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옥님이 보고계셔 1 - 억수씨 만화 연옥님이 보고계셔 1
억수씨 지음 / 애니북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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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네이버에 연재되고 있지만, 처음 본 곳은 다음의 나도만화가 게시판이었다. 매회 찾아보는 열혈 독자는 아니었지만 어느날 문득 떠올라 한번에 보곤 했다. 1권으로 묶인 분량이 다음에서 연재된 건 아니었기 때문에(혹은 내가 찾지 못했거나), 네이버로 자릴 옮긴 다음에야 책의 끝자락 내용을 볼 수 있었다.  

부산 외가에서 태어난 주인공 정수(표지에서 웃고 있는 꼬마)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외삼촌, 이모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다. 동생 정수에 비해서도 똑부러지지 못하고 어리숙하지만, 그것은 약점이 아니라 어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무기가 된다. 처가살이하는 아빠는 사람 좋지만 사회에서 성공할 타입의 남자는 아니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점을 타박하지 않는다. 혼자서 동네를 헤매고 다녀도 정수에게 호의적인 어른들 덕분에 하루종일 재미나게 놀 수 있다. 가족뿐만 아니라 정수가 살고 있는 세계의 모든 이들이 호의적이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 하지만 어린 정수에게는 모두 신나는 모험이다. 귀여운 등장인물과 훈훈한 에피소드 덕분에 기분까지 좋아지는 귀여운 만화라고 생각했다. 1권은 처가살이하던 아빠가 서울에서 취업이 되어 정수 가족이 모두 상경하는 내용으로 끝난다. 밤기차에서, 외할머니가 싸주신 삶은 달걀을 먹으며, 한 남자가 자신의 연인에게 바치는 기타소리 곁들인 노래를 들으며 가는 길은 참 낭만적이다. 마치 여행이라도 떠나듯. 하지만 현실이 그리 호락호락 하겠는가.

누구나, 잠깐의 순간일지라도 완벽하게 행복하다고 느꼈던 때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의 대부분은 아마도 어린 시절이지 않을까 싶다. 부모의 품에 있어 자신의 세계가 아직은 넓지 않은 그때, 하루하루 신나게 노는 게 최대의 숙제였던 그런 시절. 하지만 한살씩 먹으면서 그 세계는 위태롭게 흔들리다 결국 허물어지고, 그로 인한 충격은 사람을 방황하게 하고 변화시킨다. 그것이 곧 성장이리라. 정수가 훌쩍 큰 모습으로 진행되는 다음 내용은 그 전과 비교하면 아주많이 어둡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뭐, 그건 다음 권을 보면서 생각하면 되겠다. 1권에서는 그저 꼬마 정수의 귀여운 모습을 즐기면 된다. 정말정말 귀여우니까>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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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마중 - 유년동화
김동성 그림, 이태준 글 / 한길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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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기다리는 아이. 무심한 전차는 오고 가기를 반복하는데, 엄마는 오질 않는다. 아이는 차장에게 우리 엄마 안 오냐고 물어보지만, 차가운 겨울의 도시만큼 여유없는 어른들은 '니 엄말 내 아니!' 하고는 떠나버린다. 아이는 다시 코가 빨개지도록 엄마를 기다리고. 

우습지만, 주인공 아이와는 열 살보다도 훨씬 나이차가 있음에도 나는 때때로 이 아이에게서 내 모습을 보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일을 하면서, 사회에 나와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책 속의 아이처럼 겨울 바람을 혼자서 맞고 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다시 이 책을 보았다. 전차 정류장에 '영차' 소리를 내고 올라선 것 같은 아이, 홀로 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 나도 참 너무한다. 이렇게 나이를 먹어서는 요 작은 아이를 나와 같다고 여기다니. 나는 이제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가 아니라 그 곁을 무심하게 지나가는 어른이면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세계가 좁아지고 좁아져 나만 남은 것 같았을 때.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모든 게 아니라 하나가 끝났을 뿐이고, 세상은 그대로인데 내가 움츠렸던 거였다. 나는 몇 번이나 이 아이를 그냥 지나친 걸까.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려주지는 못해도, 마지막 차장처럼 홀로 남은 아이를 발견해주고 다치지 않게 조심하라고 걱정해주는 어른이고 싶다. 좁아터진 내 세계에서 혼자 침몰하지 않고 다른 이에게 눈길을 주고 손 내밀 수 있는 어른이고 싶다. 그래서 마음에 구름이 낄 때마다 이 책을 보게 된다. 모자를 쓰고 코가 빨개진 아이가 구름을 녹여 비를 내린다.  

