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여행 끝에서 자유를 얻다 - 마음으로 몸을 살린 어느 탐식가의 여정
데이나 메이시 지음, 이유미 옮김 / 북돋움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한 개그맨이 그런 얘기를 한적이 있다. 나름 유명한 일화인지라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을지 모르겠다. 어릴적, 어른들이 개고기를 해먹기 위해 뜨거운 물에 개를 넣었었는데, 그 개가 아직 죽지 않고 솥에서 뛰어나와 어린 그의 앞으로 와서 꼬리를 흔들더란 일화. 그 후로 그는 '개는 먹는 음식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중요한 얘긴 아니지만, 내가 음식에 대해서 생각했던 몇 안되는 이야기중에 하나다. 사실은 이 책의 모습이 그런 음식에 관한 일화들의 합이 아닐까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생각했던 책의 모습은, 다이어트라는 화두로 시작해서, 과도한 음식섭취, 특히 육류쪽에 치우친 식습관을 그 고기가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실제로 되짚어봄으로써, 그 비율을 줄이거나 하는 쪽인줄 알았지만, 실제 책의 내용은 좀 더 포괄적이지만, 또 개인적이었고, 그래서 근원적인 이야기 였다. 사실 그녀는 특별나게 육류를 좋아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육류만으로 비만이거나 뚱뚱한 편도 아닌 듯 싶다. 다만 많이 먹었다. 육류나 인스턴트 뿐만 아니라 올리브를 비롯한 채소등도 좋아했지만 문제는 식욕을 스스로 제어하지 못했고, 그로인해 생기는 여러가지 불편함이나 괴로움을 올바르게 잡고자 하는 것이 었다. 그녀의 다이어트는 비단 식습관의 조절이나 운동을 통해서가 아니라, 한쪽에선 음식 자체의 여정을 따라가 음식에 대해서 고찰하고, 한쪽에선 자신의 과거를 쭉 다시 돌아봄으로써 그녀 자신과 음식의 관계가 언제부터 어떻게 현재의 모습으로 구축되었는지를 알아보았다. 


농경사회가 공업사회로 바뀌고, 다시 첨단기술 및 서비스 산업으로 바뀌어 가면서, 농업의 풍경은 도시인들과는 너무 먼 거리가 느껴지게 된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음식은 현대에 이르러 먹어야 하는 강박과 먹지 말아야 할 강박이 동시에 우리를 급습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선 먹어야 하는 강박은 많은 요소들의 발전과 맞물린다. 재료의 대량생산의 가능과, 그것을 신속하게 운반할 수 있는 운송수단의 발달, 그리고 (물론 여전히 빈국은 존재하지만) 우리가 알고있는 주요 국가의 국민들의 수입증대, 그에 따른 보편적인 소비 가능성의 상승, 그리고 점점 자연에서 멀어지고 기계와 속도를 우선시하는 사회에서 인간이 받는 스트레스와 공허함을 채우려는 자극적인 음식의 향연 등 말이다. 하지만 또 역으로 먹지 말아야 할 강박 또한 그에 못지 않은데, 의학의 발달로 인해 식습관에 따라 건강과 생명에 미치는 영향을 많은 이들이 인지하고, (일부) 풍유로워진 식량배급으로 인해 정점을 찍은 속도위주 사회에 반기를 든, 슬로우한 생활을 추구하는 이들의 꾸준한 증대, 그리고 무엇보다 늘씬함 혹은 많이 양보한 표현을 빌리자면 균형잡힌 몸매를 위해서 먹는 것을 조절해야 하는 세상이다. 그러니깐 결국, 자본을 획득하려는 쪽의 유혹과 그것을 적절히 수용해야하는 양쪽의 강박이 맞부딪치는 세상인 것이다. 물론, 이것은 비단 음식만의 이야긴 아님이 분명하고.


그녀의 과거는 조금 어두했다. 가끔 폭력으로 위협하는 아버지 아래에서 자란 그녀는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견뎌왔다. 이 특별한 저자의 과거에서 시작된 음식에 대한 여정은, 가공식품의 폐해로 인해 열량만 높아진 현대의 음식에서 한발 더 들어가 자신이 먹는 것을 제어하지 못하는 이유를 자기 자신의 과거에서 찾아가는 과정과 어우러진다.


