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김여진 지음 / 클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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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배우 김여진의 연기를 극장에서 본건 영화 <아이들>에서 였다. 사라진 자식을 기다리던 한 부부의 아내역할이었던 그녀의 모습은 마치 정말로 그런 사람을 보는 듯 했다. 그녀의 연기는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잊고 있는 와중에, 이 책을 우연찮게 만났다. 

 

배우다. 배우(!)고 있는 사람이다.

 

 책 날개에 적힌 이 짤막한 자기소개가 왠지 그럴듯해 보인다. 책을 읽다보면 이 말이 그냥 어깨에 힘만주고 한 말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된다. 배움은 남녀노소 에게 다 해당되는 말인데, 배우가 말하는 배움은 남들과 무엇이 다를까. 나는 그것이 '사람' 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람을 배우는 것이 배우에게만 유효한 건 아니겠지만, 분명 다른 점이 존재한다. 정말 연기에 몰입하고, 그래서 정말 빼어나게 연기를 한 배우들은 심심찮게, 작품이 끝나고서도 그 후유증을 토로 하지 않는가? (그리고 대게 그런 역할은 어두운 면을 강하게 품고있다)

 

 배우가 연기에 몰입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맡은 역할에 대한 몰입인지, 배우 자신이 살면서 가져왔던 감정들에 대한 몰입인지는 각기 다를테지만, 분명한 것은 어쨌든 둘다 사람이란 점이다. 배우가 하는 일이 곧, 사람을 표현하는 일 아니겠는가. 그러니 배우가 가장 잘 알아야 할 것 또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자신 스스로 슬프지 않은, 즐겁지 않은 이가 어떻게 진정으로 다른 이들에게 그 감정을 전달할 수 있겠는가? 나는 감히 말하건데 연기를 잘 하는 배우란, 사람을 잘 배운 사람이다. (물론 사람을 잘 배웠다고 반드시 좋은 사람이 되리란 법은 없다.)

 그렇다면 (자신을 포함한) 사람을 배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뭘까? 어쩌면 그건 포괄적인 의미로 연애 아닐까.

 

<연애>라는 김여진의 첫 에세이는 이렇게 자신과, 타인과, 세상과 연애하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어쩌면 풋내기 배우가 그렇게 시작하듯, 어쩌면 모든 풋내기들이 그렇게 시작하듯, 그리고 우리가 누군가를 알아볼 때 으레 그렇듯, 김여진의 이야기는 사회적인 것에서 시작해서, 개인적으로 흘러간다. (편집자의 의도야 편집자만 알터이니)

 

상상해본다, 버릇처럼. 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상하는 배우의 습관대로. (16p) 

 

 그녀가 세상을 향해 거는 연애의 시작은 '배우' 답다. 서울대학병원 청소노동자의 (해고에 항의하는) 파업 상황의 트윗 글들을 종종 리트윗 하던 그녀는, 연극 <엄마를 부탁해>를 공연하다가 문득 자신 주변의 청소노동자들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잃어버린 엄마를 찾는 딸의 마음을 매일 말하며 연기하던 그녀에게 어쩌면 그것은 운명같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자발적으로 트친(트위터 상의 친구)들과 모여서 사회의 약자들을 위해 시위하거나 시위현장을 돕곤 했다. 누구하나 가르쳐주지 않았고, 누구하나 시키지 않았지만 자발적으로 모여서 신기하게도 트친들 속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각자의 재능을 십분 발휘해 그 일들을 실현케 했다. 트친들과 일명 날라리 라는 모임을 결성해서 고전적이고, 때론 창의적인 방법으로 부당하게 약자가 되어버린 이들의 편에서 함께 했다. 각자가 돕고 싶은 사람들, 만들고 싶은 세상을 위해 그들은 뜻을 모아 뭉쳤다. 그리고 그 연대의 힘은, (책의 후반부에 나오는, 상황은 좀 다르지만) '좋은 사람과 함께하면 어쨌건 즐겁다.' (210p) 는 의미와 같은 맥락이었을 것이다. 각자가 또 함께 꿈꾸는 세상을 위해 자발적으로 모였으니 그 과정은 힘들지만 즐거웠을 것이고, 서로를 사랑했을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그 행복한 도전들은 그렇게 지속되었다. 그리고 홍대 청소노동자들, 한진중공업의 노동자들과 함께한 김여진과 날라리들은 끝내 유의미한 결과와 성과들을 만들어냈다. 

 

 방법이 있다면 알려달라. 노동자들이, 이미 고용형태의 3분의 2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울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으로 무엇이 있는지. 어떻게 하면 불법시위자가 아닐 수 있는지. 자신과 가족의 밥줄을 지키고,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기가 이렇게 힘들고 심지어 범죄가 되어버리는 지금의 노동환경을 보면서 제발 누구든 대답해달라. 그들이 법을 지키며 살아낼 수 있는 방법을.(79p)

 

 짧게 요약했지만, 이처럼 사회속에 있던 그녀의 글을 읽는 동안에 나는 이 책을 '세상에 연애 거는 배우 김여진'으로만 예측했다. 그만큼 그녀의 말과 행동, 생각들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그렇게 거시적이지만은 않다.

