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미인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0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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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봉했던 헐리우드판 <렛미인>. 영화는 분명 아름다웠다. 개인이 가진 최후의 공간에 서로를 엮어놓는 오스카르와 엘라의 모습은 시리도록 아릅답고, 때로는 잔혹하기도 했다. 영화내내 많이 등장하는 하얀 눈은 공간, 계절적 배경이 되는것과 동시에 여주인공 엘리의 모습과도 대비됐다. 그리고 어쩌면, 내내 떠날 수 없는 피의 붉음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주는 색이기도 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그리고 중심적으로 엘리와 오스카르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아마 그럴수 밖에 없었을 것. 엘리와 오스카르에 초점을 맞춘다 해도 2시간은 그리 넉넉하지 않은 시간이었을테니깐.) 원작을 읽지 않았더라도, 눈치빠른 관객이라면 알수도 있을테지만 렛미인의 주변인들은 영화에서 보여지는 것 이상으로 많은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었다. 조연으로서가 아니라 또 하나의 주인공들로 볼 수도 있을만큼. 영화속에서 호칸의 모습을 보며, 감독이 택해야만 했던 이야기, 그 바깥에 있는 이야기들이 더욱 궁금해졌다. 그것이 바로, 영화를 보고나서도 소설을 펼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 부득이하게 스포일러성 이야기들을 다량 포함하고 있습니다. - 
 
렛미인은 80년대 스웨덴 스톡홀름의 교외지역 블라케베리에 사는 이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다. 이렇게 설명을 하면, 마치 일상적인 소설로 보여진다. 하지만 여기에는 뱀파이어가 등장한다. 수많은 시간을 외롭게 견뎌내온, 피에.. 아니 그 흐르는 생명의 따스함에 굶주렸던 한 뱀파이어가.
 
오스카르. 이혼으로 인해 편모 아래서 살고있는 그는 몇몇 급우들에게 심한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아이들은 그런 그를 도와줄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외면할 뿐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우둔하지 않다. 필요에 따라 도둑질까지 할 정도의 대범함이 있으며,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허공에, 나무에 힘껏 칼을 휘두를 만큼의 증오심은 가지고 있다. 다만 그는 아직까지 껍질속에 자신을 밀어넣고 있는 달팽이기에, 그들에게 당할 수 밖에 없다.
 
호칸. '비뚤어졌다' 라고밖에 할 수 없는 성적취향을 가진 그는 엘리에게 사랑받기 위해, 사랑하는 이로 인정받기 위해 살아있는 이에게서 피를 훔쳐온다. 시작점부터 다르지만, 갈수록 극명하게 그 노선이 갈리는 이 두 남자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일자별로 진행되는 서사는, 후반부에서는 그 시간대로 나눠지기도 하며 독자에게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그들을 중심축으로 이야기바퀴는 돌아간다. 하지만 아이들로 인해서 다소 치우칠 수 있는 이야기를, 작가는 그들을 둘러싼, 혹은 필연적으로 연결되는 인물들을 통해서 함께 보여준다. 맞물린 톱니는 더 멀리까지 큰 힘을 내어주게 되는 것. 방법은 사회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했고 실제로 그런 범죄를 저지른 경력도 있음에도 실상 그 마음이 뿌리까지 차갑다고는 할 수 없었던 호칸으로 부터, 부랑자이지만 사랑하는 이를 포기할 수 없었던 라케, 그리고 많은 인물들이 이 '렛미인' 이라는 한마디를 통해서 돌아가는 하나의 톱니들이다.
 
영화에서 보여졌던 만큼, 그런 사랑의 감성만을 따라가는 (뱀파이어를 차용한)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초반에 확인할 수 있었다. 렛미인은 굉장한 스릴러적 요소를 가지면서 고차원적인 사랑의 이야기와 상대적 선과 악에 대한 고민을 뱀파이어를 끌어다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절대 간과해서는 안될것이 라케와 비르기니아 다. 이들은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텨내는 사람들이다. 거의 수입은 없다시피하며 선술집에서 만나 다른 친구들과 왁자지껄하게 술과 농을 즐기는게 유일한 낛일 수 밖에 없는 사람들. 
   

