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난다, 영혼의 자서전 - 궁극의 자유와 행복으로 이끄는 심오하고 풍요로운 영적 순례
파라마한사 요가난다 지음, 김정우 옮김 / 뜨란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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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자유와 행복으로 이끄는 심오하고 풍요로운 영적 순례"라는 부제에 이끌려 '덥석' 선택한 책이다. 요즘 정신적으로 많이 허기졌던 모양이다.책 속표지에 소개된 저자 "파라마한사 요가난다"는 힌두교,불교,기독교,이슬람교를 비롯하여 철학,인문학,과학,예술등 다양한 경계를 넘나들며 진리의 보편성을 설파하였으며 그의 가르침은 자아의 벽을 허물어뜨리고 진정한 대자유를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큰영향을 주었다고 씌여 있다. (스티브 잡스가 엄청난 영향을 받아 매년 한번씩 아이패드를 통해 이 책을 읽었다는 사실!)

 

또 이 책은 20세기 최고의 영적 도서로 선정되었고, 현재까지 전세계 30여개언어로 번역출판되었으며 각국의 유력지에는"넋을 놓고 영원히 감동받을 심오한 지혜가 담겨 있다" 거나 "진정으로 경천동지할 책이다" 등으로 소개되어 있다. 우와~ 내가 바라던 바로 그 책이구나! 이런 책을 이제야 만나다니...허겁지겁 몇 장을 읽는 동안, 내면의 허기와 욕구불만을 한권의 책으로 채우려 했던 것은 나의 지나친 욕심이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저자가  아시아형 콜레라 걸려 죽을뻔 하다 '라히리 마하사야'영적 스승의 사진에서 방사된 빛을 보고,살아난 기적(37쪽)에서 부터 시작해서 요가와 명상수련을 통해 공중부양하는 성자 '브히두리 마하사야'와의 만남, 12살이후 68세까지 56년동안 음식과 물을 섭취하지 않고 수행하고 있는 '기리발라'라는 이름의 성녀와의 대화(735~737쪽) 등에 이르기 까지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신비체험과 어렵기만 한 힌두교,기독교사상에 대한 언급들..

 

제대로 책읽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불경스럽게도 '허경영'이 생각났다. "내 눈을 바라봐!" 그 양반은 지금 뭐하면서 살고 있나? 쩝... 이 책은 나하고 궁합이 맞지 않는 모양이다고 자위하며 들숨,날숨 호흡에 집중.. 777쪽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게 되었다. 페이지의 3분2를 차지하는 사진 한장..헉,숨이 막힌다. 허경영이? 아니다. '요가난다'가 죽기(의식적으로 육신을 버리는 마하사마디) 한시간 전에 촬영한 사진이다. 큰 눈의 형형한 눈빛, 온화한 미소를 지은 모습."육신은 떠나지만 나의 활동은 계속될 것입니다. 내 영혼도 계속해서 살아갈 것입니다.육신이 떠난 다음에도 나는 신의 메시지를 가지고 세계의 구원을 위해 여러분 모두와 함께 일할 것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소름이 돋는다. 느닷없이 허기가 몰려와 라면 끓여 막걸리를 마셨다. 배부르고, 알딸딸 해진다. 천국이로고~딸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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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8-30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보니 제가 라면과 막걸리를 같이 먹어본 적이 없어요. 저한테 신선한 조합입니다. ^^

sprenown 2017-08-30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장하지는 않지만, 몹시 허기진다 싶을때 같이 드시면 아주 든든합니다. 다만 트림이 자주 나올수 있으니 앞에 사람이 있을때는 주의바랍니다. 살짝 고개를 돌리거나 천장을 향한다고 해서 해결될 상황이 아닐겁니다.ㅎㅎ
 
