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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 - 157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누마타 신스케 지음, 손정임 옮김 / 해냄 / 2018년 4월
평점 :
"강이 완만히 굽어지면서 제방 전체가 양 기슭의 삼나무와 편백나무 그림자로 푸르게 비치는 곳에 다다랐다. 그곳은 마치 온종일 햇빛이 닿지 않는 정원 구석 같은 곳이었다. 풀꽃과 나무가 지금까지 본 것보다 적고, 가냘픈 것들이 더 많이 보인다. 여린 잎사귀의 테두리가 살짝 비친다. 어느 것이나 여러 해 동안 자외선을 피해 왔던 노력이 보상을 받은 영리"
작가는 실제 재해가 일어난 지역에 살고 있는 소설가로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문학으로 풀어 낸 일종의 출산 같은 작품이
《영리》인 것입니다.
작품은 크게 3부로 구성되었습니다. 이와테로 전근 온 '나'가 '히아사'와 밤낚시와 청주를 마시며 친해지는 1부, 갑자기 퇴사한 히아사가 찾아와 새 직장의 실적을 위해 계약을 권유하고 옛 연인과 연락이 닿는 2부, 동일본대지진으로 행방불명이 된 '히아사'의 행적을 쫓다 그의 아버지까지 만나 자식의 인연을 끊었다는 말을 듣는 3부로 나뉩니다.
3부를 통해 '나'는 그동안 내가 알던 '히아사'의 전혀 다른 이면을 알게 되는데, 혼란을 넘어 존재 자체의 의문을 만듭니다. 영화 <버닝>에서 말한 실존의 부재(不在), '여기 귤이 있다고, 먹고 싶다고 생각하면 입에 침이 고이고 진짜로 맛있어. 나는 언제든지 귤을 먹을 수 있다'라며 마음만 먹으면 연기처럼 사라질 수 있고, 있다 믿은 게 아니라 없음을 잊으면 되는 본질인 것이죠.
이는 히아사의 본가에서 본 붓글씨 '전광영리참춘풍(電光影裏斬春風)'의 기묘함과 비슷합니다. 글귀는 불교 선종의 용어로 '번갯불이 봄바람을 벤다'라는 뜻이자 그림자의 이면이란 '영리'의 뜻처럼. 내가 알고 있는 진실의 뒤편을 주목해야 한다는 말 같습니다.
인생은 찰나이지만 사람의 영혼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음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며, 쓰나미로 죽었다고 생각하는 히아사가 죽지 않고 살아 있을 거라 말하는 아버지의 원망 아닌 원망을 뒷받침하는 표제입니다.
거대한 쓰나미를 향해 꼿꼿하게 서 있을 히아사의 모습을 상상하며 인간의 내면, 영혼의 움직임, 동일본 대지진이 가져온 변화, 성소수자의 삶 등 마이너리티 한 소재를 여러 은유를 통해 곱씹게 만드는 의뭉스러운 작품입니다.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의 초기 작품을 만난 듯 깊이를 알 수 없는 허무함과 상실이 느껴지는 소설《영리》. 데뷔작 한 편으로 아쿠타가와상과 《분가쿠카이》신인상을 동시에 최초 수상한 '누마타 신스케'의 작품으로 100 페이지가 채 되지 않은 볼륨감에도 불구하고 깊이 감이 있는 소설입니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