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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유토피아 ㅣ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2
박해천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아파트가 궁금했을 뿐이었다. 그저 부의 축적수단으로만 인식되어왔고, 언제부턴가 내가 사는 공간이자 많은 이들이 지금껏 살아왔던 공간이었고, 앞으로 더 많은 이들이 살아가게 될 아파트란 공간에 대해, 그간 품고있던 자그마한 호기심을 풀어줄 책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발견들이 쏟아졌다. 사려는 물건보다 더 값진 덤을 왕창 얻어온 기분이다. 물론 그간 인문학을 자주 접하지 않아서 한쪽으로 쏠림현상된 뇌에 쉽지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다행이 맨 콘크리트에 헤딩하기는 아니더라. 콘크리트에게 영혼을 불어넣고 그의 이야기를 듣는동안, 그간 작은 틈 하나 없이 견고한 것 같았던 아파트가(실은 내가 아는 아파트들은 별로 그렇지는 않지만)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오래된 나무는 가끔은 말을 건네줄 것 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허나 아무리 귀 기울여도 아무말도 해주지 않는다. 그때 문득 귀를 닫고 눈을 감고 조용히 바람의 소리를 피부 끝으로 느낀다면, 어쩌면 해와 달과 별과 바람에 대해 조금 더 깊은 혜안을 가질 수 있지않을까? 난 그래본 적이 없다. 나무의 나이를 보는 법도 제대로 모르면서 이런 얘기를 하는것은 어불성설일지도 모르겠다. 이 맥락에서도 엉뚱하게, 콘크리트에게도 귀를 기울이고 모든 감각을 동원한다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당연히 이 책을 읽고서 문득 드는 생각이었다. 실제로, 콘크리트로 구성된 아파트란 존재에 생명을 심어넣어 그(아파트)가 하는 이야기를 전해주는 역할은 작가가 대신 해주었으니, 독자는 그저 읽어내려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작가는 '시선'으로 시작해서, '아파트'에게, '강남 1세대'에게, '꽃무늬'에게 숨을 불어 넣는다. 작가가 숨을 불어넣은 그순간, 그것들은 각각 고유한 정체성을 갖고, 활동하고,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결국 따지고보면 어쩔 수 없이) 작가가 쓴 글임에도, 나는 그것들을 개별적 존재로서 인식하며, 귀 기울였다. 쉽지 않았지만 좋은 만남이었다.
이 책은 픽션과 팩트 두가지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여느때의 독서처럼, 처음부터 읽는다면 앞서 언급한, 무생물에 숨을 불어넣은 픽션 부분을 먼저 읽게 된다. 그리고 책의 서문에서 앞서 말한 픽션에 관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여태껏 묵언의 자리에 놓여 있던 행위자들에게 비판의 법정에 선 용의자가 아니라 자기 옹호의 모노드라마를 연기하는 배우의 역할을 맡김으로써, 아파트가 지닌 매혹적인 힘의 핵심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들이 1인칭 혹은 2인칭의 주어로 아파트와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빚어진 자신의 삶과 욕망에 대해 직접 말해준다면 그 발언의 내용들이 근접조우를 위한 우회로로 기능할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결국 나는 각종 참고 문헌과 문학 작품을 동원해 '가짜 자서전' 혹은 '허구의 회고담'이라는 형식으로 글을 쓰기로 결정했다." (8)
아파트는, 작가를 편집자, 혹은 대변인으로 내세운다. 까놓고보니 아파트는 실로 할 말이 참 많은 개체였다. 우리는 지금껏 그것을 부의 증축과 투기의 대상으로만 바라왔으니깐 아파트도 할말은 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파트는 그것들을 포함해서 그 이상으로 털어놓을 담론거리들이 많았다. 팩션이자, 둘째 파트에 관해서는 아래와 같이 소개했다.
2부의 글은 역사적인 중요성을 지닌 아파트, 즉 마포아파트, 한강맨션, 강남의 아파트 단지 등을 서술의 대상으로 삼아, 신문, 잡지, 문헌 등 각종 자료들을 수집하고 분류하고 정리하는 방식으로 쓰였다." (7)
자랑으로 늘어놓을 얘기는 아니지만, 내게 있어 부족한 독서량중에서도 인문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꽤나 빈곤했다. 그래서 이 책이 손에 쥐어졌을 때 그 어느때보다도 두려움이 앞섰다. 그럼에도, 그 익숙치 않은 두려움은, 필연적인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초반엔 더디었지만 조금 익숙해지자, '못읽을 것도 없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얘기는, 내가 완벽한 이해를 했다는 것이 아닌, 내 나름대로의 이해를 하며 읽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그러니깐 아예 '내가 지금 한국어를 읽는 것일까' 란 의구심이 들정도는 아니었다는 것.