철학자의 사물들
장석주 지음 / 동녘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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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장서가(3만여권)로서 이름높은 장석주의 사물에 대한 철학적 에세이다. 신용카드(라자라토)에서 부터 시작해서 휴대전화, 자동판매기, 세탁기, 비누, 탁자,병따개, 시계를 거쳐 활, 망치,추(아도르노와 호르크 하이머)에 이르기 까지 30개의 사물과 그와 관련된 철학자들의 언술이 나온다. 우리가 흔히 스쳐지나가는 일상의 사물에 대한 깊이 있는 관찰과 사물의 핵심을 찌르며 철학적 사유로 넘어가는 통찰력. 이러한 능력은 시인으로서의 감수성과 문학평론가로서의 예지를 함께 갖춘 저자의 탁월성에 기여한 바 크다. 책을 1년에 1000권씩 사들여 끊임없이 읽고,문장노동자로서 계속해서 글을 쓴다는 장석주. 그가 진정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으나 한편으론 부럽고, 존경스럽기 조차 하다.  

 

저자의 사물에 대한 관찰력과 종횡무진한 상상력의 결합은 사과편에서 더 돋보이는데,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에 이르러 그에 대한 매우 호의적인 평가가 인상적이다. 그는 좋은 삶이란 끊없이 갈망하는 것,자신이 만족하고 멋지다고 생각하는 그 일에 매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곧 죽을 것임을 기억하는 것은, 내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가장 도움이 되었던 도구입니다. 왜냐하면 외부의 기대,프라이드,부끄러움,실패 등은 죽음 앞에서 모두 무의미해 지기 때문입니다. "그는 기업가를 넘어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진지한 탐색을 보여준 인문학자,방황하는 영혼에게 가야할 길을 가리키는 현대의 구루가 아니었을까?(187쪽)

 

사물에 대한 철학적 사유와 더불어 이 책에는 저자의 고달프고,힘겨웠던 젊은날의 추억이 새록새록 묻어나는데 특히 '탁자'와 '시계' 편이 그러하다.

 

식탁이 없던 시절, 스무 살의 그는 시립도서관이나 음악감상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점심끼니를 잇는 날보다 건너뛰는 날이 더 많았지만,자장면 한 그릇을 먹고 난 뒤의 포만감에 황홀해 했다.  아직도 식탁이 없었던 시절,스물셋에 결혼하고 이듬해 첫아들을 얻었으나 여전히 가난한 가장이었던 그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시립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면 달랬고, 어쩌다 작은 원고료를 손에 쥐는 날이면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중화반점에서 자장면을 먹었다. 몇 해전 우연히 방송에 나오는 지오디의 노래 <어머님께> ~자장면 하나에 너무나 행복했었어/하지만 어머니는 왠지 드시질 않았어/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를 듣고 아,가난의 풍경은 다 엇비슷하구나(120쪽)하면서 눈물 흘렸을 것이다.

 

1970년대 중반 초겨울 그는 청년 백수였고,딱히 살아가는데 시계가 필요없는 사람이었지만 청계천 헌책방 거리를 서성이며 자꾸 시간을 묻는다. "지금 몇시예요?" 그날 추위가 밀려오는 거리에서 그는 스스로 무가치한 인간이 아닌가 하는 불안과 초조함에 감싸였다. 이후 습작노트를 불에 태우고 일자리를 구한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손목시계를 산 것이다. "손목에 시계를 차자 시간의 구획들이 의식과 생활을 분절했다. 나는 자진하여 시간의 포획,즉 시간이라는 촘촘한 그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한편,구두에 대한 마르틴 하이데거의 철학적 사유는 고흐의 그림 '끈 달린 낡은 구두'에 관한 묘사에서 뛰어나게 드러난다."닳아빠진  구두 안쪽  어두운 틈새에서 노동자의 고단한 발걸음이 밖을 응시하고 있다.딱딱하고 울퉁불퉁한 구두 안에는 황량한 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한 없이 멀고 단조로운 밭고랑을 수 없이 밟고 지나갔을 그 느릿느릿하고 끈질긴 발걸음이 굳어 있다.가죽 표면에는 흙의 축축함과 비옥함이 어려있다.구두창 밑에는 땅거미 질 무렵 들판의 고독이 납작하게 눌러져있다." 화가의 마음을 흔든것은 구두에 각인된 노동의 흔적들이 증언하는 가난한 삶의 고달픔과 애잔함 이었을 것이다.(228쪽)

