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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도 또 바쁘다.. 아내는 오늘도 출근했다.. 사장 눈치보여 내일부터 6일까지 쉬는 추석연휴를 벌충해야 한다면서..
아무튼, 망신창이가 돼서 복학한 학교... 할게 없었다.. 베를린 장벽은 무너지고, NL이니 PD니 게거품물고 논쟁하던 선배들은 아카데미 토플을 들고 다녔다. 감방 갔다온 한 선배는 그람쉬의 진지전을 들먹이며 '애국적 사회진출'을 위해 고시공부에 매진했다. 난 뭘하지? 국문과 수업이나 청강 해볼까? 한심하다. 주술관계도 모르는. 저런 놈들이 무슨 문학 한다고..그냥 점수에 맞춰 들어왔겠군..자만심이 하늘을 찔렀다. 그때 다른 학교출신인데도 우리학교 국문과에 청강하고 있던 성식이를 만났다.그 녀석은 일본어를 전공하던 놈이었는데, 정외과를 다니다 의무병으로 군제대한 현역병 출신인 내게 살갑게 굴었다. 지는 6개월 똥방위 출신이라는 거다..그때는 얼마전에 자살한 마교수의 '가자, 장미여관으로' 장정일의' 햄버거에 대한 명상', 유하의 '바람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한다' 등등..강남의 오렌지족,야타족, 배꼽티가 유행할 때였다.그때 두루마리에 갓을 쓴 유도회회원, 의관을 정제한 유림들.. 흰 수염 날리면서 이러다 나라 망한다고 데모했다.
한 2~3주 전쯤이였나?..오랜만에 회사 근처 광화문에서 성식이를 만났다. 그는 그 이후로 국문과 대학원을 가고,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문학에 용맹정진.. 서울 7대일간지중 하나..모 일간지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문학의 최고봉은 시 야" "맞아.. 소설가들도 시인한테는 한수 접고 가지"" 한승원도 그 콤푸렉스 못이겨서 시인으로 등단했잖아" "결국 재능의 한계지! 소설이 그에게는 더 맞아.. 딸래미도 부커상 받은 인기작가에다 글쓴다는 인간들이 선망하는 대학교수!" 그는 시 전문 평론가다.. 시에 용맹정진해도 도저히 안되니 대학원가서 평론으로 돌렸던 것이다.
그래도 딴에는 '시 전문' 평론가라는 자부심이 넘친다.그는 이미 시평론집을 너댓권을 냈고 시전문잡지 필진으로 꾸준히 글을 쓰는 중견평론가다. 30년 가까운 우정을 쌓은 관계라 우리는 나이도 잊고,그 시절 문학얘기하면서 대놓고 까분다. "야, 예전에 국문과 시수업 들을때 이용악의 '오랑캐꽃'생각나냐? 코끼리 빤스입고, 문학연구 방법론이니 뭐니 강의 했던 엉덩이 대빵 컸던 교수도.. 이름이 뭐였더라?"" 말도 안되는 얘기 하면서 주어가 있고 술어가 있으니 문장이 된다고 우기는 웃기는 인간들.. 걔가 애랑이였냐? 예쁘장하게 생긴 애.. 문학에 재능은 쥐뿔도 없으면서 항상 A+ 맞았잖아! 입가에 침버캐 흐르던 늙은 교수에게 애교부리고, 맨날 강의 끝나면 교수연구실에 들락날락 했던 애..지난해 4월인가.. 문학강좌에 걔가 온거 같아.. 구찌 가방에 머플러를 하고 나비모양의 브로찌..전형적인 유한 마담의 모습이더라..강좌 제목이 "세월호 사건이후, 우리 시가 나아갈 길..자본 현장에서의 카이로스!" 였던가 그랬는데...장강명 같은 애들이 얘기하는 입진보들이 많이 참석했지.. 그 덕에 올해 대학 입학한 우리 딸래미 학자금 부담이 좀 줄었다.""그나 저나 넌 교수 언제 되냐?" "포기해야지 수도권 근방 대학 보따리 장사하면서, 여기저기 강의하고, 글쓰면서 그냥 이렇게 살란다.. 수입은 한달에 300 간신히 돼..방학때가 수입이 없어 더 걱정이다.. 이번 여름방학도 지방 문학강좌 수입으로 간신히 버텼다. " "야 그래도 부럽다.. 포기하지 않고, 문학을 계속하고 글써서 먹고 사니까" "웃기지 마.. 난 니가 더 부럽다.. 정규직에 따박 따박 월급나오지..짤릴 염려 없지.. 연금도 나오고."
"몇푼이나 된다고..x까는 소리 그만하고. 야, 너도 돈 안되는 시평론 그만하고, 소설 한번 써봐라.. 컨닝해서 간신히 문창과 나와 주술관계는 커녕, 받아쓰기도 제대로 못할 것 같던, 박민규 같은 친구도 이것저것 베끼고 짜깁기해서 "삼미슈퍼스타~" 대박 났잖아." 이상 같은 권위있는 문학상도 받고".. "걔도 그런 콤푸렉스땜에 의자에 몸을 감아 묶고, 학생 때 한번도 쳐다보지도 않았던 인문교양 문,사,철에다 세계고전문학 공부한다잖아..'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같은 소설을 썼다니 깜짝 놀랐다니까.. 그러고 보면, 그 인간도 독해...한달에 인세수입이 돈 백정도 될라나? 그러고 생활이 되나?"
