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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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전 의도치 않게 친척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한살 어린 동생과 함께 그의 방에서 있었다. 명절이나 집안 행사에서 마주치는 것이 전부인 그와 나는 그다지 친하거나 혹은 그 반대도 아니다. 소싯적에 머리카락 붙들고 싸우던 일은 이제 그냥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관계. 무슨얘기끝에 그가 나에게 물었다. 꿈이 무엇이냐고. 나는 갑자기 깔린 멍석에 당황했다. 하지만 그녀석은 진지한 눈빛으로 물어봤다. 대답했다. 그리고 왜 지금 거기에 코빼기도 가깝지 않은지 둘러댔다. 그 와중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목사가 되기위한 공부와 실습을 하고있으니, 누군가에게 말을 하거나, 꺼내놓게 하는데 능통하겠구나', 라는. 어쨌든 그는 그것들이 핑계라는 이야기를 돌려서 이야기 했다. 그것은 무엇보다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었기에 뭐라 대꾸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건 그 이후였다.
 
그는 우리 부모님과 나를 위해 기도한다고 했다. 다른 친척들을 위해서도 기도한다고 했다. 이런저런 일들이 잘되라고. 말문이 막혔다. 무슨말을 해야할지 도무지 떠오르질 않았다. 예수께 기도하라고 하지 않고, 그가 나를 위해 기도한다고 했다. 왜? 그 집안은 우리집을 비롯한 다른 친척들과의 관계는 그다지 원만하다고 할 수 있지는 않다. 물론 냉전과 같은 분위기가 시종일관 지속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무렇지 않은 분위기속에 문득 그런 기류가 감지될 뿐이다. 어쨌든, 그 이유 가운데에 기독교라는 종교가 있었다. 집안행사는 교회행사보다 뒷전이었고, 다른 친척과는 투닥거릴지언정, 자신교회의 교인들을 더 아꼈다. 모두가 모여 논의를 할때에는, 그들 자신의 믿음이나, 욕심을 버리지 않았다. 물론 그것이 비단 종교만의 문제, 그들만의 문제는 아니라 생각하지만, 어쨌든, 그들이 항상 완벽히 환영받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런 부모님들의 관계는 은연중에 나에게 약간이나마 심어졌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물론 그 동생까지 그 범주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결국 그 또한 한 범주에 들어갔던 것이 사실이니, 무척 당황스러웠던것이 내게는 당연했다.  
 
어쨌든, 나는 그에게 고마웠다. 무척이나 고마웠다. '매일? 웃기시네..' 라고 속으로 비웃고 뭉개버리기엔 그의 목소리와 눈빛이 짐짓 진중했다. 나는 더 의심하지 않았다. 물론 이야기는 선교로 흘러갔다. 우리 가족은 아마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전 무렵까지 교회를 다녔던걸로 기억한다. 나또한 부활절에 반투명한 컬러의 종이에 쌓인 달걀을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으니깐. 하지만 부모님이 교회를 다니지 않게 된건, 우리가 살던 윗집의 영향이었다. 부모님의 말에 따르면, '교회에 다퍼주고 망했다.'라고 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그렇지만, 대략 자신들의 수입에 맞지않게 교회에 헌납했었으리란 사실은 짐작이 간다.
 
한때는 가식으로 보기도 했지만, 내가 바라본 시골교회에서의, 노인들을 위로하고 묶어주는 교회, 목사의, 교인의 역할을 보았기에, 교회를 통해 조금 더 안정을 찾은 그들을 보았기에, 나는 인정하고, 그렇기 때문에 얘기했다. 삶이 지치고 힘들 때,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혹은 부유한 자 일지라도, 종교가 안식처가 되고 좀 더 나은 행복을 위한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음을. 그러니 그가 말했다. 그런데 왜 교회에 다니거나 기도를 하지 않느냐고. 나는 대답했다. 인간이 저지른 잘못은, 다시 선한 일을 행함으로써 그나마 상쇄될 수 있다. 그리고 그래야 한다. 기도를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내가 말한 '궁극적인 행복을 향한 종교의 역할'은, 선한 행동이 선행된 뒤의, '강요하지 않는, 자율적인 종교생활 = 믿음' 이었다. 그들 스스로, 보여야만 믿느냐고 반문 하듯이, 그것은 진실의 문제이기보다 믿음의 문제니깐) 그는 대답했다. 인간이 아무리 선한 일을 한다고 해도 죄가 완벽히 없을 수 있겠느냐고, 그렇다고 또 그런 죄에 대해서 괴로워하며 살아가야 하느냐고, 예수님이 그 인간의 죄를 모두 짊어지고 십자가에 메달렸다고, 기도 함으로써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차라리 선한 행위를 함으로써 자신의 과오들을 지워낼 수 있다는 '자기만족'을 정당화 하는게 나으면 나았지, 이런 면죄부라니...
 
