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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연애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8
마키 사쓰지 지음, 김선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가늠할 수 없이 지나가버린 과거, 언젠가의 시간속 나를 내려다본다. 흐릿한 공간들. 내가 탐독하고 있는 한권의 책, 한페이지에는 사건현장의 그림이, 그 옆 페이지에서는 사건개요를 나타냈었었나? 희미한 기억이다. 아무래도, 한페이지안에 짧은 설명과 한장의 그림이 있고, 바로 그 뒷면에 추리에 대한 해설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 아무래도 모르겠다. 어쩌면 기억들은 이다지도 '완전'하지 못할까. 다만, 기억할 수 있는 건 그때의 놀라움과 경이로움 이었을 것이다. 보여주지 않았지만 결국 보여지는 것들, 말하지 않았지만 결국 말속에 남아있던 것들. 도무지 알 길이 없을 것 같던 사실들을 여러가지 근거로 포착한 것들을 보며, (아마 그리 수준이 높진 않았으리라 생각하지만) 내가 느꼈던 그 마음속의 탄성은 여느 유년의 기억과 같이 아련하게 흩어져 있다. 미스터리소설을 자주 읽지 않는 내게 이 <완전연애>는 전혀 기억하고 있지 않던 그 향수를 불쑥 불러왔다. 본격적으로 책을 좀 읽기 시작하면서 처음 읽은 미스터리소설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완전연애'
상대에게 그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 '완전연애' 라는 책의 표현을 생각해보면, '짝사랑'과 비슷하면서도 약간은 다른면도 있는 것 같다. '짝사랑'은 상대가 알고있으면서도 외면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포괄하지만, 이 책에서 정의하는, '완전연애'는 그렇지 않다. 본인 외에는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는 것, 그것이 바로 '완전연애'다.
이야기
2차 대전이 한창일때 연합군의 폭격으로 가족을 잃은 기와무는, 후쿠시마의 작은 온천마을에서 여관을 운영하는 큰아버지 댁에서 지내게 된다. 그 여관 별채에는 화단의 거장 고보토케가 묵고 있었고, 뒤이어 그곳으로 오게되는 그의 딸 도모네를 본 기와무는 마음을 빼앗긴다. 곧 일본이 항복하고, 미군이 진주하게 됨과 동시에 많은 것들이 바뀌어 가는 때에, 기와무가 있는 여관에 드나들며 도모네에게 치근덕대던 미군장교가 시체로 발견된다.
사회 - 개인
(침략국이든 아니든 국가의 권력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한 개인이 맞닥뜨려야 했던 전쟁의 잔혹하고 느닷없는 죽음에서 비껴난 기와무는 가타나카케의 여관에 도착함으로써 그 위협에서 실제적으로 멀리 떨어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큰아버지 집에서 만나게 된 실상은, 실질적인 유형의 무기가 횡횡하는 국가적 차원의 전쟁보다 더 직접적으로 피부에 스며드는, 내적 전쟁의 발발에 다름 없었다. 기와무에게 가타나카케 여관에서, 자신보다 여러면에서 (특히 실제적인 '힘' 에서) 월등한 어른들과 지내는 나날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지켜야만 하는 '전쟁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결국, (전후 세대를 제외한) 대다수의 삶을 파고드는 것은 거대한 세계사가 아니라, 일상적인 개인사 일 테니깐.
더 나아가, 이것은 한 개인, 한 시대의 이야기만은 아닐수도 있다. 2차 대전에서부터, 불과 몇년 전 (2000년대) 에 이르기까지 각 인물들의 개인사와 거대한 시대사는 이 이야기가 한 인간에게만 국한된 것을 넘어서, 다양한 인간 군상들에게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도 있음을 시사하며, 단순히 한 사건의 시작과 끝을 이야기함으로써 특정 사건의 해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한 사회와 개인간의 관계를 통해 보다 많은 것들을 이야기 하려는 듯 보인다. 명확히 분절될 수 없는 시대적 특성이 미묘하게 개인의 삶에 끼치는 영향 혹은 공통점 또한 분명 존재하는 듯 보인다. '누군가를 지킬 수 있는 힘' 이야말로 전쟁에서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 이니깐.
