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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길의 아폴론 4
코다마 유키 글.그림, 이정원 옮김 / 애니북스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아아, 아무래도 이번엔 정말 제대로 헛다리 짚은 것 같아. 이건 완전 BL 이잖아!..' 라고 생각했던것도 채 오랜시간이 지난 것 같지 않은데 어느덧 4권이 나온 <언덕길의 아폴론>. 역시나 실망스럽지 않았다.
카오루가 드디어 엄마를 만나며 이야기를 끝맺었던 3권에 이어 시작되는 4권, 기쁘고도 슬픈 엄마와의 만남은 자신이 알지못했던 사실들을 아프게 마주하게끔 하지만, 센타로라는 든든한 친구가 있어 카오루와 엄마는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짧은 만남을 뒤로한채 그 둘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학년이 올라가며 센타로 홀로 다른반이 되고 만다. 늘 붙어다니다 시피했던 셋은 그렇게 공간적으로 조금 멀어지고, 센타로에게는 새로운 친구가 생기는 것 같다. 게다가 모델을 해줬던 보답으로 유리카와 데이트를 하게된다. 하지만 준이치에 대한 유리카의 마음을 알고있는 카오루는 센타로가 어떻게 해서든 상처입지 않도록 애써보려 하지만 마음처럼 되진 않는다. 게다가 센타로에게 접근하는 새 친구는 락밴드부 소속.. 그는 속으로 다른 의도를 갖고 있는 듯 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카오루는 답답하기만 한데..
"물을 것도 없어. 나에 대해서는 그 녀석이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깐."
한번은 믿음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이 달라짐과 동시에 갑작스럽게 변해버린 구도, 새로운 친구의 등장 속에서 카오루는 숱한 전학을 다니며 결국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친구를 가질 수 없던 자신의 과거를 다시금 떠올리며 괴로워 한다. 카오루와 센타로, 리츠코 이 셋은 이것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언젠가 한번 제대로 언급을 해보고 싶었지만, 다시한번 생각난김에 우선 한번 짚고 넘어간다면, <언덕길의 아폴론>은 영화 <건축학개론>으로 일약 충무로 스타로 거듭난 이제훈의 출세작인 독립장편영화 <파수꾼>과 맞닿은 지점이 있다. 어떤것 하나 확실한 것 없이, 자유의지는 거세당한채 모두가 같은 곳을 향해 한길로 줄서서 가야만 하게끔 만드는 의무들과 외롭게 싸워야 하는 학창시절, 어느 누구에게나 친구(友)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많은 고민들을 잠시 기댈 수 있게끔 해주는 존재였다. 비슷한 고민 비슷한 문제를 안고 씨름하는 동안 우리는 친구에게서 비록 친구에게서 어떤 해결점을 발견하지 못할지라도 서로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혹은 그렇게 믿더라도) 서로 함께 같은 길을 나란히 걸어가는, 그래서 그 길이 혼자가 아님을 위안받고, 또 위로해가며 살아갔다.
하지만, 학교와 집이라는 작은 반경 안에서 유일한 동반자라고 생각했던 친구도, 혹은 친구들도 학년이 올라가고 반이 바뀌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면서 멀어지거나 하는 경우도 일상다반사. 누군가는 현명하게 옛 친구와의 관계를 지속해가며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누군가는 계속해서 옛 친구를 찾기도 하며, 누군가는 조금 아쉽게 생각하다가 이내 또 새로운 친구를 사귄다. 어떤 경우든 서로가 비슷한 마음이라면 크게 문제가 될 건 없다. 하지만 만약 서로의 마음이 엇갈린다면, 그때에는 남/녀 구분할 필요도 없이 상처가 생겨버린다. 영화 <파수꾼>이 그 충돌하는 감정을 조금은 거친 방법으로 표현했다면, <언덕길의 아폴론>은 재즈속에서 선율을 타고 춤추듯 복잡다양한 감정을 잡아낸다.
영화 <파수꾼>이 감정이 없단 얘기는 결코 아니다. 분명 좋은 작품임에 틀림이 없지만, 다만 상대적으로 비교할 뿐이다. <파수꾼>은 청춘 속에서 친구라는 존재와 함께 움직이는 개인의 절망에 대해 하려는 이야기와 주제에 충실히 집중했고, <언덕길의 아폴론>같은 경우는 조금 더 넓은 청춘을 짚어내지만 하나하나의 미묘한 감정들을 꾸준히 잘 캐치한다고 생각한다.
4권에는 카오루의 가족사와, 센타로의 봄바람 등이 먼저 그려지지만 역시 그것을 아우르는 카오루와 센타로가 보여주는, 청춘 속 학창시절에서의 친구란 존재와 그것을 통한 자신 존재의 혼란이 섬세하게 잘 그려져 있다. 물론 그것들이 비단 4권에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새삼 60년대의 일본이나, 2010년도의 한국이나 감정은 크게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누구나 청춘의 시기엔 비슷한 고민을 안고, 비슷하게 의지하고 위로받으며 살아가는 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니깐 모든 창작분야가 시대와 공간, 인종에 구에받지 않고 우리를 보듬을 수 있는 것이리라. 서로의 존재에 대해서 또 새롭게 질문을 던지게되는 4권, 그것들이 어떻게 흘러갈지 5권은 더욱 기대될 수 밖에 없다. 물론 권말에 수록된 단편또한 이번에도 역시 제 가치를 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