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픽스
워푸 지음, 유카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6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9/0702/pimg_7650201492233077.jpg)
소설이 채 나오지 않았는데 독자들의 피드백이
전해집니다. 결말에 문제가 있다는 한 통의 메일. '아귀'라는 필명의 네티즌, 진범은 작가가 설정한 인물이 아닌 소설에 등장하는 또 다른
인물이랍니다. 그리고 소설 속 허점을 하나하나 반박합니다. 그가 고쳐나가는 소설, 그리고 미스터리하고 기묘한 분위기. 아귀는 대체
누구일까요?
아귀의 이번 답신은 조금 늦게
도착했고,
그렇게 짧고 간단하지도
않았다.
저는 아정의 바지에 묻은 다차오 난간의 흙먼지,
사체의 위치, 당시 둘 사이에 싸움이 잦았다는 소문 그리고 아정이 헤어지자고 담판 짓기 위해 한밤중에 샤오치를 불러낸 것 등 이 몇 가지가 모두
샤오치가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뚜렷이 가리키고 있다고 봅니다.
예상외로 흥미로웠다. 아귀가 언급한 이 몇 가지가
그녀와 다수의 네티즌이 샤오치가 범인이라고 여기게 된 단서인데, 같은 내용을 보고도 아귀는 전혀 다르게 해석한
듯했다.
그렇다면 독자님께서는 누가 아정을 죽였다고
보시나요?
아귀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아정은 자살한
겁니다.
창작자는 범인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네티즌이 제시한 증거가 뒷받침되면서 창작자의 근간이 흔들립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대응할 건가요?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 다른 추리소설을 놓고
벌이는 토론이 《픽스》 자체가 하나의 추리소설이란 결론입니다.
소설 속에 또 다른 소설이 있는 액자식 구성을 취하며
7편의 단편소설이 소설의 형식으로 창작 기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추리소설이 사회체제를 드러내고 깊은 인간 내면의
심리를 비추는 등불이란 점이 매력으로 작용합니다.
7편의 단편은 지난 30년간 타이완에서 일어난 범죄
사건을 모티브로 하는데, 범인들이 하나같이 누명을 썼다는 점에서 완벽한 논증의 추리력을 발휘하는 흥미로운 소재입니다. 책의 제목인 '픽스'는
'FIX, 고치다'라는 단어처럼 작품을 고치고 보완한다는 의미, 마음 깊이 기억한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예전에 드라마나 영화를 네티즌과 함께 만들어가는
형식이 있었습니다. 결말 부를 멈춰두고 다음 회차를 쌍방향 소통을 통해 만들어가는 묘미인데, 요즘처럼 바로바로 피드백을 공유할 수 있는 세상에서
시도해 봄직한 새로운 콘텐츠였죠.
직접 만들어보는 결말. 독자와 창작자의 공동 창작물의
기쁨과 독특함을 느낄 수 있는 참여하는 글쓰기의 묘미를 더해 줍니다. 급기야 소설도 작가의 전지전능함이 무너지는 시대의 편승한 잡업 방식이며,
이야기의 힘, 타이완의 사회문제를 짚어주는 아카이빙이란 다양한 결과물입니다.
추리소설, 범죄소설의 계절 여름. 그리고
휴가철입니다. 우리가 잘 몰랐던 대만 사회의 생소함, 추리소설의 쫀쫀한 구성, 독자가 직접 참여한다는 발상이 독보적인 작가 '워푸'의 소설
《픽스》. 휴가지에 데려갈 북캉스 책으로 추천합니다. 당신의 상상력의 한계를 시험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