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메라이
시마다 토라노스케 글 그림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배우고 싶은 악기중에서 피아노는 첫번째다. 그리고 그 다음이 기타와 드럼. 고등학교 때 반에서 좀 얌전했던 친구가 음악시간에 막간을 이용해서 잠깐 일본곡의 처음 반주부분을 쳤던 적이 있다. (아마 엑스재팬의 Endless rain 이던가.) 짧게 치고 조금 서툴렀지만, 반주 자체가 워낙 서정적인 부분이 있어서 그런지 그 아이를 보는 다른 친구들의 시선이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그 모습이 내게도 퍽 멋있게 보인게 사실이다. 그때가 아니라도 종종 피아니스트를 보면 피아노를 꼭 한번 배워보겠노라 다짐했지만 바쁘단 핑계, 피아노는 성인이 되서는 배우기 힘들다는 얘기때문에 여지껏 난 피아노를 칠 줄 모르는데다가 악보도 볼줄 모르는 신세.

 

아마 그 후에 피아노가 굉장히 아름다워보였던 때는 티비의 한 프로포즈 프로그램에서 한 남자가 피아노곡을 연주하면서 고백하는 장면을 봤을 때. (물론 드라마 등에서도 많이 나오지만) 그리고 전쟁의 한복판에서 한 소녀가 연주하는 피아노로 인해 군인들이 총을 내려놓는 Y피아노 광고야 말로 피아노라는 악기의 상징성을 확실히 각인시켜 주었다. 스토리보다 '데츠카 오사무 문화상' 신인상 수상작 이라는 타이틀이 먼저 이 만화책을 들게한게 사실이었는데, 보니깐 이 <트로이메라이> 또한 그런 피아노의 상징성을 중심으로 풀어나간 이야기였다.

 

사실 이 리뷰를 쓰는 것이 좀 부담스럽기도 하다. 아직 메세지나 작가의 견해에 대해서 명확한 판단이 내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터넷 리뷰를 찾아보아도 출판사에서 소개하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좀 더 깊게 파헤치는 것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혹은 내가 그 글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거나) 내가 읽은 바에 대해서, 비록 주관적인 견해라도 나름의 근거가 뚜렷하다면 자신이 있겠건만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그럼에도.. 생각해보면 다른 책들도 그저 내 자신의 근거로 써내려갈 뿐이긴 하니깐.. 그러니깐 어쨌든 써보자.

 

 

이 만화는 침략국가와 식민지 국가에서 파생되는 필연적인 국가적, 개인적인 상처와 그것들이 시간이라는 치유를 거쳐가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겠다.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트로이메라이>는 슈만의 피아노곡 중에 하나이며, '꿈꾸는 일', '공상'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요란하지않고 맑은, 암울하지 않고 밝은 분위기의 이 곡이야말로, 이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뚜렷하게 표현하는게 아닐까. 과거의 상처가 시간을 통과해서 치유되는 모습을 그리고자 했던게 맞다면 말이다.

 

그 발파르트는 특별한 소리를 내지 않던가?

 

두개의 큰 이야기가 피아노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하나는, 피아노 조율사인 토다에게 맡겨지는 '발파르트' 라는 오래된 피아노를 수리하는 이야기다. 그 피아노는 20세기 초 유럽열강들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을 식민지로 두고있거나 혹은 건드려보던 시절, 독일인이 고온 다습한 환경에서 견디는 피아노를 만들기 위해 카메룬의 오벵나무를 멋대로 베어가 만든 것인데, 그 피아노를 1965년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난 군부 쿠데타를 수하르토가 저지하면서 벌인 공산당 색출과정에서 엄마를 잃은 구 왕족의 후계자가 수리를 의뢰한 것이다. (이 인도네시아도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지배하에 있던 국가이다.) 그리고 그것을 1980년대 초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살아남은 아부 라는, 불상 도제와 2002년 6월 도쿄에서 피아노 조율사 일을 하고있던 토다가 함께 수리하게 되는 이야기가 이 <트로이메라이>의 큰 이야기 중에 하나다. 


다른 하나는, 독일인이 발파르트 피아노를 만들기 위해 오벵나무를 벨때 그것을 막지못한 카메룬의 주술사 만베만베가 그 오벵나무에 저주를 걸었는데, 거의 백년이 지난 후 그 나무로 만든 발파르트가 연주되면 재앙이 있을거라며 이름이 같은 그 손자가 그 저주를 풀기위해 일본으로 향하는 이야기다. 아무것도 모르고 오직 피아노를 '살리기'위해 애쓰는 이들과, 그 피아노가 연주되는 것을 막으려는 쪽의 이야기가 함께 진행되는 구조인 셈이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2002년, 그러니깐 작품의 현대에서의 주인공을 제외하고는 모두 과거에 외세의 침략을 받았던 국가의 사람들이었다는게 이 작품의 중요한 실마리이기도 하겠다. 