 
- 인간의 고통과 어쩔 수 없음, 실망으로 이어져온 수천 년 세월이 잠깐이나마 라케의 노구에서 출구를 찾아 계속 쏟아져 나오는데, (2권 266p) -
 
다만 너무 늦게, 혹은 (역설적이게도) 엘리를 통해 알게된, 사랑에 대한 깊은 가르침으로 인해 비극아닌 비극을 맞게되는 이들이다. 
 
 
- 구름기둥이 날 도울 거야. 그런 새끼한테는 눈물이 쏙 빠지게 귀싸대기를 날리는게 약이야. (2권 105p) -
 
물론, 톰미. 톰미 또한 아버지가 안계시는 것을 제외하고는 오스카르와 같이 편모아래서 자라고 있고, 오스카르보다는 더 실제적으로 어긋난 생활을 하고있다. 톰미는 오스카르와 엘리, 라케와 비르기니아와는 다르게 좀 더 그 사회적인 배경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그 어린아이들을 결국 그런 상황으로내몬 기성세대들은 여전히 그들의 위엄과 기득권을 강요하고, 또 가르치려 한다. 그들은 어느정도는 아이들에게 존경받을 수 없는 요소요소들을 갖추었음에도, 그것들을 인정하지 못하고 아이들을 훈계하려 든다. (실제로 여기서 어머니의 모습들은 그래도 대게 온화하고 따스하게 그려진다. 아버지의 위치에 놓여있는 그들의 행동들은 작가의 의도를 잘 담았는지 대부분 한심하고 허섭스럽게 그려진다) 이렇게 렛미인은 인간의 안과 밖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를 적당한 거리를 갖고선 함께 끌어나가고, 종국엔 그것들을 한데 묶어버려버린다. 그 경계선을 구분할 수 없을만큼 교묘히.
 

어쩌면 그런데로 평범한 아이였을지 모를 오스카르는 불안전한 가정사와, 괴롭히는 급우들로 인해 결코 평범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런 요소들로 인해 꾹꾹 눌러담아진 분노와 증오. 적절히 나갈곳을 찾지 못하고 압축되어오기만 했던 그것들이 오스카르의 손에 칼자루를 쥐어준다. 바로 여기, 이곳에서 독자들은 그런 오스카르의 감춰진 모습을 바라보는것이 아니라, 스스로 칼자루를 쥐고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작가는 그렇게 치밀하고 교묘하게 오스카르를 그려넣는다. 더불어서 불가피하게 살아움직이는 피를 강제적으로 뺏어올 수 밖에 없는 호칸의 모습과 교차적으로 이어진다. 치밀하게 짜여진 이 둘의 교차점들과 작가의 트릭을 보면서, 어쩌면 이 둘의 공통점을 이렇게 시사하는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다만 살짝 틀어진 각도와 더 깊은 곳에서 드러나지 못했던 차이들이 이들의 결과를 완전히 대립시키지만 말이다. 
 




무언가를 빈틈없이 채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일인지 상징이나 하는 듯한 큐브를 갖고 오스카르와 엘리는 만나게 된다. 그 만남으로 인해 오스카르는, 자신들을 괴롭히는 급우들에게 날을 세울 줄 아는 용기를 갖게되고, 엘리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자신에게 피를 대어주는 혹은 그것을 조달해주는 수단 이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초반에서부터 오스카르의 혼란스러운 자아에 들어갔고, 상식적인 서사를 살짝씩 벗어나는 진행에 영화에서의 차가운것 이상으로 따뜻한 눈의 모습을 잊게 된다. 이즈음 알게된 듯 싶다. 그렇게 감성적으로 흘러가기만 하는 소설이 아니란것을.
 
함께 할 친구가 있다면 천국같은 따스한 곳이 되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라면 지옥같은 외로움이 존재하기도 하는 곳. 놀이터에서 에스카르와 엘리는 서로를 처음만나게 된다. 에스카르는 학교에서는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고, 때마침 열심히 칼을 휘두르는 중이었다. 엘리는 씻지않은 것 같은 냄세를 풍기고, 머리는 몇일 감지않은 것처럼 기름져있다. (엘리의 경우가 에스카르와 같다고 할 순 없지만) 그들은 서로가 가진 단점, 혹은 이상한 점들에 갖고 서로를 비난하거나 멀리하지 않는다. 냄세가 나는 것을 좋은 향기라고 생각하는것 까진 할 수 없지만, 거기서 으레 사람들이 갖는 오만가지 편견과 멸시 등이 없었다. 서로에 대한 어떠한 색안경도 끼지 않고, 상대의 단점이든 이상한점이든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는 마음. 그로인해 그들은 친구가 되게되고, 그것들이 오스카르와 엘리를 놀이터에게 계속해서 만나게 하고, 얇은 벽을 사이에 두고 모스부호를 사용해 의사소통 할만큼 창의적으로 만들기까지 한다.
 