아이가 잘 돌아갔는지 화가도 걱정되었나 보다. 화가가 그려넣은 뒷이야기에 웃음이 나오면서도 안심할 수 있었다. 글과 그림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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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총 2 팝툰 컬렉션 6
한혜연 글.그림 / 팝툰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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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가 한혜연을 검색하면 이 작품 빼고는 다 절판/품절이다. 작품 구하기가 쉽지 않다. 한국에서 만화가들이 살기 힘든 건 아는데 그래도 슬픈 건 슬픈 거다. 그림은 호불호가 갈리더라도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은 확실히 있는데 이런 대접이라니ㅠㅜ 

한혜연은 심리묘사에 뛰어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오는 긴장감은 어느 장르에나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니까. 그녀가 순정만이 아니라 공포물과 형사물에도 능한 것도, 작가의 개인적인 관심 외에도 그런 재능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간 나온 작품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후르츠 칵테일>이다. 과일 연작 시리즈 연재된 작품을 모은 것인데, 그 가운데 과일이 아닌 토마토가 속해 있다. '토마토' 편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성전환에 대한 이야기다. 누구보다도 친했던 남동생이 어느 날 여자가 되었다. 그로 인한 주인공들의 갈등은 참으로 공감이 갔다. 남동생이 있기 때문에 더 감정이입을 한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피는 물보다 진하지만 토마토 주스보다는 흐릴지 모른다'라는 주인공 누나의 독백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피를 나눈 가족일지라도, 나와 다른 한 인간으로 마주하고 이해하고 사랑하지 못한다면 순식간에 남보다 못한 존재가 된다. 그리고 늘 함께하는 가족이기에 그 일은 더 쉽지 않다. 파격적인 소재였지만 무엇보다 감동적인 단편이 된 것은 섬세한 심리묘사와 작품에 깃든 인간에 대한 애정 덕분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애총>은 더욱 기대가 크다. 오랜만의 장편이기에 그렇고, 그간의 단편과 장편으로 보여준 공포와 수사물에서의 재능도 그렇고,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사건도 그렇고. 긴장감은 지금도 충분하다. 힘내라 한혜연! 당신 때문에 팝툰 정기구독 신청했다. 단행본도 나오는대로 사고 있다. 다른 작품 안 나오냐고 독촉하지 않겠다. '오후'에 연재된 단편은 안 나오는 거냐고 묻지도 않겠다. 그러니 지금처럼 열심히 만화 그려 주시길. 당신의 작품을 늘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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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식당 4
아베 야로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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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식당을 발견하시면 꼭 가족을 데리고 가시는 우리 아빠. 오토바이로 전국을 다니시며 발로 찾은 맛집을 많이 알고 계신 아빠는, 맛있는 집일수록 겉모습은 허름하다는 생각을 갖고 계시다. 그간 경험으로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아무튼 이 만화를 보면 아빠 생각이 난다. 집 앞에 있다면 꼭 함께 가고픈 식당이다. 속표지에 보이는 식당 외관도 허름하니 아빠도 좋아하시겠지. 

한적한 뒷골목에 위치한 이 식당은 심야식당이라는 이름답게 늦은 밤에만 문을 연다. 하지만 정해진 메뉴 외에도 재료만 있다면 무엇을 주문하든 만들어주는 친절한 식당이다. 인상은 조금 험하지만 마스터는 음식솜씨도 좋고, 이야기도 잘 들어준다. 