 

또 여행가방편은 보면, "낙타는 죽어 사라졌지만 그 가죽은 여행가방으로 변신했다.트렁크를 감싼 낙타 가죽은 닳고 낡았는데, 이것을 바라볼때 가슴에 아릿한 통증을 느낀다. 늙은 부모를 지켜보듯이, 노인들의 얼굴에는 반점이 생기고 주름은 깊어간다. 삶은 그자체가 하나의 여행이 아닌가! 다시 돌아올수 없는 편도여행. 우린 떠난 곳으로 돌아올수도 없고, 이것을 두번 반복할 수도 없다. 한번으로 끝나는 것. 그래서 그것이 그토록 감미로운 것이다"(232~237쪽)라고 무척 감성적 표현을 사용하여 서술하는데 다소 사삭스럽게 느껴진다. 

 

저자의 사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 철학적 사유는 이 책 뿐만아니라 모 일간지의 기고문에도 드러나는데 소개된 내용 중 으뜸은 박완서선생의 수필'호미'다. "고개를 살짝 비튼 것 같은 유려한 선과, 팔과 손아귀의 힘을 낭비 없이 날 끝으로 모으는 기능의 완벽한 조화는 단순 소박하면서도 여성적이고 미적이다." '이 얼마나 기막힌 묘사인가?'또는 '무릎을 칠 만하다'는 표현은 진부하고도 상투적이다.(그렇다고 혀를 내두른다든지, 눈알이 튀어나온다든지,놀라 엎어졌다든지 하는 과장된 몸개그 언사는 되레 박완서 선생의 인격과 이 아름다운 인용문을 함께 천박하게 만드는 것이므로 삼가야 할 것인바, 내겐 달리 뭐라 표현할 재주가 없다.) 

 

돈벌이에 급급해 허겁지겁 살아온 나는 도대체 나를 둘러싼 사물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고,애정을 느끼며 의미를 부여해 왔나? 솔직히 난 뭐, 얼리어답터처럼 새로나온 물건은 커녕, 예전부터 있었던 사물에도 고양이 같은 호기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냥 '그런가 보다'하는 정도의 무관심정도가 아니라 항상 있던 자리의 물건이 없어져도 제대로 인식조차하지 못하는 무심함이랄까 둔감함 같은게 있는 편이다.

 

이 기회에 나도 주위의 사물들을 둘러본다. 사무실 책상위의 '스테이플러'(일명, 호치키스)...분열을 봉합하는 융화의 상징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것 때문에 옆동료와 다투었던 기억이 있어 씁쓸하다.(아마도 내 것, 네 것 하면서 소유관계를 따졌던지, 심(알)이 없었다던지...) 음, 또는 내 지친 육신의 무게를 온몸의 견디며 서서히 닿아지는 '슬리퍼'는 또 어떤가? 이 슬리퍼는 고교시절의 좋지 않는 기억 소환한다. 악질 선생의 손에서 화풀이용 '쓰레빠'로 변신하는 것이다. 쫘~악 찰진 소리.지금도 귓가에 들리는 듯 하다.(영어를 담당하던 그 선생은 우리반 담임이기도 했는데 검은얼굴,작은키에 비쩍 마른 체형인데다 볼록한 올챙이 배를 하고 있어 '이티'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이 별명은 상당히 중의성을 띠고 있는데그의 생김새와이름과 담당과목이 여기에 다 포함되어있는 것이다.그의 이름은 외모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영국'이어서 이선생,잉글리쉬티쳐와 함께 외형까지도 아우르는 별명 '이티(E.T)'로 낙착되었던 것인데 누가 처음이라 할 것없이 학생들은 모두 언제부터인지 그렇게 불렀다. 그가 질질 끌고 다니는 합성고무소재의 황갈색 쓰레빠는뒷꿈치가 살짝 벌어져 있고 엄지발가락 부분은 굵은 철사로 꿰맨것인데, 탄력성은 무척 좋았는데 그가 화가날땐 오른발 스냅을 이용해 벗어던지면 3바퀴 공중제비를 한후 어김없이 그의 손아귀에안기는가 싶다가 바로 연속동작으로 싸다귀를 날리면서 학생 뺨에 벌겋게 격자무늬를 새겨넣는 것이다.)

