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 기원
천희란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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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젊은작가상을 수상하며 한국 문단에 등장한  천희란의  첫 소설집이 3년만에 나왔습니다. 음울한 고독과 죽음에 탁월한 묘사력을 보였던 천희란의 소설집 ​《영의 기원》은 이번에도 '죽음'을 통해 삶을 경청하는 방향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덟 편의 이야기가 담긴 표지 또한 강렬합니다. 2차원과 3차원이 뒤섞인 '에셔'의 그림 같은 공간 안에 나체로 서있는 여성의 뒷모습. 이 공간은 앞뒤 좌우,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지 같은 초현실적인 분위기로 묘사됩니다. 특히 소수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작가의 소명 또한 잊지 않고 파내고 있죠.

결국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차이지만 두려워하고, 피하고만 싶은 것! 죽음이 가까이 올 때 비로소 살고 싶어지는 열망, 그 의미를 독자 스스로 찾아야 하는 일이 바로 천희란의 소설들입니다.

 


​"영의 마지막을 생각할 때,

나는 자꾸만 영과의 시작 지점으로 되돌아오고 만다.

그리고 가끔은 과연 어디까지가 영에 관한 이야기이고,

어디까지가 내 자신에 대한

이야기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


소설집의 대표 제목이기도 한 '영의 기원'은 친구 '영'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사고인지 자살인지를 동전 던지기를 통해  묻습니다. 영은 무표정이라고는 말하기 뭐 한 표정과 적은 말수를 가진 친구였는데, 눈이 많이 오던 날 나의 집에 찾아왔다가 내가 준 물도 마시지 않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검은 비닐에 담긴 편지지와 편지 봉투와 위스키를 두고 떠났는데, 비어 있는 종이와 잉크에는 분명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던 게 틀림없습니다. 영은 그렇게 갑작스레 떠났고, 영과 했던 약속, 알 수 없는 꿈들이 이어지며 나는 혼란스럽죠.



여덟 단편들은 삶과 죽음, 결코 쉽지 않은 소재를 풀어내는 방식이 일종의 의식처럼 느껴집니다.  자신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은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는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절박함,  심연의 어두운 치부를 들킨 것 같아 놀라우면서도 부끄럽습니다. 어린 나이에 어쩌면 이런 사고와 통찰력을 갖출 수 있었을까 말이죠.


'영의 기원' 외에 일곱 작품들은 '죽음'이란 메시지를 아주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우물과도 같은 소설들입니다. 죽음과 삶, 차가운 물과 뜨거운 차, 맑스와 마르크스, 희랍인과 그리스인, 시들지 않는 꽃은 아름다운 가, 아닌가, 죽을 용기와 살 용기는 과연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동전의 앞뒤처럼 끊임없이 묻게 만드는 양가성을 외롭게 걸어가는 천희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집니다. 앞으로 그녀의 이름을 기억해 두어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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