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 이재익 장편소설
이재익 지음 / 네오픽션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이야기는, 실제로 있었던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소설이다. 타 지역에 살던 여학생을 속여서 불러와, 일년동안 구타 및 집단 성폭행, 학대 등.. 인간이 입에 담는것이 민망할 정도일때 머뭇거리는 일들을 자행해왔다. 무려 41명이나 되는 이들이 이 사건의 가해자였지만, 모두 적당한 처벌은 커녕, 길가다 싸움 붙은 것에 대한 것만도 못한 처벌을 받고 풀려났고, 오히려 피해자는 신원을 보호받지 못하서 온갖 수모를 당하고, 가까스로 전학간 곳에서까지 가해자 부모에게 시달리다가, 현재 실종상태다. 대략적으로 이렇게 간추린 것이 이 사건의 전말이다. 아 나는, 정말 이 시대와 이 세계가 절망스럽다...

 

실제로 사건이 발생한 2004년, 지금보다 더 머리가 비어있을 때다. 생각이 없었다기 보단, 모르는 것도 아는 것처럼 허세를 크게 떨었다. (물론 지금도 가끔 그러지만) 정치에 그다지 관심도 없었고(정치는 사실 도덕적으로 완벽한 현정권이 잘 가르쳐줬고) 남을 대하는 태도도 지금보다도 더 부족했다. 그때 내가 이 사건을 알고 있었던가!? 2004년 12월... (사실 지금도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복잡했을 시기다. 아무튼 그 당시 내가 이 사건을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혹은 별 충격을 주지 못했거나.

 

그러니깐, 이 <41>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정확히 알게되었다. '그런 일'에 대해서. 가해자들의 행동뿐만 아니라, 수사를 했던 경찰의 태도, 가해자 부모들의 태도 등... 정말로 끔찍하고 철저하게 그 아이를 짓밟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들이 보였다.

 

시나리오와 소설을 함께 쓰는 이의 글 이라서 그런지, 그의 글이 더욱 궁금했다. 우선, 한마디로 말하자면 재밌다. 순수문학을 읽을 때의 그런 언어로부터의 사색까지는 없다 치더라도, 적당히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읽는 내내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야기는 심플하다. 밀양 사건이 터지고 몇년 후, 연쇄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그들의 공통점은 밀양 사건 가해자들 중 핵심멤버 였다는 것이 밝혀진다. 용의주도하고 증거를 남기지 않는 범행으로 인해 합동수사본부, 형사인 정태와 제훈은 사건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계속 범죄의 꽁무니만 쫓아다니고, 시윤은 우연히 사랑을 시작함과 동시에 슬슬 일을 마무리 해간다. 이윽고 쫓는자는 포기하고 쫓기는 자는 일을 끝마쳤을 즈음,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그 순간에, 그들은 정말로 마지막을 장식한다.

 

이 책은, 실제로 아무 일 없다는 듯 잘 살고있는,(그러니깐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혹시나 당신이 지지리도 운이 없어서 그 귀한 시간에 내 글을 읽는 이 시간에도 말이다! 멀리 있다는 보장도 없다.) 41명에게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이제는 그들을 다시 처벌할 수 없기에 나올 수 밖에 없는, 상상속 처벌같은 느낌이다. 작가는 어떠한 마음으로 썼을지 몰라도, 독자는 충분히 그렇게 느낄 것이다.

 

그렇다고, 불타오르는 복수심 만이 이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다. 형사들이 갖고 있는 가정에 대한 문제 - 불규칙하고 위험한 생활로 인한 불만의 폭발이나, 범행을 저지르는 시윤이 겨우 찾아낸 사랑앞에서 자신의 거취를 고민한다던가 하는 경우를 통해, 비단 피해자나 가해자의 관계자들이 아니더라도, 아니 아니기 때문에, 결국 자신의 일과의 우선순위에서 머뭇거리는 모습 처럼, 우리네가 살면서 어떤 흉악범죄나 사건, 혹은 정치적 문제와 맞닥뜨렸을때, 우리를 직접적으로 둘러싼 문제와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 과정은 당연히 우리의 망각과도 직결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가해자를 법적으로가 아니더라도 사회적으로도 끝끝내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고, 적절한 심판을 받지 못한채로, 그러니깐 아무런 죄에 대한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아니하고, 사회에 내놓게 된다.

 

'모든 사건의 수사에 있어서 시간은 가장 큰 적이다. 증거는 흐릿해지고 용의자의 혐의는 희석되고 수사진의 의욕도 떨어진다. 결국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면서 미스터리의 문이 닫히고 만다.' (158)

 

이렇다할 증거가 나오지 않아서 전전긍긍하며 범죄가 더이상 늘어나질 않자 수사본부가 축소될 위기에 처한 모습을 그린 이 대목은, 우리의 관심과 망각의 과정을 잘 드러내준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모든 행동을 우리는 인정하되, 극복하고자 애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우리 옆에 범죄에 대한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그래서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단 한발짝의 생각도 나아가지 않은 사람이 우리 옆에서 우리의 소중한 누군가를 위협할지도 모른다.