뒷골목에 있는 식당답게 여러 손님이 찾아온다. 스트리퍼와 그 단골손님, 호스티스와 야쿠자는 물론 소심한 회사원, 싸움 잘하는 부부, 늘 다이어트 중인 여자에 왕년의 아이돌스타, 조연전문배우 등등등. 하지만 이들 모두 어딘가 마음 둘 곳이 필요한 외로운 도시의 사람들이다. 그들이 풀어내는 사연은 소개되는 음식 가짓수만큼이나 다양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주인공임에도 아직 마스터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왼쪽 눈의 흉터를 보아서는 무언가 깊은 사연이 있음직한데, 작가는 아직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만화 속에서 주인공은 마치 무성영화의 변사 같다. 손님이 풀어내는 사연에 추임새를 넣고 독자를 위해 설명을 곁들이는. 주인공이 힘을 빼고 있는 덕분인지, 단골손님들과 잠깐 보이고 나오지 않는 손님들의 이야기도 생동감 있다. 화려하진 않지만 질리지 않는 집밥 같다고 할까. 언제 먹어도 맛있는 그 밥처럼, 언제 봐도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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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늙은 절집 - 근심 풀고 마음 놓는 호젓한 산사
심인보 글 사진 / 지안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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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제목에 끌려 구매한 뒤로, 책에 소개된 절들을 찾아다녔다. 때론 친구와, 때론 혼자서 다닌 그 길 모두 아름다운 추억으로 내 마음 한 구석에 크게 자리하고 있다. 이른 봄 아침 일찍 찾아갔던 선암사에서 반짝이는 봄햇살을 배경삼아 흩날리던 꽃잎은 여전히 가슴을 뛰게 하고, 밤기차를 타고 찾아간 화엄사에서는 구층암 모과나무 기둥에 기대 살짝 잠이 들었던 기억은 내 마음을 포근하게 한다. 내소사 전나무 길은 내 숨소리까지 푸르게 만들며 오래도록 그곳에 머물고 싶게 했다. 그리고 등등.. 처음에 다녔던 절들이 나에게는 좋은 기억만 남겨주었는데, 알고 보니 사람 적은 추운 날과 이른 아침에 다녀와서 그런 것 같다. 절 앞의 상행위, 큰 절들의 보수공사, 입장료 실랑이 등 큰 절집들은 너무 유명해져서인지 크고 작은 잡음들이 들려온다. 정말 안타깝다. 

 최근에 다녀온 곳은 해남의 달마산 미황사였다. 나의 약함과 어리석음이 스스로를 너무 힘들게 했던 때, 도망치듯 찾아간 곳이 내륙의 끝. 그곳에 가면 무슨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닌데 무작정 찾아간 길. 그 전에 갔던 절들과 달리 관광객도 많지 않아 정말 조용한 그곳에서 며칠 머물며 오래도록 일출을 바라봤다. 상황은 변한 게 없는데, 내 마음은 참 많이 달라진 게 신기했다. 지은이의 말처럼, 끝이 생각했는데 돌아서니 시작이었다.

그렇게 어느 순간 절집 안내서가 된 이 책이 나에게는 참 소중하다. 아직 못가본 곳이 많다. 책에 소개되지 않은 절집은 훨씬 많다. 올해가 가기 전 친구와 한 곳에 다녀오기로 했다. 가슴은 뛰는데 마음은 편해진다. 말 그대로, 곱게 늙은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뵈러 가는 기분이다. 

이 책을 굳이 분류하자면 여행서가 되겠지. 그런 책들은 책에서만 끝나면 안 된다. 직접 가서 봐야한다. 하늘을 담기에 사진은 너무 작다. 아무리 좋은 글도 공기까지 담아내지는 못한다. 자기 눈으로, 자기 마음으로 직접 경험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절집은 방문하는 사람이 적은 조용한 시간에, 천천히 시간을 들여 다녀오시길. 같은 절이라도 사람이 있을 때와 없을 때는 전혀 다른 곳처럼 보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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