에 들어간다. 아마 그녀에게 글쓰기는
치료이자 자기반성, 고통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자 했던 발버둥이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