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 뻔한 세상》 혼을 쏙 빼는 SF 페이지 터너, 영화 원작 소설

우리가 살 뻔한 세상
엘란 마스타이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7월

인간은 늘 진보된 세상을 향해 전진합니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전이 유토피아일지 디스토피아일지는 끝없는 논쟁거리인데요. 인류의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노벨이 만든 다이너마이트가 살인병기가 될지 몰랐던 기술의 명과 암처럼. 발전에 불가피한 희생과 그림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상관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쉴 틈 없이 읽어 내려간, 올여름 최고의 SF 소설이라 자부할 만한 소설을 만났는데요. 폭염도 무섭지 않은,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소설 속 세계는 우리가 살 뻔한 세상이 현실이 될 수 있는 평행이론, 섬뜩한 데자뷔를 보여줍니다. 끊임없이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과 궁금증을 품고 살아가는 인간에게 매력적인 소설임에 틀림없습니다.


소설은 2016년과 1965년을 보여줍니다. 전반부는 1965년 위대한 과학자 '라이오넬 구트라이더'가 발명한 무한 에너지로 상당한 발전을 이룬 2016년을 상세히 다룹니다. 주인공 '톰 배런'은 천재 과학자인 아버지 '빅터 배런'의 그늘에 가려 지극한 평범한 아들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경쟁도 개발도 전쟁도 없는 오직 인류는 즐거움을 좇는 엔터테인먼트만이 발전한 2016년, 아버지는 시간여행이란 여행 산업을 최초로 개발한 사람으로 기억될 예정이었죠.

그 선이라는 거, 정말로 넘지 말아야 하는 건가? 결국 넘지 않을 거라면 뭐 하러 선이라는 게 존재한단 말인가?

하지만 무능하고도 생각 없는 톰은 급작스러운 어머니의 죽음, 완벽한 최초의 시간여행자 될 '페넬로페'를 사랑하게 되며 인생의 변수를 맞습니다.

후반부는 한순간의 선택이 가져온 나비효과를 바로잡고자 고군분투하는  시간 여행으로 꾸려지죠. 망쳐버린 현실을 고치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 미래를 바꾼다는 설정은 시간여행 소재 작품에서 숱하게 다뤄진 컨셉입니다만. 인류가 이루고자 하는 궁극적 가치, 주제를 아우르는  깊은 통찰력이 재미와 메시지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는 소설입니다.

톰이 시간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마저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며,  눈앞에서 생생하게 그려지더군요. 현재 기술로는 힘들지만 어쩌면 근미래에 나타날지 모를 상상력이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휴대용 의류 재생기와 음식 합성기, 거대 복합 주거타운, 운송 캡슐, 텔레포트(순간이동) 등으로 의식주가 해결된 세상에서는 삶의 의미를 어떤 식으로 채워갈지 상상하는 맛도 있었습니다.

결국 소설 속 비밀 열쇠는 '사랑'이었습니다. 감정의 소용돌이는 선택을 되돌리고자 했고, 우리가 살아갈 세상이, 살 뻔한 세상이 된 아이러니를 다루고 있기도 합니다.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는 톰은 다른 세상에서는 '존'이란 이름으로 해리성 장애를 의심받습니다. 과연 톰은 우리가 살 뻔한 세상으로 돌아가게 될까요? 흥미로운 결말은 책 속에서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단연코 올해 최고의 여름 소설이 될 거라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이미 영화 <왓 이프>의 시나리오 작가로 인정받은 바 있는 '엘란 마스타이'의 필력 때문일 것입니다. 현재 파라마운트사에서 판권을 사 영화화 준비 중이라는 소설은 과학적 식견이 부족하더라고 무난하게 읽을 수 있는 페이지터너입니다. 소설 《마션》에서 보여준 문학으로 풀어 낸 SF의 또 다른 버전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모든 요소를 최대치로 이끌어 내는 작가의 재능은 진부한 소재라도 반짝이는 재미로 만드는 마력을 갖춘 소설이라 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