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리뷰 - 이별을 재음미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 책 읽기
한귀은 지음 / 이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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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많기도 한 연인들을 위한 날 중에 하나인 화이트데이. 그 즈음 나는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이 책을 읽고
집에서도 이 책을 읽는다. 책등아래 지하철의 긴 의자에는 남자한명을 제외하곤 연인들끼리 속삭이며 웃었다.
언젠가 봤던 우스갯사진을 보고선 피식하고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그 웃음엔 침전물이 섞여있었다.
책을 펼치고서도 쭈볏했다. 그들이 이 책을 보면, 무슨생각을 할까.

그때의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데서 오는 서글픔이었을까 아니면,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데서 오는 자괴감이었을까. 절대적 진리는 그 어디에도 찾기 힘들겠지만, 어렴풋하게 이별이라는 안개속을 더듬어 가는 일. 이별한 누군가를 애타게 찾아 헤맸건만, 거친안개의 끝에서 비에 흠뻑젖은 자신을 발견하는 일. 이책은 그것을 위한 책이었다.

 
프롤로그에서 한귀은 작가는 세상의 사람들을 단 두가지로 정의한다.

"이 세상 사람들은두 종류로 나뉜다. 실연당한 적이 있는 사람과 실연당한 적이 많은 사람."

실연이라 함은 명사로써 연애에 실패한 사람 이라고 되어있다. 하지만 실연이라는 것은 고작 이별의 테두리 안에 있을뿐이다. 이별이라는 단어를 실감하고, 그 단어가 지닌 무게를 알고나서 굳이 남녀간의 사랑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수많은 것들과 이별하고, 멀어지고, 흐려지게 되지 않는가.

이 책은 총 32편의 문학작품을 가지고 그들의 이별을 진단하고 나아가 독자를 진단하는 책이다. (가끔은 영화도 언급된다)
왜 그래야만 하는지,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크게 두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이럴 때이다.영혼의 치유 장소인 '책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할 때. BC1300년경에 책이 있는 곳, 도서관을 '영혼의 치유 장소'
라고 부른 사람은 이집트의 람세스 2세였다. BC 300년경 고대 그리스 도서관 입구에는 '영혼을 위한 약' 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책 테라피, 문학 테라피, 라는 말도 책과 문학, 그것이 갖는 치유의 능력을 나타낸 것이다. " (12P)

"어쩌면 당신의 연인은 독특한 책이었는지도 모른다. 당신은 불행히도, 그 책을 읽을 줄 모르고 품기만 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당신은 자기 자신조차도 하나의 책이었다는 것을 모르고 연인에게 읽힐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이별한 자는, 파지가 몇 장 섞인 불안정한 책이거나, 시인 기형도가 말했듯이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인' 책일 것이다. 이제 당신이라는 책을 다른 책의 힘으로 다시 편집하고 제본할 차례이다." (13P)


이 외에도 왜 책이어야 했는지, 독자들이 그간 인식하고 있어도 언어로는 풀어놓지 못했던 이유들을 설명하고, 그 근거로써 32가지 문학작품을 제시한다.

 

배수아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자신의 이미지를 매력적으로 각인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상대의 '지금 여기'의 상태를 이해하려고 하고 그 상태가 말하는 바대로 응대하는 것에 가깝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존재들이 타자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타자의 언어와 몸짓을 이해하려는 것이다
 

정이현 [낭만적 사랑과 사회]

 연인은 신비의 장소이다. 우리는 그 연인에 대한 탐험가가 되어야한다. 그래서 이 세상 모든 연인들은 이미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을 그/녀에게 적용하는 사라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것, 아무도 모르는 것을 찾아 헤매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다.
 

전경린 [물의 정거장]

 결국 "나는 너를 사랑해." 라는 문장에는 그것이 지시하는 직설적인 의미보다 더 강하고 절실한 욕망이 짙게 배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간혹, "나는 너를 사랑해."  라는 고백을 들을 때 순간 불편해지거나 두려워지기까지 하는 것이다.
 

이성복 [남해 금산]

 애도는 어렵다. 어쩌면 불가능하다. 그래서 후기 프로이트는 <에고와 이드>에서 실연 후 발생하는 우울증을 병리적이거나 정신적인 질병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이별한 모든 자아는 우울증적이라고 말했다. 떠난 연인은 내 자아 안에 다시 자리잡는다.

 단언컨데, 누구라도 헤어진 연인을 완전히 잊지는 못할 것이다. 잔인하지만, 애도는 오랜시간 공회전만 한다. 애도해도, 애도해도, 애도는 끝나지 않고 영혼의 에너지를 조금씩 갉아먹는다 (...) 우리는 수많은 이별에 대한 애도의 에너지를 비축하기 위하여 더 사랑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사랑은, 오래전 우리가 겪은 이별의 애도를 위한 것이다.

