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아메리카 JGB 걸작선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 지음, 조호근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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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어딘가에서 찾아내게 될, 과거에 아버지였고 미래에도 아버지일 사람에게. 서부의 금빛 낙원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그 사람에게. "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엘리스 섬에서 리버티섬의 자유의 여신상을 바라보던 수많은 이민자들이 떠오르는 소설입니다. 세계의 경찰, 경제대국 1위 미국이 사라진다면 어떨까요? 세계는 대혼란을 겪을까요? 아니면 오히려 평화롭고 평등한 세계로 재편될까요?

소설 《헬로 아메리카》는 2114년 에너지 고갈로 무너진 미국으로 출항한 유럽 탐사대 아폴로호( 소설 속 우주선의 이름과 같다)에서 시작합니다. 그들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감지된 방사능 수치 증기 원인을 찾기 위해 도착했는데요. 마치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할 때처럼 폐허가 된 엘도라도에 당도한 제2의 콜럼버스들입니다.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는 다사다난했던 개인사를 글로 녹여내는 독창적 언어의 작가입니다. SF 우주 개념을 '내 우주'롤 전환한 문학성. 이와 같은 밸러드만의 특별함은 '밸러드풍'이란 신조어를 탄생시키기도 했습니다.

스팀펑크 장르라고 할 수 있는 증기선의 등장은 영화화되었을 때 비주얼을 기대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견인차가 됩니다. 석유 고갈, 전기 없는 시대. 원시시대나 산업혁명 이전 상태로 돌아가야 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황금빛으로 물든 녹슨 다리들과 말라버린 허드슨강, 형태만 유지하고 있는 자유의 여신상, 로스앤젤레스 등등 화려함의 극치인 미국을 어떤 폐허로 그려낼지 기대됩니다.

"나는 미합중국을 재생하려는 꿈을 피력하려 애썼지만, 그는 내가 한심할 정도로 무모하며, 상표명과 무한한 성장이란 유아적인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고 여긴다. 그는 미키 마우스와 메릴린 먼로 같은 과도한 환상이 옛 미합중국을 죽였다고 생각한다. 최신 정밀 기술이 일회용 카메라 같은 한심한 소도구나, SF로 남았어야 하는 우주의 환상을 실현하기 위해 낭비되었다는 것이다. 미합중국의 마지막 시기 대통령 몇몇은 디즈니랜드에서 바로 모집한 것처럼 보인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소설은 다양한 인간 군상과 20세기 인류 과거의 영광을 필름처럼 맛볼 수 있습니다. 탐사대에 밀항한 청년 웨인의 시점으로 서술되는데, 뿌리를 찾기 위한 여정은 사소한 거짓말로 시작되게 됩니다. 사실 웨인은 아버지를 본적도 만난적도 없습니다. 20년 전 행방불명된 원정대의 컴퓨터공학부 교수라 믿으며 그 기대감에 원정길에 나섭니다. 하지만 웨인은 밀항자에서 리더가 되고, 45대 대통령을 꿈꾸며 강박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소름 돋게도 현 45대 대통령은 트럼프입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캐치플레이가 소설과 닮았습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정치 행보로 미국의 재건을 꿈꾸고 있지만, 어째 신통치 않게 굴러가는 미국 모습과 오버랩돼 씁쓸해집니다.

밸러드는 작품에서 다가올 미래를 예견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왜 그를 SF 뉴웨이브 개척자라 공인하는지 긍정하는 계기가 되더군요. 공교롭게도 소설 속 화자 '웨인'의 이름은 서부극의 단골 슈퍼스터 '존 웨인'인 것도 낯설지 않습니다. 밸러드풍의 몽환적이며 통찰력 있는 내러티브는 지금 읽어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 디스토피아입니다.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 소설은 이번 기회에 처음 읽어봤습니다. ' J.G 밸러드 월드'는 알면 알수록 같은 시간 다른 차원의 기시감, 선명하지 않은 분위기가 매력적입니다.

《헬로 아메리카》는 국내 소개된 책 중에 현대문학에서 2009년 밸러드 타계 10주년을 기리면 만든 'JGB 걸작선'시리즈의 첫 번째입니다. 이어 《콘트리트의 섬》,《밀레니엄 피플》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시간의 목소리 외 24편이 담긴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도 추천합니다. 장편이 아닌 단편의 매력, 병리학적인 현대 문명의 예언자의 목소리에 푹 빠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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