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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 블러드 - 테라노스의 비밀과 거짓말
존 캐리루 지음, 박아린 옮김 / 와이즈베리 / 2019년 4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9/0417/pimg_7650201492175080.jpg)
"저는 어려서부터 위대한 업적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으며 자랐어요. 그리고 목적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과, 목적 없는 삶이 사람의 성격과 삶의 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도 계속
들어왔죠."
-「더 뉴요커」와의 인터뷰
중에서-
《배드 블러드》는 어릴 적부터 성공이란 뚜렷한 목적을
가진 전도 유망했던 젊은 여성의 흥망성쇠를 다루고 있는 논픽션입니다. 가족 인맥을 통원해 초기 투자금을 유치하고, 아직 구현되지 않은 기술을
그럴듯한 기술로 포장해, 확고한 가능성으로 투자 받은 '엘리자베스 홈즈'의 거짓된 성공신화를 쫓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성공을 마다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자기 분야의 최고가
되고 싶고, 돈도 많이 벌고 싶은 인간의 욕망과 잔혹한 파탄을 '테라노스'에서 보았습니다.
기업가치 10조 원, 제2의 스티브 잡스라 불리던
'엘리자베스 홈즈'는 우리나라의 황우석 사건을 떠오르게 합니다. 소형화 바늘로 찔러 얻은 극소량의 혈액만을 이용한 혈액진단 기술은 환자
개개인에게 약품을 섬세하게 맞춤할 수 있는 서비스로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요. 2015년 말 탐사보도 전문 저널리스트 '존 캐리루'가
제기한 의혹을 시작으로 끈질긴 추적 끝에 전 세계적 사기극의 종지부를 찍었죠.
그는 테라노스를 퇴사한 직원들을 인터뷰하며
엘리자베스와 연인 '서니', 그리고 측근들이 저지른 비리와 비밀을 차곡차곡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대체 얼마만 한 간의 크기를 가져야 이런
거짓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성공을 향해 시작된 달콤한 거짓말은 걷잡을 수 없는 부메랑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거짓말이 먹힐 수 있었던 배경에는 심각한 경제
불황이란 큰 산이, 말도 안 되게 비싼 의료비에서 구제해 줄 희망이란 두 마리 토끼가 있었죠. 난세에는 언제나 영웅이 등장하는 법이지만, 난세를
등에 지고 신기루를 경험한 엘리자베스 홈즈의 긴박했던 몇 년을 영화보다 더 영화적으로 다룬 책이 바로 《배드 블러드》입니다.
엘리자베스의 대범함의 배경에는 어려서부터 강렬했던
경쟁심 뿐만 아니라 좋은 성적과 탄탄히 구축한 영향력 있는 인맥도 한몫했죠.
'테라노스'는 스탠퍼드 대학을 중퇴하고 돈을 벌겠다며
실리콘밸리의 핵심 스타트업으로 급부상, 이후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하지만 정보의 흐름을 엄격히 통제하거나 직원들의 작은 퇴사와 해고는 테라노스의
단단한 철옹성을 조금씩 금 가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테라노스는 획기적이며 완전히 새로운 기술을
개척한 게 아니었습니다. 실험실에서나 가능했던 일을 집이나 약국, 슈퍼마켓, 군대에서 가능한 비전 있는 기술이었던 거죠. 윌그린, 세이프웨이 등
대기업과 미군마저 공급 계약을 체결했을뿐더러. 루퍼트 머독, 핸리 키신저, 조지 슐츠 같은 권위 있는 인사들의 찬사와 투자는 오히려 커졌습니다.
FDA와 미국 증권거래소까지 그녀를 신봉하게 만든 새빨간 거짓말은 기업의 불안감, 경쟁심을 역공하는 권모술수로 가속화되었죠.
물론, 주변에서 끊임없이 조언과 질책, 걱정을
늘어놓았지만 오직 자신만을 믿었던 엘리자베스에게는 오히려 회사를 무너트리겠다는 협박으로 다가왔을 겁니다. 왜 그렇게까지 밀어붙였을지 이해 가지
않는 욕망은 결국 파멸로 몰아넣고 있을 뿐이었죠.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9/0417/pimg_7650201492175081.jpg)
남성들이 지배하는 실리콘밸리에서 앨리자베스의 성공은 그야말로 신화 그 이상이었습니다. 여자 스티브 잡스를 꿈꿨고, 검은 터틀넥까지 오마주 하는 등 적극적인 이미지메이킹을 펼쳤으나 거품으로 끝나버린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이야기. 역시 영화화되는데 '엘리자베스 홈즈'를 배우 '제니퍼 로렌스'가 맡아 촬영 중에 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독서광 빌 게이츠가 꼭 읽으라며 추천한 책이기도 한 《배드 블러드》를 개봉 전에 읽어보길 저 또한 권해드립니다.
남들은 그녀가 소시오패스다, 감응성 정신병이다, 허언증이다, 리플리 증후군이라고 말합니다. '리플리 증후군'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가 1955년 쓴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 씨》에서 파생된 단어기도 합니다. 영화 <리플리>의 리플리는 밤에는 피아노 조율사, 낮에는 호텔 보이였지만 상류사회의 일원이 된 듯한 착각에 빠져 살인까지 저지르고 자신은 누구인지 혼란스러운 섬뜩함을 그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정아 사건이 좋은 예시기도 합니다.
어쩌면 엘리자베스 홈즈 신화는 실리콘밸리의 창업 성공주의, 여성 신화가 필요했던 사회 전체의 맹목적인 자세가 빚어낸 합작품일지도 모릅니다. 근본적인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는 한 제2, 제3의 엘리자베스는 어디서든 등장할 거라 예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