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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없다면
애덤 해즐릿 지음, 박산호 옮김 / 은행나무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가끔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고 생각도 많아 감당하지 못할 때가 있다. 나라는 본질은 무언인가 생각해 본 적이 있나? '애덤 해즐릿'의 소설 《내가 없다면》은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듯 정밀한 표현과 캐릭터의 움직임이 사진 한 장에 녹아든 이야기처럼 상상력을 이끌어 낸다.
정신적인 문제를 가진 한 남자가 자신과 똑같은 괴물을 품고 있는 자식을 단번에 알아본다. 공포와 불안,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과도 같은 우울. 소설은 그 남자가 한 여자와 만나는 이야기부터 거슬러 올라가 불안한 마음이 한 가정을 어떻게 파탄 낼 수 있는지를 지켜보는 일말의 과정이다. 무척 괴롭고 허탈하다. 그 기분은 존과 마이클, 마거릿, 실리아, 액릭을 화자 삼아 각자의 입장에서 표현된다.
독자는 읽는 내내 고통과 절망을 고스란히 체득하게 된다.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형식은 그 사람의 머릿속을 헤집고 다녀온 듯한 선명한 촉각과 선연한 이미지로 좀처럼 떨쳐낼 수 없다. 피로하고, 우울하며, 한없이 무력해지는 소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놓은 없는 이유는 정신을 놓은 순간에도 사랑을 쥐고 있던 두 사람의 의지 때문이었다. 때로는 죽음의 앞에서도 희망을 발견하는 삶의 본능은 서로를 더욱 가깝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음울을 습자지처럼 습득해버린 상태에서 쉽게 놓을 수 없는 느낌, 우울의 늪에 빠져보는 경험을 하고 싶다면 추천한다. 가끔 내가 없는 세상에서 살아갈 누군가를 생각해 본 적 있다. 가족, 친구, 연인이 느낄 감정의 여파는 견딜만한 수준일까 궁금하다. 정신질환은 사실 본인은 다른 세계로 옮겨가기 때문에 인지하지 못한다. 그로써 더욱 주변인의 삶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황폐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서서히 보여준다.
(*전문은 아트나인 소식지 2월 'PARER NINE'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