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찰살인 - 정조대왕 암살사건 비망록
박영규 지음 / 교유서가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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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규 작가의 책을 처음 접한 건 《한 권으로 읽는 일제강점실록》 이어 《조선반역실록》입니다. 그 이후 22년간 출판한 '한 권으로 읽는 역사'시리즈는 역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단연코 엄지척을 외칠 수 있는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았죠.

박영규 작가의 신작 《밀찰살인》은 정조 암살을 예견한 의문의 살인사건을 쫓는 오유진과 정약용을 캐릭터한 역사소설입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CSI 뺨치는 전문성과 술술 넘어가는 전개는 페이지터너의 성격이 강한 재미를 안겨줍니다. 어디까지가 역사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경계없는 이야기가 흡입력 있게 쓰였습니다.

"주상의 표정은 항상 내면을 짐작할 수 없을 때가 많았다. 무섭게 화를 내거나 매몰찬 인상 뒤에 생각하지 못한 배려가 감추어져 있기도 했고, 온화하고 따뜻한 말투 뒤에 차갑고 무서운 의도가 숨겨져 있기도 했다."

정조는 세종 다음으로 추대한 성군이지만 그 죽음은 미스터리로 남아있습니다. 그만큼 정조를 주인공으로 한 다양한 작가적 상상력이 따를 수밖에 없고, 독살이란 가능성이 가장 많이 제기되는 군주기도 합니다. 결국 가장 유력한 암살설이 뿌리 약한 남인 세력과 맞붙어 어떻게 풀렸을지 재구성한 이야기가 흥미롭게 전개됩니다.

정조는 붕당 핵심 인사들과 밀찰을 주고받았는데 그중에서도 '심환지'에게 보낸 밀찰이 300여통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는 왕권을 강화하고 붕당간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처세술이였습니다. 비밀 편지는 발신자를 표시하지 않았고 읽는 즉시 태워버리라는 명령의 서신이었습니다만. 어떻게 지금까지 남아있는지 불충을 저지른 심환지에게 박수를 보내야 할 판입니다.

한편, 몰락한 남인 가문을 다시 세우고 정계로 진출시켜 준 정조를 군주로 모시는 정약용, 우포청 포도부장 오유진과 은밀히 살인 사건을 조사하란 정조의 부름을 받습니다.

 

"누구든 가장 잘하는 일 때문에 화를 입는 법.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위험한 법이니까."

정조는 당시 심한 부스럼과 피부병으로 자신이 병에 걸렸음을 시인합니다. 아버지 장헌세자(사도)의 죽음, 자신의 죽음을 끊임없이 위협받는 불안, 일에 미친 워커홀릭은 건강에 적신호가 들어오기 안성맞춤이었죠. 정조는 자신이 믿었던 신하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임을 당하자 충격을 받습니다. 병을 낫게 할 처방을 알아오라 명하고 이로써 한지 장인 부부, 아끼던 정민시의 죽음까지 연결된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합니다.

팩트체크를 감히 할 수 없게 만드는 저자의 능수능란한 필력, 마치 조선시대에 현대 탐정을 보는 듯한 추리력, 시체 검시관이나 부검의도 놀랄만한 조선시대의 의학은 독자의 혼을 쏙 빼놓기에 충분합니다. 역사를 잘 모르는 독자라도 캐릭터화된 실존인물을 따라가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될 겁니다. 마치 영화를 보듯 선연한 텍스트가 그 현장에 들어가 있는 듯 생생하고 속내를 알 수 없다던 정조의 심리를 내밀하게 들여다보는 팩션입니다.

덧, 여기서 '밀찰살인'이란 정조가 은밀히 각 붕당 신하에게 보낸 편지를 말하는 것이고, 왕권에 도전하지 못하게 만드는 족쇄이자 정치적(정신적) 살인을 뜻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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