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편지
김숨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끝순은 땅에 편지를 쓴다. 녹슨 못을 연필 삼아, 손에 묻어나는 녹 가루를 옷에 문질러 닦아아가며. 강물에 쓰는 편지는 쓰자마자 흘러가버리지만 땅에 쓰는 편지는 흘러가지 않고 한곳에 머물러 있다. 비석에 새긴 글처럼.

중국의 낙원 위안소에 살고 있는 소녀의 시점을 따라가는 김숨의 두 번째 위안부 소설. 추악한 사람들, 비슷한 처지의 소녀들의 참상을 다룰 때마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나를 부끄럽게 합니다.

소녀들은 이곳이 어딘지도 모른 채 부모가 팔아넘겨서, 양말공장에 취직하는 줄 알고, 일본 군인에게 납치 당해, 직업소개소의 사기를 당해 모이게 된 십여 명의 조선인 위안부입니다.  한 문장 한 문장 정성스럽고 진중하게 쓴 소설은 독자 또한 살을 에는 고통을 구석구석 함께 하는 것 같은 체험이 독서였습니다.

금자는 후유코로 불리며 위안소에 사는 소녀입니다. 까막눈인 금자는 자기도 모르는 새, 아기를 가져 어째야 할지를 모르고 있죠. 글자도 모르면서 매일 흐르는 강물에 어머니에게 편지를 씁니다. 여기가 어딘지 모를 어머니가 찾으러 올까, 주소를 쓰지 않은 진짜 편지가 집에 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금자는 흐르는 강물에 편지를 띄웁니다.

어머니, 아기 아빠가 누군지 궁금해하지 마세요. 어차피 아기는 죽을 거니까......
아기 아빠가 누군지는 나도 몰라요, 나도......

짐승보다 못한 게 사람 목숨인 위안소에서 생명을 잉태한 아이러니한 상황, 금자는 그동안 아기를 가졌다는 이유로 구타를 당하고 아기를 뺏기거나, 죽임을 당한 소녀들을 보며 무조건 숨기려고만 합니다. 그곳에서 굶주림과 가려움, 군인들의 폭력을 견디며 차라리 생명이 떨어져 나가길 빌죠.

하지만 금자는 위안부뿐만 아니라 일본 군인들, 중국 마을의 민간인마저 끊임없이 죽음에 노출된 현장을 목도하며 죽고 싶지 않다는 삶의 의지를 불태웁니다.

 

 

 


감히 그 시대를 겪어보지 않았음에 심심한 위로와 형언할 수 없는 아픔을 나눕니다. 지난 2018년 8월 14일은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었습니다. 다음날 광복절까지 이 책을 들고도 차마 용기가 없어 읽지 못했는데 드디어 한 걸음을 떼었습니다.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은 작년 12월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 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일부 개정안이 국회 통과되면서, 민간 기념일이 국가 기념일로 지정되었습니다.

매년 8월 14일인 이유는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감히 그 시대를 겪어보지 않았음에 심심한 위로와 형언할 수 없는 아픔을 나눕니다. 지난 2018년 8월 14일은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었습니다. 다음날 광복절까지 이 책을 들고도 차마 용기가 없어 읽지 못했는데 드디어 한 걸음을 떼었습니다.

 

 

 

 

 

어제 중국에 남아 있는 위안부 생존 할머니에 대한 다큐멘터리 <22>를 보았습니다. 이곳보다 더 열악한 생활, 국가 차원의 지원이 없는 곳에서 한국인 이름도 말도 잊었지만 '아리랑'을 흥얼거리는 할머니를 보다 눈물이 메말라버렸습니다. 촬영 당시 생존 할머니는 22분이었지만, 지금은 7분이 돼버린 안타까운 상황.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계속해서 회자되어야 하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알려야 할 때입니다. 아픔을 치유하는 연대의 감정을 계속해서 지켜나가길 희망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