트릭 이상의 것들
첫번째 사건을 제외한 이후의 사건들은 모두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채 이야기가 진행된다. 또한 모두 주인공과 연결된 틀 안에서 일어나고, 작가(마키 사쓰지)는 마치 예고편처럼,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충분히' 언급하며(책 본문에서 언급된 '거짓말하지 않되, 다 말하지 않는' 미스터리 소설의 룰처럼) 진행한다. 그로인해 이 <완전연애>는 거의 서스펜스의 형식을 지향하면서도, 애초 캐릭터가 갖는 한계 (각 인물들의 직업과 관계)를 과잉 초과하지 않으며, 그로인해 긴장감을 깊게 고조시키는데 온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지 않는다. 즉 (참으로 인간적이게도) 주변의 산재한 다른 일들로 인해서 인물들이 사건의 해결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고 있지 않다.
이것은 구조적으로 본다면, 직/간접적으로 기와무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의 틈에서 여러 서브플롯들이 메인플롯의 가장자리를 기웃거리며 독자가 '딴청'을 피울 수 있게 해주는 셈이다. (물론 그 사이에도 메인메뉴는 일정한 속도로 독자에게 달려오고 있다.)
이것을 서사/문학적으로 본다면, 끝을 향하기 전까지 남겨진 여러가지 의뭉한 점들은, 기와무를 중심으로 한 인물들의 (심리보다 더 깊숙한 곳에 있는)내면에 집중하게 해준다. 이야기를 돋보이게 하고 이끌어 나가는 것은, 각 인물들의 내면과 사소한 행동, 곧 기와무를 중심으로 한 각각의 기구한 삶인 셈이다. 한 소녀를 향한 소년의 작은 순정에서 부터 시작한 기구한 삶 말이다.
미스터리 소설의 본질을 잃지않으면서도 연애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는 이 <완전연애>는 읽는 이에 따라서 '미스터리'가 장치가 될 것인지 '연애'가 장치가 될 것인지 나뉠 뿐이다. 대체 작가가 지향하고 했던 것은 무엇일까. 작가는 왜 한 인간의 긴 삶의 여정을 우리에게 펼쳐 놓았을까. 적어도, 이 책을 보며 지녀야 할 태도는 '자 어디 내가 쩔쩔맬만큼 굉장한 트릭들을 펼쳐놔봐!' 하며 혼자서 팔짱끼고 있는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분명, 이 <완전연애>는 사건을 해결하고 그 구조를 파헤치기 위해 폭주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풀어야 할 것은, 몇 개의 사건을 구성하는 복잡한 트릭이 아니라, 그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한 인간이 (자신을 비롯한 타인에게 남겨놓은) 족적(足跡) 인 것이다.
영원불멸한 미스터리
<완전연애>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실마리는, 인물들의 심리와 의도에 있다. 이야기를 관통하는 것은 정교한 기계적 트릭이 아니라, 개인을 휘청이게 하는 변화무쌍한 '심리적 트릭'이다. 곧게 뻗어나가는 한 인간의 순정이다. 결국 내가 책장을 덮고 확인한 것은, 단순한 사실이다. 진정한 미스터리는 살인에 있지 않고 '사랑'에 있다는 것. 곧 '사랑만한 미스터리는 없다.' 는 것. 모든것은 순정에서 시작되고, 순정에서 끝난다. 그리고 나아가, 그 '드러난 형체'가 있기까지의 과정으로 말미암아, (오로지) 유추해볼 수 있는, '감춰진 형체'의 그것이야 말로, 이 <완전연애>가 애잔해지는 이유이며 다른 것들과 차별되는 '트릭'인 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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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분을 담뿍 머금은 듯 색이 빠져나가고 번져버린 추억들을 되짚어 본다. 내게 있었던 '완전연애'를 떠올려 본다. 내가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던 그 어린 시간들. 어쩌면 거기엔 (그러니까, 세상에는 우리가 결코 믿을 수 없는 일들도 왕왕 일어나니깐) 누군가가 나를 향했던 '완전연애' 도 있을지도. 짓궂은 친구들에 의해서 밝혀진 그런 것들이 아닌, 완전하기 때문에 너무나 아팠을, 먼지쌓이고 바랜 추억속에서의 나와 누군가를 음미해본다. 이제 서두에서 궁금해 했던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는 다시 느낄 수 없을것만 같은, 결코 그때의 감정일 수 없을 그 '완전연애'의 추억, 희미해진 그 추억을 상기시키는 이 이야기가 그때의 나를 눈앞에 내놓았기 때문이리라. 당신의 '완전연애'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