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구라치 준 지음, 김윤수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터무니없는 제목, 기이한 사건, 묘하게 설득되는 논리. 제1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작가 '구라치 준'의 소설집은 여름맞이 독특한 책을 원하는 독자들을 위한 환상특급열차입니다. 6편의 웰메이드 소설들은 한 여름 더위와 시간을 순식간에 뺏어날 것입니다.

 

이 책은 본격 정신줄을 붙잡아야 하는 기묘한 이야기입니다. 일상 미스터리부터 반전, 바카미스(황당무계하고 말도 안 되는 트릭을 사용하는 미스터리), 패러디, SF적 상상력인 '네코지마 선배'시리즈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으로 장르 소설에 목마른 독자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6편의 이야기 중 표제작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은 부질없는 망상이 패망 직전 일본의 시대적 과오와 어떻게 맞물리는가를 보여주는 통렬한 블랙 코미디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끝자락 일본은 전세에 밀려 발악하기 일보 직전입니다. 학도병으로 징집 당한 이즈카는 대학 자전거 동아리에 소속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작은 실험실로 차출 당했습니다. 여기서 하는 거라고는 보트 안에 있는 자전거 페달은 밟고 또 밟는 것뿐. 나머지 2명과 3교대로 24시간 돌릴 뿐입니다.

 

폐쇄적인 공간, 밖은 폐전의 기운이 감돌고, 그 어디로 도망갈 수도 없습니다. 이 장치를 고안한 괴짜 박사는 이 장치가 전쟁에 승리할 강력한 무기라고 주장합니다. 이야기인즉슨 무동력인 장치에 다량의 폭약을 넣어 거리를 무시하고 원하는 전장에서 순식간에 전위시킨다는 겁니다. 위치가 바뀌고 공간을 달려 즉시 이동하는 공간 전위식 폭격 장치인 셈. 공간을 달려 어디든 폭탄을 떨어트린다는 발상입니다.

 

그런데 그날 밤, 한 학도병이 페달을 밟다가 변사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시체를 발견한 건 아침 교대를 위해 나타난 이즈카. 이즈카는 순식간에 범인으로 몰리지만 모리 이등병의 논리로 겨우 모면합니다.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찍혀 죽었다는 주장은 이어질 말도 안 되는 폭격 장치의 작동을 뒷받침할 잘 못 된 논거이며, 독자의 시선을 돌리는 맥거핀 입니다.

 

광기에 휩싸인 사람들은 사리분별이 어려워짐은 물론 말도 안 되는 궤변도 논리화되는 이상한 나라에 들어 왔습니다. 소설은 밀실이 주는 폐쇄성과 전쟁이란 상황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장르적 쾌감을 선사합니다. 추리를 하되 추리하는 자체가 미스터리. 엉뚱하지만 치밀한 복선은 작가의 차기작을 기대하게 합니다.

 

"천장을 똑바로 보고 쓰러진 피해자. 그 입에 꽂힌 길고 하얀 대파. 그 기묘하고 초현실적인 광경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허무하게도 이 이야기는 논제 자체가 잘 못 되었기 때문에 답 또한 정답일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잘 못된 이야기에 어떤 이유를 갖다 붙여도 말은 되는 겁니다.

 

 

말장난도 도에 지나치면 미친다고요? 농담에 왜 진지하게 대하냐고요? 그야 어쩔 수 없습니다. 삶은 거대한 미스터리입니다. 인간의 기이한 상상력을 쫓아가는 환상특급열차에 탑승하실 승객을 모집합니다. 올여름 에어컨 없이도 버틸 준비되었습니까? 뭐가 걱정인가요? 이 책 한 권이면 바로 기묘한 나라로 떠나는 프리 패스를 얻은 거나 마찬가지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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