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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기억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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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사랑해본 적이 없는 것보다는 사랑하고 잃어본 것이 낫다.
사랑, 찬란함과 아름다움이 영원할 것 같다가도 이내 시들어버리는 꽃 같은 감정이라 해도 좋습니다.
영국의 대표 작가 '줄리언 반스'의 《연애의 기억》은 첫사랑에 대한 강렬함이자 잊을 수 없는 죄책감과 아쉬움 같습니다.
어머니의 권유로 테니스 클럽을 찾은 '폴'은 파트너 '수전'을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모든 것에 기준이 명확해지지 않았던 나이 폴은 자기 또래의 두 딸과 이미 남편이 있었지만, 어딘지 어리숙해 보이는 수전의 모습에 매력을 느낍니다.
폴은 세상에 두려울 것 없었으며 돈이 없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치기 어린 자신감에 차 있었죠.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런던에서 보금자리를 꾸립니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수전의 친구 '조운'의 응원을 받으며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합니다.
얼마나 사랑할지, 제어가 가능한 사람이 어디 있는가? 제어할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다. 대신 뭐라고 부르면 좋을지는 모르겠으나, 사랑만은 아니다.
누구나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연인의 마지막을 예감할 수는 있지만, 수전 쪽에서 먼저 시작됐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통속적인 연애소설이라면 또래 여자친구를 만나면서 수전의 단점을 찾거나, 금전적인 문제에 부딪히겠지만. 줄리언 반스는 영민하게도 수전을 이용해 미안하다는 말조차 할 수 없던 첫사랑의 아련함, 판타지로 만들어 버립니다.
끊임없이 우리는 전쟁을 겪은 닳아버린 세 대라며, 너의 세대가 세상을 바꿔주길 바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던 수전. 남편의 폭력을 참아야 했고 해소할 곳 없는 삶의 우울증 가득 담아내야 했을 시대의 완벽한 피해자였습니다.
'줄리언 반스'는 그동안 꾸준히 사랑과 기억을 주제로 글을 썼습니다. 사랑하던 아내를 먼저 저세상으로 보내고 힘들었던 감정을 담은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는 상실에 대하여 이야기했고,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청춘의 무모함과 왜곡된 기억이 갖는 나비효과를 윤리적인 관점에서 조명한 바 있는데요. 《시대의 소음》에서는 성공한 음악가였지만 시대의 폭력에 굴복해야 했던 '쇼스타코비치'의 아이러니한 삶을 위트 있게 풀어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