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바꾼 만남 -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1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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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다보니 좌식 책상위에 책을 두고 읽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황상이 평생을 두고 잊지 않던 ‘삼근계’의 가르침. 부지런함은 그저 단발성인 나에 대해 지레 무안해서 복사뼈로 바닥을 꾹 눌러본다. 인지하지 못했던 뼈와 바닥의 단단함에 정신이 집중된다. 괜스레 다리를 바닥에 더 붙여보자, 단단한 뼈가 바닥을 밀며, 혹은 바닥이 뼈를 밀며 통증이라고 불러야 할지 말지 한 감각이 새롭게 느껴진다. 일정한 통증과 단단함을 버티어 내고, 나아가는 일.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의 이야기는 그런 부지런함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시간과 집중은 점차 감각을 삼킨다.

 

  다산이 가르친 황상, 황상이 섬긴 다산. 이 둘이 서로간의 삶을 변화시켜 이롭게 살아가는 서사는 지은이를 통해 해설로, 때로는 시 로, 부 로 이어진다. 그 어느것하나 맛깔스럽지 않은게 없다. 이런 다양한 형태를 통해 다산이 황상을 이끌고, 황상이 다산의 뜻을 받들어 흐트러짐 없이 나아가는 이야기는 어느새, 인물에서 인물로 뻗어나간다. 굳건한 나무가 단단한 가지를 뻗어 주변 나무와 공간을 공유하듯, 인연이 인연으로 이어진다. 자식은 물론이거니와, 형제와 벗까지 나아가는 길목 길목에서 뜻 은 뜻으로 만났다. 위대한 삶이 또 하나의 삶을 위대하게 이끄는 과정이 여간 감격스러운게 아니다.

 

“다산을 정점으로 당대 최고 명류들의 인연이 종횡으로 그물망처럼 얽히는 광경은 보기에도 아름답다. 큰 나무 한 그루의 그늘이 이리도 넓었다.” (448p)

 

  읽는 맛을 보자면 소설과 견줘도 부족함이 없는 이 [삶을 바꾼 만남]은 다산과 황상, 그리고 그 시대를 함께 살아간 몇몇 인물들의 업적을 기리는 가운데도 허물을 숨기지 않은 솔직한 일대기이자, 삶을 살아가는 근본적인 태도에 대한 계발서이기도 했다가 때로는 운치있는 시집이기도 하다. 지은이는 행간 곳곳에서 때론 황상으로, 다산으로, 또 다른 이들로 겹쳐보인다. 다산과 황상이 일궈놓은 삶과 만남의 기록은 분명 작은 의미가 아니었으리라고 감히 생각해본다. 고맙게도 지금에서야 이렇게 쉬이 엮인 글을 만날 수 있는것 또한, 지은이의 뜻과 노력, 그리고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 아니었겠는가. 그리고 이들에 대한 정성스런 기록과 정리는 한 인간의 성취를 그리고 만남이 주는 깨달음을, 다른 누군가의 삶에 끼워넣기에 충분한 근거가 된다.

 

 다산으로 시작해 황상으로 맺어지는 이야기를 되새겨보니, 내가 나를 향해 어떤 태도로 살아갈 것인지는 분명 내가 다른이를 어떤 태도로 대할 것인가와 크게 떨어져있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제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몇날 며칠을 걸어야 할 필요도, 편지를 부칠 필요도, 그것을 기다리거나 분실을 노심초사 할 필요도 없다. 만남의 순간은 어디에서건 차고 넘친다. 그 흔한 ‘만남’ 중에서 ‘맛남’을 가려내는 일은 때론 요원해 보인다. 하지만 그런 시대에 필요한 건 스스로 먼저 부지런함을 초석삼아 세워진 뜻(그것이 비록 남 보기에 대단한 것이 아닐지라도)과, 두터운 ‘신의’를 갖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절로 맛남을 구별하는 일뿐만 아니라, 나아가 흔히 스쳐갈 수 있는 만남을 맛남으로 이끄는 것도 가능치 않을까.

 

“인생에서 귀한 것은 서로 마음을 알아주는 것일세” (242p)

 

 정약전이 다산에게 보낸, 황상을 두고 말한 편지에서 건진 이 한 문장에서, 이 책을 통해 다시 정의된 ‘만남’이 간결하고 값지게 간추려진다. 다산과 황상, 그리고 여러 이들의 기록은 이것에 대한 명명백백한 증명이다. 여러 번의 만남에서도 마음을 나누지 못한 이, 한번의 만남에서도 지워지지 않는 이, 그리고 여태 만남을 이어가는 고마운 이들을 떠올려보면 결국, 오래도록 귀한 것은 사람 사이에 있었다. 그 깨달음의 시작에 '이런 사람이 있었네’, 라고 아무렇지 않은 듯, 깊게 기억될 것이다. 멋쩍은 내 복사뼈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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