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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ㅣ 패트릭 멜로즈 소설 5부작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 지음, 공진호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5월
평점 :
영국 현대문학의 금자탑이란 호칭을 받은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의 자전적인 이야기이자, 패트릭 멜로즈 5부작의 첫 번째인 《괜찮아》는 그의 데뷔작입니다. 어마 무시한 타이틀을 갖고 있는 소설은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선택한 드라마로도 유명한데요. 그는 일생일대 꼭 한번 맡아보고 싶었던 캐릭터라며 패트릭 멜로즈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영국 상류층의 뒤틀리고 쪼개진 욕망과 기이한 캐릭터의 향연은 영국 사회에 큰 파장을 주었습니다. 신사의 나라 영국에서 자신이 겪은 가정 내 성폭력을 세상에 드러냈다는 것은 1992년 출간 당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충격이죠. 소설 속 패트릭은 작가 오빈을 투영한 캐릭터이며, 아무것도 모르던 다섯 살이전 시설 아버지에게 씻을 수 없는 성적 학대를 당합니다.
그에게 있어 유년기는 자살시도와 약물중독으로 점철된 큰 트라우마가 됩니다. 하지만 작가 오빈은 글쓰기란 치유법을 통해 세상과 당당히 맞서게 됩니다.
"데이비드는 사람들이 스스로 올바로 행동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해 주는 기준이 되는 것이라면 아주 작은 것까지 어김으로써 큰 쾌감을 얻었다. 데이비드는 천박함을 경명했는데, 여기에는 천박하게 보이지 않으려는 천박함도 포함되었다."
《괜찮아》는 패트릭이 겪은 하루 동안 배경으로 합니다. 충격적인 사건과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 데이비드, 무기력하고 무관심한 어머니, 소름 끼칠 정도로 교만하고 이중적인 캐릭터들의 행동과 언행이 주는 블랙 코미디와 위트가 살아있는 소설입니다.
현대가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고전적인 냄새와 연극적인 상황까지 머릿속을 헤집는 복잡 미묘한 소설이며, 상류층의 도덕적 관습 등을 비틈으로써 일말의 쾌감 또한 맛볼 수 있습니다.
"브리짓은 니컬러스의 말에 집중할 수 없었다. 무릎에 차가운 금속이 닿는 듯해 내려다보니 데이비드가 작은 은제 나이프로 치맛단을 들추고 허벅지를 쓸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거지? 브리짓은 나무라듯 데이비드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도 데이비드는 브리짓을 쳐다보지도 않고 오히려 나이프 끝으로 허벅지를 조금 더 꾹 누를 뿐이었다. "
인상적인 것은 모든 것을 관장하는 듯한 아버지 데이비드의 역겨움이었습니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잘생긴 외모를 자랑하고, 총독 의자에 앉는 것을 즐기며, 아들에게 해서는 안될 일까지 벌이는 가장 연구하고 싶은 캐릭터죠.
찰스 2세와 창녀 사이에서 난 자식의 후손인 데이비드는 미천한 신분을 희석하기라도 하듯 더욱더 아내 엘리너를 못살게 굴며, 멸시하곤 합니다. 데이비드는 자기의 가장 큰 약점인 가난을 엘리너와의 결혼으로 해결하게 되는데요. 엘리너 더러 네발로 엎드려 테라스에 떨어진 무화과를 먹으라는 변태적인 주문까지 서슴지 않는 캐릭터입니다.
《괜찮아》는 데이비드의 상황보다 데이비드가 본 아버지의 이중적인 속물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끔찍했던 시절의 서막을 엽니다.
ⓒ 해외 드라마 연계, 피카도르사 전자책용 표지 (출처, 현대문학 포스트)
'페트릭 멜로즈 소설 5부작' 은 그 후 약물과 알코올 중독에 빠져 보낸 20대 《나쁜 소식》, 《일말의 희망》,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된 패트릭을 다룬 《모유》와 《마침내》로 40대까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중 패트릭의 유년시절을 다룬 《괜찮아》의 3인칭 화법과 의식의 흐름을 통해 상황을 관조하듯, 때로는 그 속으로 인입하듯 다양한 감성 톤을 유지하는데요. 자신의 끔찍한 고통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세인트 오빈의 신념에 박수를 보내며, 드라마에 대한 관심도 커집니다.
ⓒ 해외 드라마 연계, 피카도르사 전자책용 표지 (출처, 현대문학 포스트)
빠른 시일 내에 두 번째 시리즈 《나쁜 소식》을 읽기 기다리며 현재 온라인 서점에서는 동명의 드라마의 주인공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등장한 표지와 엽서 2종 세트를 증정하고 있으니, 참고하세요. 표지에 조그맣게 보이는 '도마뱀붙이'가 위로하듯 시선 강탈! 눈길을 끄는 표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