 


이 책은 서문에서 작가가 밝혔듯이,

이 책은 이별의 과정을 극복한 어떤 성숙한 사람이, 이별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 그러나 마침내 '애도'와 '희망'을 말하는 장에서는 점차 자존감을 회복하는 듯한 고요한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어쩌면 책 제목이야 말로 매우 적절하면서도 솔직하다. 이별에 관한 리뷰. 좀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여러 작가들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이별에 관해 리뷰하는 책이다. 심지어는 독자들이 이별을 중심화두로 생각지 않았던 책들에게서 까지 이별을 꺼내놓는다. 그래서 여기 32가지의 이별들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게 거미줄처럼 엮이어 있다. 그래서 때로는 그것들이 파편적으로 흩어져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책에서 다루고 있는 목차대로,

1. 이별의 전조와 실연의 정황
2. 부정과 슬픔의 정황
3. 사랑에 대처했던 우리의 자세
4. 분노하고 애도하라
5. 사랑을 말해본다


 따라가다 보면, 자신의 이별뿐만이 아니라 타인의 이별, 가공된 이별까지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게된다. 그래서 그 거미줄 같은 이별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탐색하게 된다. 거미줄이 그 복잡함만큼이나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모든 사랑과 이별이 제각각 이듯, 각각의 이유와 변명을 갖고 있듯, 닮기도 하고 닮지않은것 같기도 한 이야기들은, 종국엔 모두 그들의 이야기이도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 이기도 하고, 나아가서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것을 어렴풋하게 알게된다. 그래서 나는 한 목차의 책에서 발견한 이별이 다른 목차의 책에서도 발견되는 것을 느낀다. 

 때론 조금 위험함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읽지 않은 책들의 이별리뷰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미리 그 책을 읽었다면 한귀은 작가의 이야기를 조금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과, 가끔은 상대적으로 전문적인 용어들을 바라보며, '이별의 인문학' (이란 단어가 있다면) 같은 책인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다. 인문학이 어떤책인가. 처음엔 조금 부담스럽더라도, 내려놓고 난 후에는 그 묵직한 지식과 지혜에 스스로가 감탄하지 않은가? (오해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정말 시중의 다른 인문학책처럼 어려운건 절대 아니다. 그저 어떤 적절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을 뿐) 이렇게 느낀바대로 나에게 이책은 사실 그렇게 친절하지만은 않았다. 아마 여타의 이별에세이보다 전문적인 지식들이 동원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해본다. 다소 어려웠다는 것은 그동안 너무 쉽게 바라봤던 것임을 증명하는건 아닌지. '이별'이라는 것은 쉽고 어렵고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절박한가' 의 문제일 것이고, 그러므로 쉽게 바라보든 어렵게 바라보든 그 모든이의 이별은 가치있다. 다만 누군가는 이렇게 감성으로서의 이별이 아니라 이성으로서의 이별을 얘기해주어야 한다. 그렇게 이성을 거치고 다시 감성으로 들어가면 한뼘 성장해있을 것이다.

 여타의 이별치유서와는 조금 낯선 이 책에서 더욱 진한 향을 느낀다. 리뷰된 책들을 미리 읽어봤더라도 그정도로 깊게 들여다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언젠가 그 리뷰된 책들을 다시 읽어볼때, 나는 좀 더 성숙한 시선으로 그들의 삶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모든 이별과 상처는 다르지만 같았고, 그렇기에 어렴풋히 이해할 수 있을테니깐. 어쩌면 그동안 '이별'이라는 화두를 너무 낭만적으로만 생각해왔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의 목적은 세상에서 너무도 만연하고 쉽게 언급되는 이별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 옛 문헌들을 언급하고, 프로이트를 인용했으리라. 사랑과 이별은 어느순간, 어느장소, 어느누구에게도 존재했던 순간이니깐. 

 사랑이라는 매혹의 향이 다하고, 이별이라는 껍질을 벗겨내었을때, 비로소 자신에 대해서 발견하고, 껍질을 이해하고, 향을 다시한번 음미하기 위해서, 좀 더 구체적이었을 필요가 있었으리라. 세속된 언어와 비유로는 고만고만한 이별 토닥거림 밖에는 안되는 것임을 인지했기 때문이리라. 아무리 '꿈이기를..' 하고 속삭여봐도 언제나 이별은 '현재'에 있었으니깐.

 많은이들이 언젠가의 눈부시게 행복했던 순간들의 대가를 치른다. 우리는 요금소에서 통행료를 지불하여야 한다. 누군가는 그런 대가 없이 종착지에 다다르기도, 그 길 중간에서 타인의 사고를 목격하기도, 혹은 당사자가 되어 영영 그 요금소에도 닿지 못하기도 한다. (물론 대가란 것은 다의적인 해석을 포함하고, 무리가 따르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사랑은, 아무 데서나 시작되고, 이별은, 어떤 곳이든 따라붙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사랑에 대해서는 패자일 수 있지만, 이별에 대해서는 패자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이별은 순전히 내가 짊어져야 할 사건이기 때문이다. 나 혼자 감당해야 할 일에, 내가 진다면, 그것은 자기 삶에 대한 태만이자 무능이기 때문이다.(270P) 

 이 <이별리뷰>는 우주라는 도서관에서 이별로 분류된 이야기들, 혹은 이별이 포함된 (사실상) 모든 이야기들을 해체하게끔 도와준다. 그렇게 그 대부분의 이야기들을 해체하고 있노라면, 자신의 사랑, 자신의 이별 그리고 결국은 자신 또한 해체됨을 느낄 것이다. 그러면 적어도 자신에 대한 진실은 아니더라도, 그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확률의 상승을 도모할 수 있다. (진실이란게 있다면) 간혹 거기까지 멀리 돌아간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자신이 지나온 길의 풍경을 오롯이 담아왔다는 것을 알게해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이별에 대한 책이 아니다. 사랑에 대한 책이다. 이별은, 사랑으로 가는 가장 먼 길이기 때문이다.(27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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