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린이한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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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러운 경험은 말하기가 힘들다.

이 세상에 문학이 이어 다행이다."


부드럽고 고운 파스텔 톤의 책표지가 더욱 아픈 소설.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은 작가 린이한이 세상에 남기고 간 작은 몸부림이자 큰 물결입니다.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은 전 세계적으로 미투 운동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타이완에서 실제 벌어진 잔혹한 성인권 유린을 정밀히 담은 소설입니다. 37살 차이가 나는 유부남 학원 강사가 수업을 빙자해 한 소녀를 지속적으로 성폭력했지만 이를 눈치챈  어른도, 고백을 들었던 친구도, 가해자를 돕기까지 한 사람도 모두 팡쓰치를 등 돌리며 외면했다는 이야기입니다.

팡쓰치는 힘겨운 상황 속에서 벗어나는 것은 '선생님을 사랑하는 것뿐'이라며 다독였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자서전을 읽으며 위안을 느끼며 힘겨운 삶을 이어왔습니다.

지속적으로 벌여온 성관계와 널 사랑하는 방식이란 감언이설, 다양한 문학작품에 비유해 자신의 사랑을 정당화하는 역겨운 형태, 선물공세로 마음을 돌리려는 양심의 눈속임, 변태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의식이 과연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럽습니다.  

 

​"정상적인 관계란 어떤 관계일까?

다양한 경로를 통해 타인의 생활을

들여다보고 서로 비교하는 지금의

사회에서 '옳음'이란

타인과 비슷하다는 뜻일 것이다."


어른들의 성적 욕구를 위해 한 소녀가 평생을 통해 갖게 될  사랑의 개념 자체를 파괴하는 일이 다시는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의식이 자꾸만 앞서. 슬프고 분노하고 각성하게 되는 감정이 솟구치네요. 말 그대로 읽는다는 것 자체가 버겁고 힘겨웠지만, 이대로 침묵한다면 더 큰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는 의식을 갖게 되는 소설 같아요.  읽다 덮었다는 반복, 어느 때보다도 더디게 읽어내려갔던 소설입니다.


 

소설은 명문대 입학에 목마른 교육제도,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현실, 가해자의 사회적 신분이 방패막이가 되는 참담함, 성교육에 무관심했던 부모, 여성의 성(性)과 인권의 사각지대인 사회 모두의 책임으로 날선 시선으로 고발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이미 열세 살 때 영혼을 짓밟혀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을 겁니다. 그것도 믿었던 유명 학원 강사에게 지속적으로 당한 성폭력은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놓았으며 정신적인 혼란과 사람 자체의 두려움을 심어 놓았죠. 하지만 문학이 있어 다행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말하기 힘든 속마음을 글쓰기로 토해냄으로써 극복하고자 했지만 끝내 그녀의 첫사랑은 짓밟히고 말았습니다.

 

이 책이 출간된 해 2017년 2월, 3개월이 채 지났을 무렵 저자는 자살해 대만 사회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스물여섯의 전도 유망했던 그녀의 안타까운 사연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작가 린이한의 부모는 소설의 이야기가 자전 적임을 밝혔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강사는 이를 부인했고 불기소처분 되었다는 황당한 팩트. 성(性)을 금기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 낸 강력한 방패가 오히려 피해자가 죄책감을 갖게 하는 이상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성폭력은 절대로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될 범죄입니다만. 여전히  대만 사회뿐만 아닌, 우리나라에서도 진행 중인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앞으로 더 이상 이러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일, 의식의 변화화 주변의 관심이 절실해지는 때입니다. 

이 소설의 통해 작은 나비의 날개짓이지만 바다 건너 폭풍으로 커져  제2, 3의 팡쓰치가 나오지 않길 간절히 희망합니다. #WITH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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