 

(스포일러 포함)

 

하지만 2002년을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만베만베에게 일본에서 카메룬과 독일의 경기가 끝나기 전에 다른 주술사를 찾아 저주를 풀라고 시킨 장본인은 그 피아노를 누가 연주할지 몰랐던 것일까? 결국 만베만베는 그 피아노가 고쳐지고 연주되는 것을 막지 못하지만 아무 재앙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실질적인 변화보단, 무척 상징적인 장면들이 펼쳐진다. )그 피아노를 친건 다름아닌, 1965년 수하르토의 공산당 색출과정에서 엄마를 잃은 딸이었이었으니깐. (검색결과, 실제로 2002년 월드컵 당시 카메룬과 독일의 경기는 양팀다 한명씩 퇴장을 받고, 그해 월드컵에서 최다 경고기록을 받는 등 경기 분위기가 극도로 험악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만화의 이야기상으로 보면 (어쨌거나) 피해자인 의뢰자가 연주함으로써 재앙이 일어나지 않는 셈. 다시 말하면, 피해당한 이들이 '용서'한다는 개념일까?


만약 이 만화가 전혀 다른 국가를 배경으로 했거나, 혹은 다른 나라의 작가가 그렸다면 앞서말한 것처럼, 침략당한 국가들이 시간을 거쳐 과거를 용서하거나 앙금이 녹는 이야기라 생각하며 조금은 해석이 가벼워질수도 있었겠지만, 일본인이, 일본이라는 국가를 배경으로 여러 침략 당한 국가들을 묶어 이야기를 펼친다는 점에선 꽤 복잡해진다. 2002년이 훨씬 지난후 그려진 만화기에 당연히 팩트를 갖고서 이야기를 구성했겠고, 그렇다면 의도가 먼저인지 설정 구축이 먼저인진 모르겠지만 근대의 대표적 침략국가인 일본에서 펼쳐지는 월드컵, 그것도 의미심장한 한일월드컵, 거기서 한때 일본의 지배를 받기도 했던 인도네시아인, 그리고 20세기 초 식민의 관계였던 카메룬과 독일, 덧붙여 이라크의 침략을 받은 이란인까지 한데 묶은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만 할까. 

 

역사도 흰개미에게 먹혀버렸답니다. (124)


이 해석이 헷갈리고, 난해한 이유는, 이 치유의 과정이 정말로 '과정'만 있지 서로의 어떤 노력이나 사과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작가가 담담하게 그려내는 역사 속에서 침략국의 횡포나, 잔혹함은 비춰지긴 하지만, 그런 '폭력'을 행한 이들의 어떤 노력과 반성은 쉬이 찾아낼 수 없다. 기껏 찾아본다면, 마약거래 혐의로 수배를 받고있는 이란인 아부를 일본인인 토다 같은 인물들이 저지하려고 해준 다는 것? 하지만 거기에 비한다면, 차라리 이란인 아부가 전쟁터에서 친구를 잃었던 과거와, 불단을 발견하고 얻는 깨달음, 토다를 중심으로 소개되는 피아노에 대한 역사와 그런 피아노가 갖는 음의 특성이나 음악적 이해가 훨씬 더 비중있게 다뤄진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내가 가장 궁금한 것은, 피해자들이 가진 상처가 치유되는 것이 그저 시간이란 다리를 건넌 것만으로, 해묵은 감정을 털어내는 것만으로, 가능하다는 말인가 하는 점이다. 알다시피 전범국가인 독일과 일본은 어떤 국제적 압력이나, 지리적 압박의 차이를 차치하고서라도 결과적으로 종전후 보인 행보가 너무나 뚜렷하게 다르다. 


여기서 일본은 카메룬과 독일이 경기를 할 수 있게 장소를 제공해주며(월드컵), 피아노를 수리할 수 있는 기술을 제공하는 셈인데, 이것의 의미도 혼란스러울 뿐더러, 심하게 본다면 화해의 제스처를 일본이 제공했다고 생각해야 하는가 싶기도 하다. 물론 독일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어찌 본다면 결국 용서와 화해에 필요한 모든 이해의 과정은 오로지 피해자가 깨우치는 것으로만 그려지는 듯 보이기도 하다. 