 

'인간을 예의 바르게 만드는 힘은 관용이 아니라 공포야. 죄의식 역시 충분한 벌을 받아야만 생기는 일종의 공포야. 함부로 행동하다간 혼난다는 공포. 너희들은 그 공포가 결여된 놈들이지.' (240)

 

그리고 또 한가지는, 법원, 병원 같이 우리가 우리와 같은 사람을 앉혀놓고도, 신처럼 모셔놓은 어떤 체제에 대한 반성이다. 물론 우리가 그들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거나 바라야 하는 상황이라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지만, 그것이 그들에게 무소불위 와 같은 권력을 주고 있는 것은 이미 위험천만한 선을 넘었다. 그래서 그런 곳은 일반인이라면 대부분 약자가 되는 곳이다. 대부분 법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알지못하는 것은 당연히 두렵고, 또 그런 것들이 겹쳐셔 우리는 법을 잘 아는 이들에게 항상 약자의 위치가 되어버린다. 이번에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배우 안성기가 맡은 역할이 왜 그렇게 통쾌하게 받아들여졌는지를 생각해본다면, 법은 이미 어떤 의무나 책임보다는, 아는 자들, 소유한 자들이 갖는 하나의 '권위'와 '권력'으로 파생되어있다. 권리를 주는 것과 권위를 주는 것은 다르다. 사실상, 자신있게 '법대로 해라'를 외칠 수 있는 사람은, 죄를 안지은 사람이 아니라, 막 살거나 혹은 법을 아주 잘 알거나, 돈이 많아서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할 수 있는 사람일 뿐아닐까? 우리는 착각한다. 우리가 법에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고 있다고. 물론 보호받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지금의 생활은 불가능할 테니깐. 하지만 개인적인 의견으론, 그것은 사회가 유지되기 위한 당연 조건이지, 우리를 위한 조건은 아니다. 본래 유지되기 위해 그런 위치를 만들어 놓았다고 보는 셈이다.

 

상위 몇 퍼센트를 위한 정당을, 그런 재산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골라서 찍는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자신은 그렇게 살지 못하면서도, 그렇게 잘 살겠지, 혹은 그렇게 잘 살게 해주겠지, 하며 미래를 기약하며 투표하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인 것이다. 마지막 한가지는, 법은 언제나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시대가 변할수록 사람이 변하고 사건의 종류가 달라지는데, 법은 언제까지 고정되어야만 하는가?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옛날에 만들어진 법은 그 사람들이 신이기에 완벽한 법을 만들었는가? 아니다. 법또한 우리와 같은 인간이 만들었던, 그 시대의 룰 일 뿐이다. '법이 이러니깐 안돼' 라는 것은 때론, 어릴 적 옷을 입는 것과 다름 없는 것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의 범죄들중에서 아직 법이 없어서 제대로 된 단속이나 처벌을 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인간은, 현재에서 머무른다면 안정적이긴 하나, 그것이 최고의 생활이라고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 마치 '악법도 법이다'라고 우길 것이라면 나는 묻고싶다. 그저 변화를 두려워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이 정말로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그렇다면 법은 완벽하고, 판사는 완벽한지. 만약 아니라면 그 완벽하지 않은 것들은 대체 언제 바로잡아야 하는지. 우리는 항상 법을 감시하고, 개선하는 태도를 취해야 하지 않을까

 

꼬마비, 노마비 작가의 <살인자ㅇ난감>을 읽었을 때만 해도, 여러가지 끔찍한 일들을 저지른 이들을 보면서도, 불확실하긴 하지만 그래도 '법의 판단'에 맡기고, 우리가 그 법이 올바르게 집행 될 수 있도록 계속해서 감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근본적인 생각에 변화는 없다. 하지만 실화가 모티브여서 그랬을까? 아니면 이 범죄가 그토록 끔찍하고 울분터지기에 그런 것일까? 잔인하다는 생각이 조금 들기도 했지만, 결국 당해도 싸다 란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니깐, 여기서 또 한가지 웃기는 점이 있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이유. 그것은 바로, 법이 똑바로 집행되지 못했을때, 우리는 뒤틀린 심판을 옹호하게 되는 것 말이다. 그러니까, 이런 우리의 뒤툴린 심성은 곧 삐뚤어진 법이 만들고 있기도 한 셈이다. 새삼 결론은 같은 듯 하다. 우리가 우리와 같은 인간을 데려다놓고 신처럼 떠받드는 그곳의 권위를 밀어내고, 그것이 우리와 같은 높이에서 우리를 지키는 울타리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그것을 감시하고, 개선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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