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 아파트 웅진 우리그림책 52
백은하 지음 / 웅진주니어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 가끔 그림동화를 봅니다. 텍스트의 바다에서 그림 동화는 표류하던 쪽배가 만난 구조선 같습니다. 쥐어짜내고 떠오르지 않고 어찌어찌 분량은 채워야 할 때 그림책은 또 다른 영감을 주기도 하고, 기분 전환을 시켜주기도 합니다.

 

최근 본 그림책은 백은하 작가의 《꽃잎 아파트》입니다. '꽃 그림'으로 잘 알려진 백은하 작가는 곱게 말린 꽃잎 위에 연필이나 펜으로 그림을 그려 작품을 만들어 왔습니다. 생명이 지나간 잎맥 하나하나가 그대로 들여다 보이는 꽃잎은 그 자체로 훌륭한 오브제가 됩니다.

 

 

내용은 아파트 즉, 공동주택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유머러스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생각하는 부분이 다를 겁니다. 결국 아파트란 한정된 공간 안에서 가깝게는 가족, 학교, 친구 성장해 직장과 사회에 나가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내용이거든요. 보고 나면 마음이 담뿍 따스해질뿐더러 아파트에서 지켜야 할 예절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됩니다.

 

 

시들어가던 꽃잎 아파트에는 부스러기를 흘리고 다니는 돼지, 집안에서 쿵쿵대며 운동하는 캥거루, 틈만 나면 낙서를 즐기는 원숭이, 화단에 들어가 놀기 좋아하는 강아지, 화단을 망치는 걸 싫어하고 몸단장을 즐기지만 재활용에는 젬병인 공작, 분리수거하느라 힘들지만 스트레스를 띵똥 띵똥 피아노 치기로 풀어내는 문어, 그 문어 때문에 잠 한숨 못 자는 코끼리, 코끼리의 비밀스러운 취미 엘리베이터 버튼 모두 누르기 때문에 1층에서 오래 기다려야는 동물 친구들, 이들은 틈만 나면 싸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소녀가 이사 오면서 아파트는 변화죠. 소녀는 작은 씨를 뿌리고 매일매일 꽃을 가꿉니다. 꽃이 피고 꽃향기가 아파트 전체에 퍼질 때 동물 친구들은 '네 탓이야'라던 마음이 '네 덕분이야'란 말로 바뀌었습니다. '나만 괜찮으면 돼'라는 이기심이 연쇄적인 피해가 되었던 전반부와 달리 소녀로 인해 후반부는 아름다운 꽃내음이 가득한 아파트가 됩니다.

 

아파트는 이제 한국인의 희로애락이 담긴 주거지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좁은 땅에 효율적으로 많이 살 수 있는 형식인 아파트는 부작용도 많았습니다. 한 집에서 일어나는 일은 옆집, 윗집, 아랫집에 피해를 주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취미도 누구에게는 참기 힘든 고통이 되기도 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층간 소음입니다. 서로 다투기도 하지만 또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는 게 아파트의 속성입니다. 누구나 가해자와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공동 생활을 말린 꽃잎으로 아름답게 표현한 우화가 뭉클하게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특히, 자세히 보면 꽃잎의 아름다움에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드라이플라워는 또 다른 말린 꽃잎 위에 수놓은 연필과 펜 선. 그리고 수채화 물감이 메마른 감성에 촉촉한 물기를 줍니다. 

 

네모난 아파트가 겉보기엔 모두 똑같아 보여도 집집마다의 사정을 각각 다르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어요. 바람 잘 날 없는 아파트 주민들의 이야기가 말린 꽃과 어우러져 꽃잎 아트란 독특한 장르가 되었습니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고 생기로운 하루를 시작하기 그만인걸요? 가성비 최고! 환상의 나라로 다녀온 것 같은 행복한 기분, 피로하던 오늘 하루 카페인이 필요 없는 기분전환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