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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카의 장갑
오가와 이토 지음, 히라사와 마리코 그림,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따스한 장갑 한 쌍이 얼어붙은 손과 마음을 녹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할 때죠. 다들 장갑 한 쌍은 마련해 두었나요?
《마리카의 장갑》은 《달팽이 식당》, 《츠바키 문구점》의 '오가와 이토'의 신작입니다. 주 무대가 되는 낯선 나라 '루프마이제 공화국'은 발트 3국 중 하나인 '라트비아'를 모델로 합니다. 작가는 처음엔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몰랐다가 일본의 풍습과 비슷해 마음이 갔다고 말했습니다. 작품 구상을 위한 혹은 개인적인 여행기를 담은 일러스트 에세이도 책의 뒷부분에 등장하니, 소설과 비슷한 듯 다른 느낌으로 즐겨볼 수 있습니다.
이 나라 사람들은 화려한 색깔의 아름다운 엄지 장갑을 끼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기는데요. 여자들은 결혼할 때 새롭게 맞이할 식구들의 엄지 장갑을 혼수로 떠갈 정도로 장갑은 소중함 그 이상입니다. 오빠만 셋인 집안에 유일한 딸인 마리카가 태어날 때도 할머니는 앙증맞은 장갑을 뜨고 있었죠. 정도껏 갖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정의와 평등을 지키며 조화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식탁은 신의 손바닥, 빵은 그 성찬입니다.
하나의 빵을 나눠 먹는다는 건 모두 사이좋게 지낸다는 것.
빵은 가족을 하나로 묶어주는 음식입니다.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직접 만들거나, 만물에도 신앙이 깃들여 있다는 믿음 '신'은 물건과 집안 곳곳에 친근한 존재이며 일상 속에 녹아 있었습니다. 번거롭고 힘들어 보이는 이런 생활방식을 쭉 지키고자 하는 마음까지도 소박하지만 위대한 일임을 실감하게 하는데요. 마리카의 탄생을 축하하며 흑빵을 나눠 먹는 가족들의 소박함에 입가의 미소가 지어집니다.
몸은 이곳에 있지만 마음만은 자작나무 주스도 마시고, 칠엽수 씨앗을 심고 가문비나무를 베어 오던 숲에 있는 듯 청량하고 경건한 마음이 들었지 뭡니까. 너무나도 쉽게 많이 얻을 수 있는 것들 때문에 소중함을 잘 몰랐던 것 같아 무안해집니다. 그렇게 2019년은 조금 더 양보하고, 이웃과 나누며, 욕심부리지 않아야겠다 다짐도 해봅니다. 마리카가 드디어 자신을 위한 엄지 장갑을 뜰 때 저 또한 성장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느리고, 오래된 것은 촌스럽고 재미없다고 느끼는 현대인에게 책은 천천히 말합니다. '엄지 장갑을 떠준다는 것은 온기를 선물하는 것이다.'라는 문장처럼.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 엄지 장갑처럼 따스한 말, '고마워'를 읊조려보는 건 어떨까요?! 분명, 말의 온기가 퍼지며 미소 짓는 하루가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