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 몽환도
주수자 지음 / 문학나무 / 201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읽기에서 독자란 그냥 방관자로 있는 것만은 아니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책이 우리를 바꿀 수 있듯이 독자도

책에 대한 이해 정도는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부담주는 줄리엣' 중에서

 

스마트 소설? 이 단어를 들었을 때 드는 생각은 이러합니다. 스마트폰으로 쓴 소설, 스마트폰으로 읽기 좋은 소설(웹툰처럼), 스마트폰으로만 읽을 수 있는 소설(웹 소설이나 E-BOOK처럼) 수많은 추측을 안고 읽어봤습니다. 네, 스마트 소설이란 소설과 스마트폰의 결합을 시도하려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2012년 '스마트소설박인성문학상'에서 수상한 소설을 말합니다.

 

단편, 초단편, 미니픽션, 엽편소설, 콩트, 짧은 소설로 바꿔 부를 수 있는데요. 짧은 분량 안에 문학의 깊은 통찰과 혜안을 보여주며 스마트소설만의 압축미와 절제, 철학적 사유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혼밥을 주문한 후 다 먹을 때까지 읽에 무리 없는 소설, 짧지만 느리게 흘러가는 소설 모음집이 《빗소리 몽환도》입니다.

 

사실 소설 내용까지 4차 산업혁명과 연결되었으리라 추측했는데, 그것까지는 아니더군요. 다음번에는 현대인의 필수품인 스마폰을 소재로 한 스마트소설이 만들어졌으면 어떨까 엉뚱한 생각도 해봅니다.

 

아무튼 16의 단편들은 긴 시를 읽는 듯한 기묘한 매력을 발산합니다.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풍자, 해학을 입은 쿨함은 과거와 현대의 조우라고 할 수 있죠. 더 이상 긴 글을 읽지 않으려는 시대, 이미지와 동영상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상황에 스마트소설은 촌철살인 임팩트로 현대인을 사로잡을 준비를 마쳤습니다.

 

열여섯 편의 스마트소설의 제목인 '빗소리 몽환도'는 소설밖에 모르던 한 청년의 예지몽입니다. 피가 섞이지 않은 할머니 밑에서 자라났고 꿈도 미래도 없이 이제 갓 스물이 된 청년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여자의 몸에서 물고기비늘같은 빗방울이 여기저기 떨어졌다. 그렇지만 머리카락에 붙어 있는 물방울들은 투명 씨앗처럼 반짝거렸다. 여자가 들어오자 손바닥만큼 자그마한 옥탑방이 순식간에 커졌다. 이스트를 넣어 부풀어진 둥근 빵처럼!

         '빗소리몽환도' 중에서

 

청년은 지금 막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소설에서 튀어나온 캐릭터가 찾아왔고 당황할 새도 없이 캐릭터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텍스트로 느껴지는 이미지는 상상했던 것과 실제가 다름을 알아차립니다. 소설 속 캐릭터는 전지전능한 작가의 부산물이며 읽는 독자 마음대로 상상하는 아바타니까요.

 

공상의 캐릭터를 실제로 마주하며 실망도 하지만 생생하게 전해오는 표정과 목소리, 냄새는 살아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삶이란 무엇인가 깨닫는 계기뿐만 아니라.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하기 점입가경인 상황은 이 모든 상황이 운명이란 생각도 해봅니다.

 

밖에는 며칠째 비가 옵니다. 불쑥 월세 계약서를 들이밀며 이 방의 주인이라 말하는 여자를 안으로 들여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비는 이토록 현실과 공상의 경계를 느슨하게 만드는 장치 뿐만 아니라, 로맨틱하고 비현실적인 환상을 돕는 촉매제기도 하죠.

 

청년은 예언에 가까운 꿈을 꾸는 게 주특기였습니만. 중이 제 머리 못 깎듯 제 운명은 알 길이 없었죠. 이름이 공상호인 것도 문학적 상징입니다. 아리송한 하룻밤이 지나 새 책을 다시 펼치는 순간 뫼비우스 띠지처럼 삶은 또다시 반복되죠.

 

 

 

 

 

소설은 허구의 산물입니다. 열여섯의 단편은 매일 스마트폰 세상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현대인을 소설로 들여보내 줍니다. 캐릭터나 상황이 이탈하기도 하고, 현실과 소설, 꿈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멋진 경험이었습니다. 짧음의 미학, 찰나의 순간이 갖는 묘미가 비 오는 주말을 풍요롭게 만들어 줍니다. 마치 소설 속 그녀가 좁은 옥탑 방안으로 들어왔을 때처럼 말이죠. 그렇게 저의 몽환도가 시작되는 걸까요?

 

참고로 작년 1월 동명의 연극으로 만들었습니다. 책을 일찍 알았다면 연극도 감상했을 텐데..아쉬웠지만 배우들의 입으로 재생된 소설을 상상하는 즐거움도 좋았습니다. 오랜만에 문학적 상상력을 총동원한 미스터리한 소설에 흠뻑 빠져 허우적거렸던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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