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로 하여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
편혜영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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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고치러 병원 갔다가 병 얻어 온다는 말이 실감 나는 편혜영의 신작 《죽은 자로 하여금》은 '현대문학'에서 야심 차게 기획하고 있는 핀(PIN)시리즈 첫 번째 소설입니다. 마태복음 8장 '죽은 자로 하여금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에서 따온 섬뜩한 제목은 지방 중소병원의 어두운 일상과 무너진 소도시의 참담함을 담고 있습니다.



"죽은 자로 하여금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서 계속 곱씹었어. 예수는 인자하고 자비롭다면서 죽은 사람한테 왜 이러나, 사람이 죽었는데 이렇게 야박해도 되나...... 이해할 수 없었지. 한참 새기니까 조금 알 것도 같더라고."

"무슨 뜻인데요?"

"영혼이 죽은 자는 내게 필요 없다, 불신자는 불신자에게 가고 믿는 자들은 나를 따르라, 그러니까 나를 따르는 건 믿는 자로 충분하다는 뜻이려나."



병원은 모름지기 아픈 사람이 들어갔다가 쾌차하는 곳,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신성화된 공간이지만 현재  병원은 환자를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영업장소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관행은 운에 좌우되는 게임이나 마찬가지였다. 걸리지 않으면 행운이 쏟아지지만 일단 걸리면 모든 걸 내놓아야 했다."


리베이트, 의료사고, 불법 시술 등 숱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환자 우선주의'를 천명을 여기고 추악한 만행이 일어나고 있는 곳. 관행처럼 여겨지는 '간호사 태움 문화'가 버젓이 성행하는 곳입니다. 도를 넘은 직장 상사의  갑질은 재가 되도록 태워버려야 나올 수 있는 아이러니입니다.

 

소설《죽은 자로 하여금》은 병원에서 일어나는 메디컬 드라마 같지만 사실 무주라는 복합적인 캐릭터에 핀 조명을 비추는 농밀한 심리극입니다. 이인시의 병원으로 오기 전 물심양면으로 받아 챙긴 관행으로 쫓기다시피 옮긴 직장, 아내의 임신과 유산으로 소원해진 관계, 병원의 무시 못할  실세 이석과의 마찰, 그리고 팔자에도 없는 양심선언. 여러 일들이 무주에게 닥치면서 파괴되어가는 한 남자의 내면을 다룹니다.


역시나 사회의 부조리와 개인의 어두운 도덕을 포착하는 편혜영 작가의 이번 소설은  이석과 무주의 대립을 핑계 삼아 긴장감을 높입니다. 흥망성쇠를 거친 이인시의 조선소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어떤 도시를 닮았습니다.

굉장히 무례한 소설이었습니다. 생각 없이 들었던 소설은 주말 내내 무거운 기운을 드리워 잠식했으니까요. 기분이 쉬이 회복되지는 않을 것 같으나 언젠가는  들춰 봐야 할 한국 사회의 이야기입니다. 소설의 결말이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독자의 시선에 맡기고자 합니다. 당신은 어떤 결말을 원하시나요?



*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월간 『현대문학』지면에 선보이고 이것을 다시 단행본 발간으로 이어가는 프로젝트. 여기에 선보이는 단행본들은 개별 작품임과 동시에 여섯 명이 '한 시리즈'로 큐레이션 된 것. 현대문학은 이 시리즈의 진지함이 '핀'이라는 단어의 섬세한 경쾌함과 아이러니하게 결합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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