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샌가 안부를 묻는 일이 실례가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걔 요즘 잘 지낸대?", "어머, 오랜만이다 요새 어떻게 지내?"라는 안부 인사. '별일 없이 산다'라고 말하고 싶은 평범한 일상이 가장 어렵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어느샌가 가족, 친구, 지인에게 '잘 지내고 있어'라고 에둘러 말하게 되는 일들 종종 있을 겁니다.
'봄이 온다', '여름이 온다', '어느새 가을', '첫눈이 내린다, 겨울.' 이렇게 감탄하며 맞이하는 사계절, 감탄사를 되뇌며 한 계절을 오롯이 바라볼 수 있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고 있다.봄, 여름, 가을, 겨울의 느낌을 사진과 매칭해 계절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요즘 들어 경계가 많이 느슨해졌지만 아직까지 사계절의 모습을 보여주는 자연, 그때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1995년 창간한 잡지 <PAPER>의 한 꼭지를 담당하던 '밤삼킨별'의 포토에세이 《난 잘 지내고 있어요》. 밤삼킨별의 필명은 PC 통신 나우누리 아이디이자, 전 세계를 다니는 여행작가 겸 캘리그라퍼의 분신과도 같은 이름입니다. 이번 에세이를 통해 무수하고 아득한 청춘의 밤을 보냈을 기억, 아름답고 찬란했지만 잊고 싶었던 추억을 소환합니다. 비 오거나 눈 오는 날, 왠지 멜랑꼴리해지는 새벽에 읽는다면 좋은 놓칠 수 없는 감성을 담고 있는데요. 표지와 책 속 사진이 엽서로 만들고 싶을 정도로 멋진 사진과 글귀가 다정한 책입니다.
아날로그적인 감성의 책은 겨울 캡터부터 변신을 꽤 합니다. 꼭 봄여름 가을겨울, 순차적으로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부분을 펼쳐 자신만의 세계로 로그인하면 되는 거니까요. 2개의 책을 붙여 놓은 듯 겨울에서 다시 시작하는 오타루의 겨울 여행. 별책부록, 영화의 번외 편처럼 신선한 자극이 되어 줍니다. 어쩌면 일 년 중 가장 길다는 겨울, 제대로 영양분도 섭취하고 잘 견딜 수 있는 땔감도 구해놔야 하는 계잘이죠.
"한때 숨 쉬어도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거 같은 마음으로 내내 힘들었을 때, 그런 나를 보며 누군가는 치료를 권했었다. 치료라는 말에선 알코올 솜 냄새와 함께, 목에 걸려 고생했던 알약의 곤혹감이 묻어 있었다. 치료받는 순간부터 더 아파졌던 기억에 거부감이 느껴졌다. 마음의 문제였으므로 내 안에서 자발적으로 치료가 아닌 ‘치유’를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건 그나마 내가 가진 나신에 대한 유일한 희망이었다. "감성 글귀와 사진을 보며 내년 봄을 기다립니다. 힘들고 지쳐 공허해진 마음을 제대로 충전해야만 다음 해를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비축한 것 같은 따스함. 겨우내 독감으로 고생하지 않기 위해 맞는 예방접종처럼 《난 잘 지내고 있어요》가 줄 수 있는 독자들을 위한 다양한 처방전이길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