면죄부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십자군을 모집할 때의 그 유명한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는 말을 지나치고 나니, 열흘동안 공의회가 토의를 거쳐 결정한 사항에는 그것과 똑같은 말이 들어있었다.
 
"십자군에 참가하는 자에게는 완전한 면죄가 주어진다." (31) 
 
완전한 면죄는, 십자군에 참가함으로써 그 어떤 죄든 면죄될 수 있단 것이었다. 그것이 살인이든 더한것이든. 이 무슨 해괴망측한 논리인가. 아니 논리를 들이대기에도 어리석다. 그들이 말하는 '믿음'으로 이야기 해야할 테니깐. 십자군에 대해서 아주아주 일반적이고 표면적인 이유들을 알고있고, 관심도 없던 내게 이 부분은, 그 친척동생과의 대화를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네가 말한 '면죄'를 통한 안식을 얻기 위해, 그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똑똑히 보게되겠구나."
 
부(영토)와 권력에 대한 야망, 소속 클랜으로서의 공동체 의식 + 금전적 수입을 위한 참가도 적지 않았고, 어쨌든 비잔틴제국 황제의 요청과, 교황 우르바누스 2세 자신이 처한 권력의 약화를 타파하기 위해서 제창한 십자군이라도 (과학/의학 및 생활수준/신분고착으로 비롯된 괴로움을 신에 대한 맹목적 믿음으로 타파하려했던 시기였기에) 종교에 대한 믿음이 참여에 대한 근간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성지순례행위에 타인(이슬람)에게 대가를 바치는 것에 대한 불만 등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고, 그로인해 '성지탈환' , '예루살렘 해방'이라는 거창한 슬로건이 모두에게 공유될 수 있었을 것이란 것도 예측 가능하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아무리 표면적으로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향한다 해도 그 안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셈하는 것도 새삼 새로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종교에 대한 믿음을 다시 반추해보면, 그것을 통해 (무엇보다) 자신들이 지은 죄를 면제받기 위해서 참가하거나, 지원금을 충당한 모습을 지울 수가 없다. 신에 대한 믿음은 곧 면죄의 대한 믿음과 나란히 걸어갔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나는 결국 '면죄부'에 집중해서 몰입하기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죄를 사하기 위해, 자신의 신을 위해 벌이는 살육이 과연 신이 바란것인지, 인간인 자신들이 바란것인지 질문하면서. (아니 이미 내 스스로 확신에 찬 결론을 내리고선)
 
 
<그림으로 보는 십자군 이야기>가 일단 연대순으로 민중십자군부터 차례로 언급한 것과는 다르게, 이 <십자군 이야기1>은 교황을 통해 시작된 본격적인 십자군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물론 민중십자군은 적절하게 다시 등장한다) 아마 이것은 민중십자군이 결국 종교에 대한 믿음, 면죄/천국에 대한 욕망에 그칠 수 밖에 없는 것과 비교해서 각 귀족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1차 십자군이,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종교를 넘어서는) 권력, 야망, 음모, 이기와 같은 인간 본성에 대한 요소들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3권으로 펼쳐질 이야기에서 작가가 생각하는 '중요도'에 단순히 밀린것일수도 있고 말이다.) 어쨌든, 1차 십자군은 출발했고, 매우 집중력있게 (초반에 이 멍청한 머리가 또 이름들을 헷갈려한것을 제외하자면) 읽기 시작했다. 거기엔 무엇보다도 시오노 나나미 작가가 역사의 사실적 기술 사이에 배치해둔 인물의 심리묘사와, 그리고 로마를 비롯한 고대 세계에 대한 애착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시대를 바라보는 넓은 시야, 상황을 돋보이게 하는 문학적 감수성이 이들의 원정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이끌었기 때문이리라. 
 