"그러니 더 악착같이 쓰는 거지.. 문학상 상금도 받고.."넌 무슨 문학상 받았냐?" "우리 평론계는 별다른 상이 없어.. 너도 알다시피 팔봉 비평상 정도.. 그것도 영향력 있는 선배,교수들 몫이고...차라리 니가 소설 써봐라..너 얘깃거리도 많잖아.. 80년 광주, 어이없는 전방에서의 위생병 생활..지금 니가 하고 있는 감정노동까지.. 차라리 삼미를 패러디 해서, 해태 아줌마 얘기를 써보는 것은 어때? 그녀의 기구한 삶.. 그렇게 미친듯이, 한맺힌 응원을 할수 밖에 없는 사연...삼미의 장명부,금광옥,인호봉,감사용 못지않게 해태에도 오리궁뎅이 김성한, 김무종이나 장채근 포수, 고아출신으로 우리나라 프로야구 최초의 노히트노런 방수원, 여관에서 객사한 빨간장갑의 마술사 김동엽감독 등 얘깃거리 많잖아. 이것저것 엮어보면 뭔가 되지 않겠냐? 요즘 기아 타이거즈 잘 나가던데.. 시의성도 있고.."
"야 임마, 직장다니면서 언제 그걸 쓰고 있냐? 코리안 시리즈가 얼마 안남았는데.. 게다가 이 나이에 신춘문예 등단하리? 어차피 나는 제도권 문학, 싫어 했잖아..난 평생 알라딘 서재에 독후감이나 쓰면서 살거야..얼마나 웃긴 줄 아냐? 우리나라 같은 곳에서도 글쓰기에 대한 욕망.. 책에 대한 욕망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근본적으로 지적 허영을 과시하고 싶은 욕구와 '좋아요'에 대한 기대때문이지만, 암튼 감동적이다..그리고 은근히 중독된다~너도 가입해봐"
"아, 시꺼.. 가뜩이나 원고밀려 있는데, 돈도 안되는 글을 거기다 왜쓰냐?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제도권 문학 운운하는 인간들.. 재능있는 뇬넘들 하나 없더라.. 차라리 능력 안된다고 말하는게 그리 어렵냐? 니가 독후감 글 몇줄 쓰고, 좋아요! 몇개인지 본다는 얼라딩인지 얄라딩인가 뭔가는 제도권 아니냐? 아서라~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체제나 구조가 변경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을 다 스펀지 처럼 빨아 들인다... 80년대,90년대 문학전성기 이후 지금 문학은 춘추전국시대.. 진공상태다.. 문학의 순수성이니, 정통성은 개뿔... 프로이트,융,아들러에 맑스,지젝이나 고진도 적당히 섞고, 정재승 책 참고해서 9.8m/sec2의 가속도 어쩌고 하는 과학얘기도 좀하고, 슈만이니 슈베르트니 모차르트니 분위기 있는 실내악에다 르누와르,샤갈,드가,피카소,클림트 그림도 언급하면서 교양지식 조금 풍기다가, 어이없이 웃긴 장면 몇개 넣고, 은꼴 장면도 적당히 삽입하면서...인간의 순수성이니 세계나 인류의 미래,부조리한 인간실존에 대해 고민하는 척 하는..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애매모호한 주제로 비벼버무리는거지...좀 식상 하지만 타이거즈의 옛날 추억담도 괜찮고, 작위적이긴 하지만 니 군대에서 찌찌봉 했던 정양의 엄마가 해태아줌마였다는 설정.. 게다가 타이거즈 기본팬들이 얼마냐? 전라도 인구도 있고.."
"아야~ 니 죽꼬 잡냐? 9.8m/sec2의 가속도로 이 형님의 분노에 가득찬 주먹.. 아구통에 맞아볼래" "아니, 뭐 꼭 그러라는 것은 아니고... 솔직히 돈만 된다면 지금은 식상한 후일담, 순수했던 첫사랑얘기나 동학했던 증조할아버지부터,여순반란 사건,6.25. 때의 할아버지,4.19, 5.18때 아버지,어머니까지 이것저것 다끌어 들여 소설쓰는 세상이야... 또 요즘 얘들이 좋아하는 공상과학소설.. E.T가 고려시대 니 33대조 할아버지였었다는 SF소설은 또 왜 못 만들겠냐?" "캬~악..호로새끼..니가 써 임마." "난 시 전공이 잖아..게다가 너 같은 전라도 출신도 아니..니가 겪었던 광주경험도 없고.." "아휴, 이 새끼 평론하더니 말빨만 늘어가지고..현란한 야부리의 드리블이구만.. 에이~ 쓰잘데기 없는 소리말고, 막걸리나 마시자."
청계천 광장에서 적폐청산 문화제를 한다..빡빡머리 조계종 스님들..이은미, 전인권, ...역쉬, 가수는 가수야...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아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야, 임마.. 형님 술이나 따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