초입부는 '시선'으로 시작한다. 아파트라면 차라리 나을텐데, '시선'이라니.. 그래서 조금 더 힘들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항공촬영으로 바라본 (지금은 볼 수 없는) 방파제를 연상케하는 기묘한 모습의 마포아파트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시선으로 시작해서 꽃무늬로 마무리 지어지는 모습은 흡사, 사람을 살펴보듯 찬찬히 먼 외부에서부터 깊은 내부로 들어가는 모양새처럼 느껴진다. '시선'부분을 읽으며, 어렴풋이 알게됐다. '한국의 아파트'를 제대로 알기 위해선, 근현대사를 어렴풋하게나마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아니 정확히는.. 근현대사를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을. 한국전쟁의 아픔과 고난이 아직은 모든이의 가슴에 크게 남아있었을 시절, 살아남은 이들은 좀더 잘 살기 위해서 고군분투 하고 그 중심에 당연히 군인이 존재하던 시절, 아파트는, 군부세력과 필연적으로 연관될 수 밖에 없던 것이다. (공병대대장이 마포아파트의 진두지휘를 했을 정도니 말이다.)
1 마포아파트 철거 모습 2 Y자 형태의 마포아파트 모습 3 마포아파트의 야경(1970)
(출처 : 네이버캐스트 /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512)
위에 말했듯, 아파트란 존재가 시대적으로 군부독제시대에서부터 담겨있으니, 대체 왜, 어떻게 아파트가 여기까지 와야만 했는지 이야기하려면 당연히 근현대사를 이야기 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실로 상상 이상 이었다. 게다가 아파트에 고백과, 강남 1세대의 고백을 듣고 있노라면, 아파트란 그 자체가 하나의 역사이기때문에, 우리가 으레 아는 역사와 떼놓을 수 없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그렇게 아파트란 개체, 아파트란 공간은 역사속으로 들어온다. 아파트는 공간이 아니라 곧 그 격변의 시대에 말없이 우뚝 서있던 하나의 실체였고, 사건이었다. '한국'에서 아파트를 어떻게, 누가 만들기 시작했으며, 어떻게 변화시켰고,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또 그래서 그 아파트에 어떻게 영향받고 혹은 지배되어 왔는지 차례차례 풀어지기 시작했다. 말미엔 꽃무늬까지 대동하며 아파트와 동시다발적인 생활상의 변화와 사고의 변화, 시대의 변화까지 관통하게 된다. 한국 근현대사를 통해서 아파트를 바라보는 과정은 곧, 아파트를 통해서 한국 근현대사를 살펴보게 됨과 다르지 않았다.
조금 덧붙이자면 픽션부분은, 시선의 모험 -> 아파트의 자서전 -> 어느 강남 1세대의 회고담 -> 꽃무늬 이야기 로 구성된다. 얼핏 짐작할 수 있듯이, 숲에서부터 나무로, 잎으로 향하는 여정이다. (단, 그 과정에서 다루는 이야기의 연대기의 순서가 무조건 앞으로 나아가진 않는다.)
[시선의 모험]에서는, 국가기록원에 있는, 마포아파트의 버드뷰 사진으로 시작한다. 한국의 아파트로 시작하는 것이 아닌, 그런 건축물의 근원에 대해, '시선'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주체를 통해 접근한다. 한국이 아닌 해외에서부터 시작된, '공간을 사이에 둔게 아닌 벽을 사이에 둔' 건물에 관한 이야기와 시선들은, 한국 최초의 아파트가 갖는 온갖 이야기와 시선으로 넘어온다.