작가는 초반부를 서술하며 명칭에 대한 정리를 한다. 이슬람국가에서 바라보는 로마(그리스)인, 그리고 그 반대의 시각과, 프랑크인을 비롯한, (현재 와는 매우 다른) 민족적, 영토적 경계를 그 시대적 상황에 맞춰 교정해주고 시작한다. 왜냐하면,  
 
"어쨌든 동방이나 서방이나 호칭 하나도 상당히 엉성했던 것이 중세 시대이자 십자군 시대였" 으니깐. (87p 인용)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에서 그녀(작가)의 역할은 바빠진다. 사실적 기술로는 '읽게'만드는 힘에 한계가 있을테니깐 말이다. 그리고 거기에 그녀는, 다양한 인간군상에 대한 (표면/심리)적 묘사를 채워넣는다. 작가의 역량을 통한 인물들의 묘사(교황 우르바누스2세부터, 보두앵 까지)는 역사적 사실들 사이를 수놓는 다리가 되고, 또 잘 닦인 얼음과 같이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십자군에 참가한 다양한 제후들에 대한 탐구로 인해 이야기가 더욱 풍성해졌음은 말할 것도 없는 셈이다. 역사는 결국 빈틈을 남길 수 밖에 없고, 그것을 채우는 것은, 역사가의 몫이다. 자료가 근거가 되지않는다면, 그것은 결국 그 주변의 근거를 통해 추정될 수 밖에 없지 않는가. 그것들을 이제껏, 거의 비슷한 모습(태도)으로 살아가고 있는 인간군상에 대한 혜안으로 받춰주는 이것들이야 말로 과거의 역사를 현재서도 짚어볼수 밖에 없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어쨌든, 나는 시오노 나나미가 그리는 각 인물들이 심리묘사가(비록 작가의 판단일지라도) 그들의 행동을 더욱 찰지게 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제1차 십자군에 대한 기록을 남긴 것은 모두 성직자들인데, 이런 사람들은 전략적 발상과는 거리가 멀다. 인간은 자기 관심 분야가 아닌 것에 대해서는 기록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나의 지나친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결과적으로는 이처럼 되었다. (111)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본 인물의 묘사는, 시대적 이야기를 좇는 즐거움과 더불어, 독자들이 그 인물에 몰입할 수 있게 해주고, 나아가 원정과정에서의 완급조절과, 작가의 적절한 개입은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며, 집중력을 더해준다. 그리고 거기에는, 그 시대를 지금의, 작가 자신의 시각으로 반추하는 것이 빠질수 없다. 나아가 그런 시각에서 탄생된 고차원급의 유머러스함은 또 얼마나 즐거운지.
 
십자군은 프랑스의 유력한 수도원이던 클뤼니 수도원이 불을 붙이면서 시작된, 말하자면 종교가 주도한 ‘사회개혁운동’ 이었다. (119)
 
이렇게 그리스도 전사들은 그리스도교식으로 말하자면 ‘속죄’. 동양에서 말하는 ‘목욕재계‘, 내가 보기에는 ’집단 세뇌‘를 마쳤다. 사흘째 되는 날 저녁 속죄를 마치자, 지금까지 사람들 앞에서도 거리낌 없이 말다툼하는 사이였던 레몽과 탄크레디가 우애의 증거로 서로 껴안았다. 그걸 보면 나름대로 효과는 있었던 모양이다. (233)
 
또한, 사실적 표현의 경계를 묘하게 오가며 문학의 그것과 같은 서정적 표현이 담겨있는 묘사는, 인물의 감정에 더욱 깊이 몰입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당장 내 앞의 펼쳐진 이야기가, 글자와 여백을 넘어서 그 시대를 눈앞에 투영하게끔 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해준다. (다만, 이런 감상적 표현은 아주 드물다)
 
그날은 ‘철의 다리’ 맞은편에 펼쳐진 평지에 천막을 치고 밤을 보냈다. 병사들은 앞을 다투어 안티오키아를 보려고 했는데, 바라본 자가 우선 감탄하고 그후 바로 절망한 것도 이 무렵일 것이다. 오리엔트에서도, 가을엔 해도 달도 한층 빛을 더한다. 그리고 모래먼지의 방해를 받는 날이 적어서 중근동 전역이 가장 아름다워지는 계절이다. (133)
 