 

각설하고,

술병따는 '오프너'? 없으면 숟가락을 써도 되고, 최근 막걸리로 주종을 바꾼 후론 애정도가 담뱃불 붙이는 라이터에도 못미친다. 그럼 뭐가 있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니 내가 애정해 마지않는 사물이 하나 있긴하다. 바로 ATM이라고 불리는 현금지급기. 어두운 건물의 한 구석에서 항상 묵묵하고, 듬직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녀석. 어둠속에서도 스스로 빛을 밝혀, 손가락 몇번 누르면 내 의도대로 실행하는 기특한 친구. 특히'촤르르르~' 돈세는 소리는 술 마실 생각에 들떠있는 나의 아드레 날린 분비를 촉진하면서 황홀케 한다...게다가 "놓고 간 물건이 없는지~" 인사성도 밝은, 착한 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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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8-29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말에 현금지급기를 만나면 안 됩니다. 내가 돈을 원하면 현금지급기는 수수료를 챙기니까요.. ^^;;

sprenown 2017-08-29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그럼요, 현명한 소비습관? 아니,금융거래 습관이지요.헌데 갑작스럽게 축의금,부의금이 필요할땐 어쩔수 없지요.ㅠㅠ
 
호모 루덴스 - 놀이하는 인간
요한 하위징아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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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징어? 어렸을때 알았던 이름은 '호이징거'라고 했던 것 같은데...(아마 하위징어가 더 원음에 가깝기 때문이겠지.) 이 책은  유명한 문화인류학(철학)서적으로, 그리 어렵지도 않다. 주제는 다 들 알다시피,"놀이는 문화의 한 요소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인데,하위징어는 고대 제례의식 부터 현대의 정치행위까지 모든 인류의 행위양식이 다 "놀이"에서 근거한 것이라는 사실을 여러가지 역사적 풍습과 의식등을 예로 들어 논증한다.

(현대의 인기있는 스포츠중 하나인 축구도 아이들이 해골을 차고 다니던 놀이에서 연유하지 않았던가? 또한, 사랑놀음이라는 것도 밀당의 연속으로 본질은 남녀간의 유치한 놀이에 불과하다.)

어쩌면, 하위징아의 관점에서는 이 알라딘 서재에서 "좋아요"를 기대하면서 내 글을 봐주길 바라고, 인정욕구에 징징대는 나 같은 인간 역시 알라딘서재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것이다. 알라딘 서재 역시 이러한 놀이터를 제공하면서 더 많은 책을 팔아먹기 위해 이렇게 '놀고 있는' 것이다.(좋아요의 품앗이나 댓글놀이, 친구신청,서재지수,순위매기기 등 기능의 확장과 업데이트 통해)

 

자, 그럼 지금부터 한번 놀아나 볼까?

 

 예전에, 중국 제자백가중에 한사람일 뻔 했던 놀 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놀고 있다. 고로 존재 한다."

  "놀아라, 인간들이여! 그것이 너희들의 본성이려니."

 

* 놀 자(BC 453년?~ ?)는 지금의 윈난성부근에서 태어나 '희자' '소자' 등과 함께 활동했던 인물로, 한 학파를 이루지는 못했으나, 따르는 제자들과 함께 "죽음놀이"에 심취하여 젊어서 죽은 것으로  전해 진다.. 그의 죽음놀이는 이후 문화예술계와 철학계에 영향을 미쳐 현대에 와서도 많은 문화예술인과 철학자들이 그를 흉내내다 따라 죽었다.

