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맨션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누굴까. 본국 사람도 아니고 타운 사람도 아닌 우리는 누굴까.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성실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면 뭐가 달라지지? 누가 알지? 누가, 나를, 용서해 주지?"

 

 

《82년 생 김지영》 조남주 작가의 신작 《사하맨션》. 이번엔 어딘가에 있을 법한 소국가 타운과 사하맨션을 배경으로 근미래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합니다. 타운은 거대 기업인지 국가인지 인 수 없는 이상한 도시국가입니다. 7명의 공동 총리단이 꾸려가는데 무분별한 밀입국을 막기 위해 주민 자격을 두고 있죠. 세계에서 가장 작고 폐쇄적인 도시국가에서 유일한 통로 혹은 비상구는 사하맨션입니다.

 

 

타운에는 주민인 L 과 2년마다 체류권을 받는 L2가 있습니다. L2는 대부분 건설 현장, 물류 창고, 청소업에 같이 힘들고 보수가 적은 블루칼라입니다. 이마저도 안되는 밑바닥 계급을 '사하'라 부르는데요. 절대 오를 수 없는 계급, 집도 없고 일할 곳도 마땅치 않는 사람들은 사하맨션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360여 페이지의 소설 속에 인물들이 등장하고 사라지는 묘사와 얽힌 관계의 직조가 세밀합니다. <설국열차>에서 계급구조를 꼬리칸에서 머리칸까지 수평적 진격을 보여줬다면, 《사하맨션》은 맨 아래부터 꼭대기까지 피라미드 구조의 상층을 수직으로 오릅니다. 30 년이란 세월 속에 우두머리를 만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하들이 사라졌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디스토피아 소설 그중에서도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 올더스 헉슬리가 예견한 《멋진 신세계》가 생각나는 비범함입니다. 조남주 작가가 디스토피아 장르에도 재능이 있지 몰랐습니다. 흡입력이 큰 페이지터너이자 부조리를 고백하는 르포입니다.

 

 

  

 

한 층 한 층 30 년 동안 들락날락 한 사하맨션의 주민들의 사연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계급의 끝자락, 회생할 수 조차 없어 밀려난 사람들이 모여사는 이곳은 죽어서도 나가지 못할 지옥입니다. 타운을 위해 소모품으로 전락한 인생. 그들을 구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읽는 내내 답답하고 희망이란 없는 빛도 끝도 없는 터널을 지나 온 기분입니다.

 

 

얼마 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절대 바뀔 수 없는 계급을 계단을 통해 수직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더 정말 공포스러운 것은 어딘가에 사하맨션이 있을 것 같은 기시감입니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리얼리즘이 꽤나 불편하고, 여운이 오래가는 이유입니다.

 

아마 소설의 배경처럼 가까운 미래가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엔 사하맨션이 존재할 겁니다. 강한 연대로도 절대 뚫을 수 없고, 사랑으로도 이룰 수 없는 강력한 계급 차이, 《사하맨션》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바로미터이기도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