마지막으로 언급할 것이,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인정과, 작가 의견의 개진 방법이다. 작가는 미묘한 사실이나, 주관이 개입될 수 밖에없는 판단지점에서 다른 역사가들의 의견을 언급하며 인정하거나, 덧붙이거나, 혹은 반대의견을 꺼내놓는다. 그것은 작가가 펼치는 객관적 역사로서의 신뢰를 강화하고, 작가의 시각을 다른 역사가들과 (간단히라도) 비교해보며 독자에게 판단의 권리를 쥐어준다. (다른 역사가들의 관점을 함께 알아보는 것은 덤으로) 어쨌든 이런 작가의 철학적, 역사적 시각으로 인한 개입은, 역사를 객관의 산물로 바라보는 독자들에게는 조금 불편함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판단하건데, 그 개입은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았으며, 혹 그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작가는 우리에게, 자신의 견해와 (현재까지 공인된) 역사적 사실을 충분히 구분할 수 있게 해주었다. 지금껏 증명되고, 인정되온 역사적 사실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더불어 작가의 시각을 받아들일것인지 말것인지는 우리의 판단에 맡겨진다는 것이다.
   
후세의 많은 역사가들은, 예루살렘을 해방한 후 유럽으로 돌아간 장수들을 영토 욕심이 없고 신앙심으로만 뭉친 기사들이었다고 칭찬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결국 책임감이 많고 적음의 차이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신앙만으로는 신앙조차 지킬 수 없는 것이 인간세상의 현실이니까. (253)
 
물론, 한참 이야기를 따라갈 당시에 시오노 나나미가 기술한 사실과 더불어 작가가 추정하는 사실들(병사들의 숫자나, 각 리더들의 행동근거)에 대해 큰 의심없이 따라갔을지도 모른다. 작가가 근거로한 시대적, 종교적, 신분적 배경과, 인간 본성을 근거로한 판단에 큰 이의를 갖지도 않았다. 하지만 책을 덮고나서는, 보다 신중하고 열린 인식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신이 아닌 이상, 어떻게든 인간이 판단하는 사실에 대해 감히 무결점의 역사가 있겠는가. 어디에도 객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객관이란 마치 비문같은 말이다. 많은 이가 좇고있는 허상같은 결정. 시오노 나나미가 중립적인 상태에서 역사적 사실을 기술했다고 까지는 생각치않는다. 아니, 그 누구도 그럴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작가는 십자군에 대한 비판과 인정의 그 근거를 나름 균형있게 제시하려고 했다. 그녀가 펼쳐놓은 이야기 속의 인물묘사, 사건의 디테일을 완벽히 믿고 동의하든 말든, 적어도 작가가 그것을 독자가 판단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놓았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작가가 그 경계에 대해서 충분히 판단할 수 있는 지점들을 세워두었으니, 판단은 독자의 몫이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서술자의 객관성에 관한 문제만큼 중요한 것이, 독자의 객관성일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시대에 대한 시오노 나나미의 넓은 이해와 견해는 역사적 사실을, 이야기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한 역할을 했다. 많은 이가 지나간 이후, 처음의 발자국은, 점차 아래에서 흐뜨러지며, 흐려진다. 그녀는 (다른 역사에 대한 접근과 저술은 별개로) 십자군 이야기의 전개에 자신의 이름을 이제 막 올렸을 뿐이다. 시대에 대한, 인간에 대한 그녀의 '판단'을, 우리가 또 즐겁게 '판단'하면 될 일 아니겠는가. 더불어, 아래 문장에서 역사의 운명을 감지한다.
 
틀루즈 백작 레몽은 ‘성스러운 창’을 계속 보관한다. 그러나 6년뒤 그가 죽은 후 이 ‘성스러운 창’은 기묘하게도 네 개로 늘어난다. 이 네 개의 ‘성스러운 창’의 행방은 이런 성유물의 운명을 무척 흥미롭게 보여준다. (211)
 
