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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내셔널의 밤 ㅣ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박솔뫼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평점 :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남쪽으로 남쪽으로 향해도
당신은 결 시간을 이틀을 사흘을 기차에서 보낼 수는 없다.
사람들은 내리고 당신은 어디론가 가야 한다."
_p.9
가끔 나임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장소에 가면 편해집니다. 군중 속의 익명성. 누구에게는 당연한 것이 침해받는 기분 있던가요? 낯선 공간, 낯선 사람들에 의해 침해받는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군집의 일반화는 차별이란 화살로 언제든지 날아올 수 있습니다.
《인터내셔널의 밤》은 올해로 등단 10주년을 맞은 박솔뫼 작가의 여덟 번째 작품집입니다. 현실에서 교단에서 성(性) 별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 무대는 다양한 사람들이 붐비는 부산행 기차. 그렇게 한솔과 나미는 만나게 됩니다.
부산은 국제적인 도시입니다. 한솔과 나미는 신분확인이 필요 없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다는 공통점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낯선 열차에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익명이 주는 편함,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오히려 솔직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되죠.
보편적인 시민으로 부여받은 주민등록증은 어디든 제한 없이 통화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하지만 당연함 조차 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솔은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별을 바꾸어 살고 있고, 나미는 소위 이단이라 말하는 재단에서 나왔습니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자신을 증명하지 않아야 하는 간절함이 커지는 거죠. 그렇게 둘의 사연은 경계 없이 흐릅니다. 소설 또한 경계 없이 이 사람이 화자였다 저 사람이 화자였다를 반복하는데요, 그 모호함의 이야기가 제법 소설의 분위기와도 잘 어울립니다.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시대. 그 피로함과 따가운 시선은 누구도 알지 못하는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나와 다르면 배제하고,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지만 따가운 시건에 한국이 싫다고 떠나는 사람들.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면. 감정 이입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소설입니다.
하루키의 몽상적인 스타일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기도 하고요. 포켓에 쏙 들어가는 판형이 참 마음에 들어서 언제 어디서나 꺼내 읽게 되는 책입니다. 다만, 작은 책이지만 내용의 묵직함이 아직도 주머니 속에 있는 듯한 거대한 책이란 생각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