[아파트의 자서전]에서는 이제 바깥에서 머물던 시선이 아파트 내부로 들어오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주체는 전보다 조금 더 구체적이다. 아파트 스스로가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내부와 거기에 들어앉아 사는 인간의 관계, 그리고 그 무생물과 생물의 밀고당기는 과정을 말한다. 그리고 아파트가 자신을 변론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이 책을 읽게된, 혹은 읽어야만 하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근거와 관련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그들은 내가 지닌 공간의 논리가 거주자들의 신체와 정신이 맺고 있는 관계를 온전히 파악하지 못한다. (중략) 그러니까 그들은 나를 둘러싼 상품화의 논리를 제도적으로 교정한다면, '나쁜' 아파트의 자리를 '착한' 아파트가 대신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여기에 그들이 패배를 반복하는 이유가 있다. 그들은 근본적인 잘못이 나와 이해관계를 맺고 있는 인간들의 탐욕에게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정말 그럴까? 오히려 나는 그들의 그런 오인 덕분에, 놀라울 정도로 참신한 권력의 원천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67)
물론 이런 아파트의 주장은, 아파트를 바라보는 모든 독자를 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파트를 향한 보편적인 시선에 관한 항변이기도 하니, 이 책이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함과 동시에 앞으로 풀어나갈 이야기들을 암시하는데는 아주 적절한 언급이었다고 생각된다.
[어느 강남 1세대의 회고담]은 그 제목 그대로, 명민한 강남의 아파트 부자가 해줄듯한 이야기다. 사실 부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은 접하기 쉽지만, 이런, 당당하고 논리적인 부에 대한 변론은 찾기 힘든것이 사실이다. 그런면에서 보면, 이것이 우리가 너무 당연히 간과해버리는 '부를 가진 자들'의 입장인지, 혹은 저자의 시각인지 완벽히 파악할 수 없을지라도, 질투와 시기, 열등감이 앞선 논리로는 파악하기 힘든 부분들을 잘 풀어내고 있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발견으로 여길 수 있었다.
[꽃무늬 이야기]는 그 주체의 선정이 가장 흥미로웠다. 밥통의 외관을 장식한 꽃무늬 이야기는 그 시대 디자인의 필연성, 그리고 발전성을 이야기하는것을 시작으로 아파트를 비롯한 사회적 기호와 생활 전반, 문화의 흐름에 관한 것들을 탐구한다.
아파트란 개체는 놀랍도록, 그리고 상상 이상으로 한국사의 중심에서 시대와 사람, 그것을 둘러싼 모든것들을 움직이고 있었다.
이들 픽션또한 많은 문학작품과 사료들이 그 근거이고, 또 인용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문학작품으로 이야기한다면, 분명 그것들은 이야기 속의 공간을 언급한 것일진데, 여기서는 그게 역으로 공간속의 이야기로 탈바꿈한다. 그만큼, 정착해서 산다는 것은 곧 공간을 다루는 일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었을지도 모른다.
역사는 종종 사건의 인과관계로만 설명된다. 하지만 역사에 대한 흥미는 결국 그 역사적 사건을 일으킨 사람으로 향한다. 결국 한 사건을 파헤치더라 하더라도 그것은 곧 그 일련의 사건들과 관계맺은 사람으로 향하니깐 말이다. 그러니 근현대사를 둘러봤단 이야기또한 당연히 '사람 포함' 이다. 사회의 변화와 더불어 나란히 흥미가 가고 또 언급되는 부분은, 아파트에 살고있거나 혹은 아파트에 살지 못하더라도 그 주거변화를 더불어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개인의 이야기들이다. 아파트가 생기고, 변화하는 과정만큼 사람또한 아파트를 힐난하다, 곁눈질하다, 들어가 살게되고, 적응하게되는 과정. 지금이야 별일도 아닐지 모르지만, 예전만해도 하나의 '도전'으로 받아들여졌던 아파트란 공간에 적응하는 인물들의 적응과 변화의 모습은, 특별난 역사적 사건에 뒤지지않게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그때 그시절'을 아파트를 통해 들여다본 느낌이랄까.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보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이렇게까지 연관성이 있을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군부독재 시절과의 인연, 정치와 체제, (의심할 여지 없이 경제와 관련된) 아파트의 존재였고, 나아가 사는 풍경을 바꾸는 것과 동시에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각광받기 시작하는, 즉 '어떻게 잘 적응해서 살아볼까' 하는 생각이 '어떻게 잘 사서 잘 팔아볼까'로 바뀌는 과정이었다.