이야기는 유혹/공유/변화 이렇게 총 세가지의 주제로 묶여있다. 맨 처음 /유혹/은 그녀가 가장 좋아한다고 하는 음식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들여다본다. 소시지나 올리브, 초콜릿 등 삶에서 그녀를 가장 유혹하는 것들이 재료를 어떻게 가공하고, 어떤 기술들을 거쳐서 만들어지는지 말이다. 하지만 이것들이 크게 그녀에게 어떤 유혹을 제거시켜준 것 같아 보이진 않다. 하지만 적어도 음식이 그저 살기위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하나의 작은 부산물이 아니라, 그것을 먹는 사람과 연결되어 있어야 함을 인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그것이 자신과 진정으로 연결되었던 것이 아니라, 어떤 목적 혹은 그저 즉흥적인 욕구로 인해 '가짜'로 연결되어 있었음과 함께. 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그녀의 행보의 시작이, 그저 음식의 단편을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껏 그것을 대해왔던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치유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이 책에서 그녀가 보여주고자 함은 표면적으로 그녀는 음식의 재료가 자라는 곳이나, 가공되어 지는 과정을 실제로 경험하는 것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음식에 대한 개념을 다시 재정립하고, 그 음식을 대하는 태도와 음식과의 연결성을 올곧게 바로잡는 일을 통해 새롭게 음식과의 관계를 재정립 하는 일이 분명하다. 


두번째는 /공유/이다. 앞에서의 과정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완제품'의 가공과정을 돌아보는데 주력했다면 이제는 그것들의 이전단계, (가령 소시지라는 가공된 고기가 나오기 이전단계의 고기들을 추적하는 식으로) 농장이나 과수원들을 돌아보는 것이다. 거기에서 만나는 것들은 이전의 가공단계에서 만나는 것과는 또 다른 연결성을 그녀에게 확인시킨다. 여기서 특히 두드러지는 점은, 음식, 곧 식량과의 지속적이고 긍정적인 만남을 위해서는 (그 음식의 탄생과 성장에 몇십, 때로는 몇백 키로나 떨어져있어서 그 처음의 생산자를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 또한 연결되어있고 책임이 주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물론 그녀는 이미 이전부터, 마트같은 기업형 대형유통체인이 아닌 생산자와 직접 연결되는 공급시스템을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실제로 농장이나 과수원에 가서 생산자가 그 수확물을 대하는 태도, 혹은 그것을 운영하고 공급하는 것과 소비자를 대하는 태도를 통해, 소비자의 신분을 떠나 기본적인 인간으로서 자연이 주는 자원들을 대하는 태도를 다시 구축하는 것이다.


세번째는 /변화/이다. 지금까지 그녀가 보고 듣고 했던 것들을 체득한 몸에 변화를 주는 마지막 순서다. 그동안 꾸준히 해왔던 요가의 의미를 돌아보고, 4일간 단식을 하며,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머리로 생각했던 것들을 몸으로 응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미 앞의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보고 배웠음에도 실제로 몸으로 체득하는 것이 물론 쉽지 않았지만, 그녀는 의지를 갖고 하나씩 하나씩 음식의 정의를 바로 세우고, 자신과의 관계를 다시 세웠다. 그녀가 정말로 음식을 심장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되짚어 보자면, 이 책은 식재료가 우리 식탁으로, 혹은 입으로 오기까지의 과정을 알아봄을 통해 그간의 식습관을 '충격요법'으로 깨우치는 책이 아니다. 거창하게 의미를 부여하는지는 모르지만, 정리를 해보자면, 그동안 우리가 생각했던 소모적임 음식으로써의 의미를 깨고, 자연이 주는 '먹을 수 있는'것들의 의미를 재조명해서, 그것들과 우리의 그동안의 편협하고 의존적이었던 관계를 서로가 더 긍정적이고 독립된 위치로 끌어올리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 일련의 과정이 더욱 특별한 것은, 그녀 자신이 과거에서부터 마음의 상처나 아픔들을 음식에 위로받던 것들에서 벗어나고, 과거의 아버지를 용서하고, 과거의 자신을 보듬는 과정과 어우러지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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