 

노동력 상실을 우려한 위정자들에 의해 그의 이름<여기 나오는 노자를 제외한 그 이후의 이름들은 실존인물이었음에도 본명이 밝혀지지 않아 필자가 편의상 명명한 것임을 밝혀둔다.>  은 역사에서 묻혀 졌다가 최근 여행,숙박관련업체의 TV광고(출연:오달수)에 힘입어 잠깐 언급되었다. 그 광고는 얼마 못 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중단되었다. 한편, 중국 소수민족 출신 재야 사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그가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여 이에 위협을 느낀 공자학파 측에서 그에게 '죽음놀이'라는 새로운 놀이를 소개해 주었다고 한다.

 

또한 그의 가계도를 오랜세월 추적,연구한 윈난성의 한 재야학자에 따르면, "그의 가계는 원래 노자(함곡관에서 국경수비 관리 윤희에게 '위선과 가식을 버리라'며 도덕경을 전해준 뒤 남쪽으로 내려온 것으로 추정됨)에서 시작되었으며 '녹 자'(양귀비와 야생대마를 사용한 놀이방법을 개척했다),'논 자'(술,노래,춤을 이용한 다양한 사랑놀이 방법을 창안. 음주가무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 후에 중시조로 추앙받았다.)가 그의 직계다"고 주장한다.

 

그의 죽음 이후 제자와 가족들이 중국 각지(지금도 베트남북부 소수민족인 흐몽족[빨간족과 파란족이 있다]의 의상과 축제문화에 희미한 흔적이 남아 있다)로 흩어져 살았는데 '놓 자'(인간과의 놀이에서 싫증이 나서 달과의 놀이방법을 창안. 우리나라에도 일부지역에서 아직까지 달놀이가 전승됨.그가 죽은 자리에 달맞이 꽃이 피었다고 전해짐) 에서 그 명맥이 끊겼다고 주장한다. 일설에는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놓 자'였다고도 한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놀 자' 계통의 문화예술인들이 많이 계셨지만, 드러내지는 않았는데 '놀 자'사상을 존재론적 철학의 경지로 끌어올리신 분은 천상병시인이다. 그 분은 우리네 이승에서의 삶 자체를 '소풍'으로 규정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의 신빙성에 의문을 품는 사람이 있어 또 한가지 덧붙일 것이 있다. 야스퍼스 차축시대의 평행이론으로 보면 '놀 자' 사후 고대 그리스에서는 에피쿠로스(BC341~BC271)가 주도하는 쾌락주의학파가 번성하였는데,'놀 자'사상이나 철학과 그 주장내용이 놀랍도록 유사하다. 에피쿠로스는 "모든 행복의 시작과 뿌리는 쾌락이다. 심지어 지혜와 문화까지도 여기에 귀착된다"고 주장하고, 친구들과 제자들에게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라고 독려했다. 에피쿠로스의 쾌락철학은 지중해를 넘어 인근국가로 퍼져 약 500여년간 맹위를 떨치다가 기독교도에 의해 말살되었다는 사실이다.이후 313년 기독교가 공인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뭔가 사악한 음모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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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8-28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월요일 오전에 글 마지막 문장을 보니까 기분이 급다운했습니다... ㅎㅎㅎ

sprenown 2017-08-30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어~ 이런 낭패가 있나..저는 ‘놀자고‘ 하는 말인데요..그냥 재밌게 노세요!
 
난세의 인문학 - 제자백가 12인의 지략으로 맞서다
신동준 지음 / 이담북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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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자신만의 안목으로 해석된 고전들...나같은 고전의 문외한이 읽기에는 어지럽다. 동양고전에 대해 많이 읽고,잘 알아 정통한 상태에서나 저자의 다양한 해석에 대한 이해가 가능할 것인데, 이제 겨우 소학에 입문한 내가 소화시키기에는 어렵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책이 2015년 청소년 교양도서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쩝, 요즘은 왜이리 반성할 일이 많을까? 지나친 반성은 건강을 해칠수도 있으니 이제는 지나친 반성도 반성해야 할 지경이다.이 사태를 어찌할 꼬?

 

다만 인상깊은 대목들은 다음과 같다.