처음에 인식했던, 부의 수단으로만 여겨지는 아파트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음은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왠지, 부의 수단으로 변모해온 아파트의 역할이 안타깝다. 픽션파트에서 '강남 1세대' 부분을 보면, 정말로 그 주체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아파트가 시작한 자기변호에서 이어진 강남 1시대의 고백은, 여태껏 그런 위치에 설 수 없었던 내가 그들을 좀더 들여다 볼 수 있는 동시에 그만큼, 그들과 나 모두가 나름의 이유로 안쓰러워졌다. 그리고 픽션 부분을 통틀어 전반적으로, 1인칭 시점을 따라가다 놓친건지, 혹은 드러내지 않은건지.. 나의 능력으로는 완벽히 읽어낼 수 없었던 작가의 시선은, 제발 '강남 1세대'의 고백은 아니길 바란다..(그냥 개인적인 바람이다) 어쨌든 다행이, 그런 일련의 감정들도 '꽃무늬'로 마무리되는 픽션을 통해 그 시절 부엌에서 나름의 제역할을 했을 전기밥솥과 보온통의 무늬를 통해 '정말' 아파트를 둘러싼 여러 가전제품과 가구, 소품의 변천사와 그와 어울어진 사람의 적응과 변화를 바라보며 우울감을 약간은 떨칠 수 있었다.
픽션부분이 끝나고 등장하는 팩트부분은 앞의 부분에서 다루지 못한 사실에 대해 좀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좀 더 객관에 가까운 시선으로 이야기 한다. 잘 정리된 것들을 굳이 여기서 더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두번째 파트인 팩트부분의 초입부를 읽으면서는, 왜 팩트가 앞부분으로 나오질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었다. 나로서는, 당연히 팩트부분이 더 읽기 쉽기 때문이다. 보충하자면, 팩트를 간단히 읽고서 픽션을 읽는다면, 그 픽션을 이해하기가 좀 더 쉽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인 것이다. 흥미로 보자면 픽션보다는 조금 더 지난한 부분이 있지만 그정도면 충분히 감내할 수 있겠다 생각했다. 팩트를 먼저 읽었다면 픽션에서 주체가 되는 것들의 이야기를 좀 더 이해하기 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그래서 혹, 인문학에 익숙치 않은, 아니면 아파트의 역사와 그것과 관련된 한국사에 그간 완전 관심없던, 몰랐던 독자라면 팩트부터 읽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혹 그러다 지루함이 느껴진다면, 어느선에서 그만두고 픽션을 읽으면 될 일이다. 물론 당연히 작가와 편집자의 오랜시간동안의 많은 수고를 거쳐나온 그 순서는 치밀한 계산이 있었을 것임이 두말할 것 없겠지만.. 둘째파트부터 읽는다고 해서, 결론부터 읽어내려가는 방식은 아니니, 슬쩍 통독을 조금 해보고 자신에게 맞겠다 싶은 부분부터 읽어보는 것도 나름의 방법이겠다.
얼마나 어려운 인문학책이, 얼마나 많은지는 잘 모른다. 다만 이 책으로만 보자면, 이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그리 어려운 책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하지만, 내 개인적인 '이해의 수준'에서 하는 얘기다.) 실은 지금 생각해보면 아파트란것이 한국을 구성하는 여러 모습과 얽혀있고, 복잡한 그 모습 그 자체라서, 기억나지 않는 부분도 있을뿐더러, 이야기의 중심을 제대로 읽지 못했던 부분도 분명 많을 것이다. 그래도 아예 콘크리트에 머리찧는 느낌까지는 아니니, 인문학에 두려움이 있다해도 한번은 읽어볼만 하겠다. 하기사 이것은 보는 관점에 따라서 인문학서적이 아닌 역사, 사회학 서적일 가능성이 충분히 농후하니깐 말이다.
한권의 책을 통해, 내가 지금 앉아있는 높이만큼이나 켜켜이 쌓인 온갖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이루어진 '아파트'란 공간, 그리고 그것과 함께 존재했던 '시대'와 '사람'을 보았다. 지금 내가 앉아있는 이 콘크리트 구조물이 얼마나 많은 역사와 이야기를 담고 있었는지, 책 한권으로 (내 딱딱한 뇌조차도) 어렴풋하게나마 알아볼 수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그 가치를 지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