 

전쟁 전 피아노의 금속프레임은 그리 대단한 울림을 내진 않았지만 그만큼 목재악기로써의 음색이 더욱 선명했다. (...) 목재는 세월과 함께 건조되면서 내부에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이 피아노의 음색에 그대로 영향을 끼친다. (100)

 

음악, 즉 예술의 길로 통하는 용서가 어떤 감정을 초월할 수 있음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심하게 딴길로 새자면)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바탕으로 하여 독일처럼 사과하고 보상하지 못한 일본에 대해 이야기 하고싶었던 것일까?.. (아무래도 이건 자의적 해석이 너무 과한것 같으니 그냥 하나의 가설이라고 생각해둔다면)  


용서를 위해서 응당 있어야 할 진정한 사과와 보상은 예술의 영역과는 별게인 걸까? 피아노로 마음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음은 일정 이해하지만... 그것이 좀 더 납득이 가는 사건들속에서 섞일 순 없었던 걸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건 사실이다. 결국 내가 제대로 볼 줄 모르거나, 혹은 내 취향과는 좀 다르거나 둘중에 하나다. 이 문제에 대해서 나름 많은 시간을 생각했다. 좋다고 말할 때는 차라리 말바꾼 칭찬을 늘어놔도 어느정도는 전달이 될 수 있지만, 그 반대, 혹은 이것처럼 약간은 미적지근한 반응을 적어야 할때는 더 신경쓰인다. 어쨌거나 그래서 생각을 해본 끝에...

 

피아노를 간직하고 있다가 수리를 의뢰한 사람이 자카르타 출신의 사람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춰본다. 일본인이 아닌, 굳이 식민통치를 받았던 국가의 사람이 사건의 발단이자, 사건의 종결점이다. 아마 만베만베에게 선조가 걸어놓은 저주를 풀라고 보낸 오샤만베는 아마 변화한 시대의 흐름을 몰랐던게 아닐까 싶다. 비록 발파르트를 고치는 일은, 열강들의 힘을 빌린 셈이 되긴 했지만, 이란의 아부가 많은 역할을 했고, 사건의 종결도 자카르타의 의뢰인인 점, 그리고 카메룬과 독일의 축구경기에서 보여지듯 이제는 한때의 식민지국가도 예전과 같지가 않다. 그러니깐 오샤만베는 여전히 수동적이고 외소한, 약소국을 걱정했지만, 이제는 그 국가들이 전과 같지 않은 역할을 하고 위세를 떨치고 있다고나 할까.

 

데츠카 오사무 문학상 신인상 수상작가라는 타이틀을 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림체가 아톰 스타일을 약간 닮긴 한 것 같다. 어린이 교양곡 중 한곡인 <트로이메라이>를 선율로, 그 속에 네가지 시간, 네개의 공간을 하나로 묶어, (출판사의 책 소개처럼) 스크린톤 없이 오히려 먹과 선, 여백으로, 그리고 생략으로 풀어낸 이 만화는 분명 가볍게 페이지를 넘길 순 없다. 특히, 작가는 영화에서 오히려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눈썰미가 없어 명확히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3인칭 시점이 많기도 하고, 컷과 컷을 사운드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어서 진행하는 영화의 장치처럼 독백이나 작가의 해설을 활용하기도 한다.

 

시간이라는 마법이 만들어낸 플레열의 음색을... (102)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데 있어 작가는 분명 과거 침략의 상처를 가진 이들이 하나로 모여 피아노를 고쳐내기까지의 이야기를 풀어내기에도 부족했을 것이다. 역사적 큰 사건들을 간략하게나마 하나로 묶이는데에도 지면을 다 할애했으리라. 그럼에도, 좀 더 많은 분량을 통해서, 그들이 스스로를 치유할 수 밖에 없는, 외적인 이유들을 (특히 지배국가 들의 이야기들) 하나하나 보여줌으로써, 마지막에 보여지는 치유의 클라이막스를 좀 더 극대화 시킬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건 사실이다.

 

박힌 총알에서 기생한 흰개미가 갉아먹은 '평화의 상징'인 피아노에 얽힌 식민시대의 과거, 그리고 그 피아노가 보여주는, 시대를 막론하고 벌어진 참혹한 전쟁과 내전들. 시간이 지난 후 그 시대의 고장난 유품을, 썩은 부분을 도려내 최소한만 남겨두고, 저주받지 않은 새 목재를 같다 붙이는 과정은, 과거의 잘못과 상처를 도려내어 시간이라는 치유를 통해 새것을 이어 붙이자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는 걸까? 오샤만베가 최후의 수단으로 열어보라고 준 손주머니에는 핸드폰이 들어있는(어쩌면 위트있기도 한)장면을 상기한다면, 최첨단을 달리는 시대의 '소통'을 통한 '화해'를 강조하고 싶은 것일까?

 

아직 채 제대로 정리되지 못했지만,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는 없기에, 글을 마친다. 이 만화를 읽은 누군가와 의견을 나누고 싶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 불단 도제였던 아부가 토다를 향해 읇조린 시 한편으로 마무리 해야겠다. 비밀은 무엇이고, 여관은 어디이고, 남기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정녕 내가 생각했던 것들이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야기 그 자체와는 상관없는 것들을 너무 끈질기게 잡고 늘어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혼란스럽게 글을 마친다.

 

이 영원의 여로에서 사람은 단지 떠나갈 뿐 -

비밀을 말하러 돌아온 자 어디에 있는가?

길을 나서면 그대는 다시금 돌아오지 못하느니.

이 여관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도록 주의하라. 주의하라.

이 여관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도록 주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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