 

1. 논어 옹야편의 문질빈빈: 문(文, 글을 꾸미는 형식)과 질(質, 글의 내용이 되는 바탕)이 잘 어울려 아름다운 모양. 덕을 빛내는 예악(禮樂)과 덕의 본질인 도의(道義)가 갖추어 있는 모양. 문질빈빈이 된 후에야 군자가 된다고 한다.(군자의 길은 그 얼마나 험난한가? 나와 같은 소인배는 그 길에 감히 나설 엄두 조차 내지 못하겠다.)

2. 학계 일각에서 동서의 정치사상을 비교검토하면서 소크라테스를 공자,플라톤을 맹자, 아리스토텔레스를 순자, 마키아벨리를 한비자의 비교대상으로 삼는것.(저자가 인문학에 대해 설명하면서 공자는 문학,맹자는 철학,순자는 역사학에 가장 가깝다는 주장 역시 일견 그럴듯하긴 하지만 다소 획일적인 구분이 아닐까 싶다.)

3. 18세기 일본제왕학의 선구자 소라이가 '태평책'에서 군주의 역할과 관련해 기술한 내용(72쪽)

 "군주는 설령 도리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비웃음을 살만한 일이라 할지라도 백성들을 편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 어떤것이라도 기꺼이 하겠다는 생각을 가져야만 한다. 그런 마음을 가진 자만이 진정한 백성의 부모가 될 수 있다."(일본 근대화의 성공요인이 여기에 바탕한 것이 아닐까 싶다.메이지 유신 당시 적극적인 개국론을 주장한 대표적 인물인 요시다 쇼인, 그의 사상은 이후 후쿠자와 유기치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4. 삼국시대 유비의 가인술(속으로는 음흉한 생각을 품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인자한 척하는 것)에 대해 언급한 부분(83쪽,84쪽)

 "유비의 특기는 보통 뻔뻔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그는 조조를 비롯해 여포,손권,원소 등에 붙으면서 이쪽저쪽을 오간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남의 울타리 속에 얹혀 살면서 이를 전혀 수치로 생각지 않은 것은 물론 울기도 잘했다...그러나 이 또한 본래 영웅의 모습이다. 그는 조조와 쌍벽을 이뤘다고 할수 있다. 두사람이 술을 먹으며 천하의 영웅을 논할 때의 모습을 보면 조조의 속마음은 가장 시꺼멓고 유비의 낯가죽은 한없이 두꺼웠다. 서로 상대방을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던 이유다."

 

이 책은 공자,순자,한비자, 귀곡자,손자,상자,관자,묵자,맹자,노자,열자,장자 등 제자백가 12인의 사상을 오늘날 같은 난세에 어떻게 해석,적용하여 부국강병(또는 회사경영의 생존전략)을 이룰수 있을까하는 점에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매우 현실적인 입장에서 기술되었다.다만 이러다 보니 '견강부회'의 느낌이 없지 않다. 이들의 사상과 철학을 제대로 알려면 시간나는대로 고전공부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텐데, 솔직히 쉽게 손이 가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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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 연꽃의 길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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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에 의한,심청을 위한,심청에 대한,소설이다. 마지막 부분 662쪽 12. '미소'는 가섭에게 보낸 염화미소일 것이다!

  "심청은 눈을 감고는 한번 빙긋이 웃었다.오물조물한 입이 조금 움직였을 뿐. 실컷 울고 난 사람의  웃음처럼 그건 아주 희미했다."

 

채만식 선생이후로 심청에 대한 재해석이 한두번 정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 황 작가의 심청이 마지막이 될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한민족인 생존해 있는 동안은 끝없이 심청은 부활 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춘향이도 재해석되고, 심청이도 재해석되는 이유는 뭘까? '한'을 기반으로 한 우리 문화의 원형일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민족은 한의 민족. "은근과 끈기"의 민족성으로 여기까지 왔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특히 조선시대 우리 여성들, 남성중심의 유교적 이데올로기에서 얼마나 많은 춘향(절개로 상징이)와 얼마나 많은 심청(효도로 대표)이가 희생됐는가!(열녀문을 세워 가문의 영광을 드높이기 위해 남편따라 죽기를 강요했다거나,허벅다리를 잘라~등등의 효행과 관련한 얘기들..)

