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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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며,

인간은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지 않으면

그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


《모스크바의 신사》는 1920년 대 러시아, 정치적 견해로 호텔에 갇힌 인생이 돼버린  삼십 대'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의 인생을 다룹니다. 백작의 신분에서 한낱 가택연금형을 받은 인간으로 변화된 삶 속에서도 호텔 구석구석을 누비며 자신만의 소우주로 만든 신사의 품격을 느껴볼 기회입니다. 교양과 기품, 세련된 성정이 21세기인 지금 읽어도 전혀 이질감 없는 우아함이 전반적으로 감돕니다.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다고 해서 정치적인 견해나 딱딱하고 재미없을 거란 선입견은 오산입니다. 백작은 호텔에 머무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를 통해 관객의 호기심과 스릴, 해학, 우정을 공유합니다. 비록 공간 안에 머물러 있지만 계절과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또한 백작이 읽거나 인용하는 문학작품은 은유와 비유란 양념을 가미해 상황과 적절히 어울리는 상징으로 다가옵니다. 이는 러시아 정치와 문화에 관심이 많은 미국 작가 '에이모 토울스'의 견해 때문일 텐데요. 보이지 않는 신념, 사상, 감정 같은 것을 붙잡아 두려 하고 바꾸려고 하면 할수록 고무되어 발화하는 스피릿을 이야기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세상은 바뀌었습니다. 로스토프 백작은 집안 대대로 내려온 귀족 신분이 아무 쓸모가 없어진 바깥세상을 등지고 <올드보이>의 오대수처럼 폐쇄된 공간에서만 생활합니다. 그렇게 백작은 30년을 호텔 메트로폴를 작은 세상으로 인식하고 살았는데요.  소설 속 백작의 상황은 저주나 형벌이라 치부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격동한 20세기 초 러시아에서 가장 안전한 은신처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조선 말기를 생각해 보면 신분제도가 없어지면서 대한 제국의 왕족들은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모진 삶을 살았습니다. 안타까운 비극 대신 《모스크바의 신사》 속 백작은 호텔을 찾은 다양한 인물들과 함께 멈추지 않고 성장합니다. 특히 아홉 살짜리 당돌한 소녀 '니나'와 유명 여배우의 숨겨진 연인이 되어 적응하는 상황도 흥미롭게 펼쳐집니다.

 

 



1920년 대를 다루고 있어서 인지 얼마 전 보았던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 묘하게 겹쳐졌는데요. 아니나 다를까 이 영화의 연출과 출연을 맡은 '케네스 브래너'가 또 한 번 제작과 주연을 맡아 TV 시리즈로 방영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폐쇄된 기차에서 다양한 캐릭터의 향연과 공간 활용이 돋보인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처럼 미장센이 돋보이는 영상으로 탄생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벌써부터 마음속으로 상상해 본 캐릭터와 20년대 러시아 복식과 헤어스타일이 그려지는데요. 이와 함께 작가 '에이모 토울스'의 다음 작품도 기다려집니다. 그는 5년여에 한 번 씩 책을 출간하기로 유명한데, 철저한 자료 수집과 팩트체크, 독서를 통해 촘촘한 이야기 구성과 다각화된 캐릭터 설정으로 사랑을 받는 몇 안되는 작가입니다. 2017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가장 감명 깊게 읽은 11권의 책에 수록된 저력을 경험해 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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