 

 두번째 장은 그녀가 자선모금활동을 하다 인도의 둥게스와리로 가서 깨달은 이야기들이다. 참 솔직하다. 그녀는 자선모금활동에서 자신을 지나쳐간 사람들이 주인공 역할의 배우가 모금하는 곳에는 바글바글한 현실에 위축되었다. 그녀는 '내가 왜 여기있나' 하고 후회와 한탄을 하다가, 다시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그녀는 하루 1달러가 없어서 죽어가는 아이들을 위해 자선모금을 하고있었다. 그런데도 자신을 알아봐주지 않는 이들 때문에 움츠러들고있었다. 그것을 깨닫자 그녀의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기 시작했고, 사람들에게 더 크게 외치기 시작했다.

 

 두려움을 직시하고자 생각했다. 똑바로 보지 않으면 극복할 수 없다. 고통의 실체를 내 눈으로, 내 몸으로 또렷이 보자. 그것만 하자. 싸우려고도 이겨내려고도 하지 말고 그저 똑바로 '응시'하자 (103p)

 

 그리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실제로 굶주린 이들을 마주하고자 했고, 인도의 둥게스와리로 가는 선재수련을 쫓아간다. 그곳에서 그녀는 짧게나마 굶주림을 체험하며, 또 낯선 지역에서 고생해가며, 낭떠러지 같은 산을 올라가며 깨닫는다.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법을. 

 

풀, 돌, 물, 먼지처럼 그렇게 가볍게, 자유롭게 살면 되겠구나 싶어졌다. (113p)

 

세번째 장은, 그녀의 대학시절과 연기를 막 시작하게 될 무렵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고등학교 시절과 다를 것이라고 예상했던 그녀는 막상 시작된 대학생활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죽었다. 무섭고 슬펐다. 죽으면서까지 말하고자 하는 그게 도대체 뭔지 알고 싶었다. 그런데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 집회를 나갈 수 밖에 없었다.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 이야기들을 그곳에서는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125p)

 

그녀는 목숨까지 바쳐 무언가를 이루려는 사람들에 대한 궁금함으로 데모현장에 나가기 시작했다. 허무하게 다치고 죽어가는 이들을 보며 가슴아파했다. 그리고 그녀가 만났던 한 여선배는 그녀에게 '아름다움'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었고, 그래서 그녀는 이십대의 치기어린 마음과 자기 스스로의 기준을 통해, 조금은 다른 운동들을 하기 시작한다. 정치적인 것과는 약간의 거리를 둔, 노동자의 해고나 강제철거 같은 것들을. 첫사랑을 만나고, 사랑에 실패한다.

 

하지만 스무 살 그때, 사랑을 해야 할 나이였다. 사랑하면서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하는 나이였다. 세상도 바꿔야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돌아봐야 할 나이였다. (138p)

 

그리고 연기를 시작한다. 만화<유리구두>로 어렴풋하게 접한 연극은 시간이 지나 우연히 그녀를 연극으로 인도한다. 그리고 다시한번 우연을 계기로 주연으로 발탁된다. 연극을 거치고, 그녀는 영화를 시작한다. 아마 그녀가 연기를 막 시작하는 이 부분들이 배우 김여진에게 가장 궁금한 부분이자 흥미로운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녀의 연기인생을 모두 논하기엔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그 시작과, 여배우로서 갖는, 그리고 연기자로서 같는 즐거움과 고민들이 솔직하게 담겨있다.

 

네번째 장은 (자 드디어) 기다리던 연애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녀가 사는 모습중 가장 평범한 이야기다. 남편과의 이야가 주된 핵심이다. 자신이 출연하던 드라마의 피디와, 아는 배우의 소개로 만나 결혼하고, 또 그 결혼생활을 건강하게 이어가는 이야기들은 어느 연애사가 그렇듯 재밌다. 나아가 짧은 에피소드들 속에 담긴 그녀의 철학과 조언들은, 어떤게 진짜 서로를 위한, 서로를 사랑해주는 연애일까를 생각케 한다. 찰떡처럼 붙어있다가도 떨어져있고, 서로를 인정하는 일 같은 것들. 자신을 지키면서 상대를 지키는 법을. 물론 이 책이 이런 '이성과의 연애' 방법론 적인 책이 아니기에 대단한 것들이 수십 수백까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간과하고 있거나 혹은 거부하고 있던 것들이 솔직담백 간결하게 때때로 날카롭게 쓰여있다.

 

 한 사람을 사랑해봐야 안다. 내가 무엇에 끌리는지, 어떨 때 행복한지, 얼마나 찌질하고 잔인한지, 얼마나 자주 작은 일에 상처받고 자기연민에 빠지는지, 감정이라는 게 얼마나 쉽게 변하는지, 연애해봐야 안다. 그게 어떤 형태의 사랑이든 해보면 해볼수록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 우리 인생에서 연애만큼 매순간 자기성찰을 필요로 하는 일도 없으므로. (230p)

 

 이 책은 이렇듯 배우 김여진의 다양한 모습을 엿볼수 있게 한다.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는것과 타인을 위하는 것 어느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자신을 사랑하는 그만큼 타인을 사랑한다. 마치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서 타인을 사랑할 수 없다는 진리를 확인케나 하듯.

 

 김여진은,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고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타인이 아프지 않게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고, 배우다.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그녀는 즐긴다. 자신이 좋아서 한다. 자신의 환경이 허락할 때, 누구보다 열심히 참여하고, 움직인다. 어떻게보면 자신이 즐거울 수 있는 만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즐거움'은, 그 '일' 들을 지속케 한다.

 

그래서 나는 배우 김여진을 이렇게 말하고 싶다.

 

 '맛있는 음식을 스스로 즐겁게 요리해서,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과 나누기 위해 먼길 마다 않고 찾아가는 사람.'

 

매력적인 배우고, 매력적인 사람이다. 언젠가 함께 작업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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