 

심청의 기구한 운명은 공간적으로 한국에서 중국본토를 거쳐  타이완, 싱가포르, 류쿠, 나가사키를 거쳐 다시 한국으로 온다.그 과정에서 제국주의 또는 식민주의가 시작된 1840년경(아편전쟁에서부터 동양이 서양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지금 시진핑이 그 옛날의 영광을 찾으려고 한다.)에서 부터 시작해서 우리나라가 일제에 의해서 개항한 제물포에 이른다.시간적으로는 심청의 나이 15살부터 80살무렵까지이다.

 

심청이 일본의 명치유신을 겪는 과정은 자본주의가 팽창할 무렵이다. 제국주의,식민주의는 남성중심의 힘의 세계다. 여기에 대응할수 밖에 없는 심청은 세계의 폭력을  어쩔수 없이 받아들이지만 자존심(자존감)까지는 절대로 버리지 않고 참아낸다.또한, 심청이 팔려서 유곽생활을하면서 사랑하는 사람도 만나지만...그에게 절대로 복종하거나 의존하지도 않는다. 여기서 근대성에 눈뜨고, 자아를 발견한 심청의 새로운 모습(주체적 여성상)이 엿보인다. 이 소설은 간혹 성애장면의 정밀묘사가 조금은 거슬리기는 한다.(황 작가의 체험이 반영 되었을게 분명하다.) 그러나 리얼리즘과 현장성을 담보한 황석영 작가의 필력과 문체의 힘이고, 그의 매력이라고 해두자.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웅서사시.. 영웅은 태어날때 부터 다르다. 남성영웅들은 금알이나 금두꺼비에서 태어나듯 화려하지만, 심청은 다들 알다시피, 태어나자마자 죽은 어머니, 봉사 아버지..처절하고 비참한 환경이다. 팔려가서 갖은 고생을 한 이 영웅의 이야기 결말은 모든것을 받아 들이고,베푸는 삶이다. 모성으로의 회귀, 관음보살!

 

황석영 작가의 우리 구비문학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손님','바리데기'등에서 부터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제는 동아시아에까지 뻗어 간다. 황 작가의 현란한 야부리는 가공할 만하다. 오죽해서 문단에서 별명이 황 구라.(술자리에서 흥에 나면 혁대 풀어서 좌중을 휘어잡는 뱀장수 흉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한다)

 

우리 문화 원형질로서 한의 정서는 아마도 시베리아 바이칼에서 왔을 것이다. 동아시아 샤먼의 원류...이 소설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은 장면을 꼽으라면 류큐(유구국,오키나와)에서의 굿하는 장면이다.(515쪽)

 

유타 여인이 청이의 두 팔을 잡고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다.

"아니 이게 누구냐...내 딸, 내 딸이 아니냐?

청이는 그네의 손에 이끌려 저도 모르게 굿마당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예 엄마 저 청이어요"

류큐 말도 중국 말도 아닌 낯선 조선 말이 튀어나왔지만 유타는 아랑곳없이 미야코 사투리의 류큐 말로 댓거리를 했다.

  "내가 먼저 세상 떠나 저승에 가 있더니 내 딸이 만리타국 우치나에 산다 하여 용왕님의 덕을 빌어 예까지 왔구나. 나 떠난 뒤에 우리 딸아, 아버지 모시고 어찌 살다가 대륙을 건너 바다 나라에까지 왔느냐. 서럽고도 서럽구나."

 

진흙탕에 핀 연꽃 처럼,이 여자의 일생은 청초하면서도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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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7-08-25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 읽어봐야겠네요.^^

sprenown 2017-08-26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00페이지에 육박하여 다소 무겁고 두껍습니다. 지하철 출퇴근시 읽기엔 다소 부담스러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