처음의 '면죄부'에 대한 조소에 가까운 시각에서부터 비롯된 이 독서는, 그 끝을 알면서도 시종일관 몰입할 수 밖에 없었다.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동안에, 십자군의 온갖 모습들을 떠올리고 그리는 도중에 그런 조소는 거두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한 종교에 대한 내 시각이 달라졌음은 물론 아니다. 오히려 좀 더 명확히 바라보게 되었다. 하지마 그와 동시에 나는 거기서 몇걸음 물러났다. 십자군과 중세의 역사에 깊이 들어갔더니 결국 어쩔수 없는 인간을 발견하게 되었다. 천국으로의 희망, 권력, 명예, 부의 욕망, 인간적인 질투 등,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인간의 대부분의 성질을 발견하게 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체게바라로 시작해 쿠바의 전후 역사를 살펴본 이후로, 역사에 대한 관심이 뜸했다. 최근엔 조선시대의 인물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가, 이제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접한다. 나는 시오노 나나미의 이름만 줄기차게 접했을 뿐, 로마인 이야기 한번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독자다. 더불어 다른 역사(서)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없음으로 인해, 다른 십자군 저서와의 비교가 가능했을리도 만무하다. 굳이 표현하자면, 이제 막 '시오노 나나미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초짜 독자인 셈이다. 그런 어설픈 독자이지만, 아직 나의 판단기준은 부족하지만, 아마 앞으로의 십자군 이야기에도 주목할 것이다. 읽을것이고, 즐길것이고, 또 판단할 것이다. 그래서 역사를 넘어서 인간을 다시금 짚어볼 것이다. 그들의 궤적을 따라간 끝에서 결국 오늘날의 누군가와, 또 우리와 닮은 그들을 발견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까마득한 과거의 시간속에서, 현재의 사람들과 똑닮은 그들을 발견하며, 절망하고, 또 희망할 테니깐. 이미 많은 이들이 연구한 역사적 인물들을 통해, 오늘날의 인간, 불멸의 속성에 대해 좀 더 나은 혜안을 가질 수 있으리란 것에 누가 토를 달 수 있겠는가.
 
한살터울의 친척동생과 함께했던 그 몇 시간, 집에가서 처리해야할 일이 점점 늦어지고 있었기에, 나는 받아치는 것을 관두었다. 굳이 "예수천국 불신지옥"은 어떡할 셈인가? 하며 아직도 사회가 합의보지못한 사안에 대해서 논쟁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나는 준비되지 않았다. 나는 그런 폭력적 선교활동 및 정치, 권력, 부의 수단으로 종교를 이용하는 이들을 거부할 뿐이지, 기도하고, 봉사하는 그들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었고, 종교적 논쟁에 일침을 가할만큼 그 종교에 대해서 충분히 알지 못하니깐. 어설프게 그의 말에 인정한 나에게 그는 그 자리에서, '진실된 기도를 하겠노라'고 약속하라 했다. 나는 덜컥 겁이났다. 그리고 솔직히 얘기했다. 나는 지금 진심으로 약속할 수 없다. 거짓된 약속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그는 이해했고, 더이상 강요하지 않았다. 집으로 오는 길에 아마 나는 그런 생각을 햇을것이다. '언젠간 더이상 아무것도 강요하지 못하게 제대로 반박해주겠다고.' 하지만 이젠 아주 조금 달라졌음을 느낀다. 혹, 이후에 그와 함께 다시 그 얘기를 할 수 있다면 믿음의 강요 이상의 이야기를 하고싶다. '믿어라-안믿겠다' 같은 영양가 없는 논쟁이 아닌, 내가 그에게서 발견하고, 그가 나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길 바란다. 그때가 좀 천천히 왔으면 좋겠다. 나는 조금씩이라도 계속해서 공부를 해야할 테니깐. 다시 기회가 온다면, 종교 너머의 인간에 대해 이야기 하고싶은 바람이다. 
 
선인과 악인이 따로 있는게 아니다. 한 인간 안에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나 철학이나 윤리를 통해 교정하려 노력하는 것인데, 아직도 그 성과는 신통치 않다. 옛사람들은 이러한 현실을 두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말했다. (239)
 
(종교가 전부인 사람도 있겠지만) 어떤 신을, 어떤 종교를 믿느냐는 그 사람의 일부이지 전부가 아니다. 중세의 그들과 비교했을때, 우리는 늦게 태어난 인간들일 뿐이지, 새로 태어난 인간들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 나는 그 시대, 그 종교뿐만이 아니라, 지구위에서의 인간을 배우고, 이야기 하고 싶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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