하지만 결국, 방법과 욕심이 비뚤어졌다해도 자신의 쾌락앞에서 동정심과 이성을 끄집어 낼 수 있었던 그 내면까지 악하다고 할 순 없었던 호칸은 엘리를 위해, 사랑받기 위해 할 수 밖에 없었던 살인을 그만두고 싶어하고, 결국 엘리는 지나가던 취객을 제 먹이로 삼게된다. 그리고 그 희생자와 아주 절친한 친구였던 라케의 비극또한 시작된다. 호칸이 정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어떻게든 마지막이 될 것이고 아마 돌아오기 쉽지 않을거라고 예상했던 그의 마지막 계획은 결국 제 얼굴에 염산을 뿌려가며 끝날 것처럼 보여지지만, 그것은 잔혹하고 거대한 이야기의 시작에 불과했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이다. 영화에서의 호칸의 설정은 다르지만, 어쨌든 엘리를 위해서 피를 구하는것은 같은데.. 그의 배경이 설명되지 않은 채, 경찰에게 잡히기 전 자신때문에 엘리의 신변에 위협이 가해질까봐 제 얼굴에 염산을 부을정도의 맘을 가진 그를, 엘리는 너무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점. 그것때문에 사실 나는 엘리와 오스카르의 이야기에 남들만큼의 큰 감흥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이 원작에서는 완벽히 설명된다고 할 순 없었지만, 왜 엘리가 호칸을 그렇게 대할 수 밖에 없었는지 잘 묘사되어 있다. 누군가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사실 어느누구도 비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엘리는 옷을 사고 다시 집을 얻을 수 있는 돈을 주었다.  

그는 엘리가 '악'인지 '선'인지, 혹은 다른 어떤 것인지 궁금해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했다. 

 엘리는 아름다웠고, 엘리는 그에게 자존감을 되찾아 주었다. 그리고 극히 드물게나마...... 다정하게 대해주었다 (1권 331p) -
 
호칸은 가정이 있었다. 그의 성적 성향은 왜곡되어있었지만, 어쨌든 그도 남들만큼의 삶을 살아가고 있던중에 그것을 잃고, 그 상실의 부분에 엘리가 먼저 손을 내민다. 아마 엘리도 호칸의 그런 성향을 알았다면 다른 이를 끌어들였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 누구나 자기 생각만 한다. 나의 행복, 나의 미래란 말만 할 뿐이다.  
진정한 사랑은 자신의 삶을 다른사람의 발 밑에 내려놓는 것이지만, 그런 면에서 오늘날의 인간들은 불능이다. (1권 p39) -
 
이것을 최소한으로 지킬 수 있었던 호칸은 결국 선을 넘기고 마는 비극을 만들어 낸다. 뱀파이어의 피가 섞이고, 죽음을 뛰어넘고 이성을 상실하기전까진 그래도 그에겐 절제가 있었고, 선택받지 못하는 비극에 대해 무릎을 꿇을지언정 무단침입하지는 않을 만큼의 이성과 배려가 있었다. 하지만 언데드라 부를 수 있는 존재가 된 후 그 이성은 그 육체속 깊은 곳으로 빨려들어가 절대 빠져나올 수 없게 되어버린다. (어쨌든 인정받기 쉽진 않겠지만) 엘리에 대한 사랑과 오스카르에 대한 질투, 그로인한 집착으로 인해 왜곡된 그의 마음은 종국엔 그를 괴물로 만들어 버리고 엘리를 강제로 범하려 하기까지 한다. 이것은 잔혹한 씁쓸함과 쓸쓸함을 갖게 한다.
 
- 사람들은 개나 소나 다 친구라면서, 그 말을 아무 데나 갖다붙였다, 그에겐 한명만이,
단 한 명의 친구가 있었지만, 그마저 어이없게도 피도 눈물도 없는 강도에게 빼앗기고 만 것이다. (1권 276p) -
 
죽마고우였던 요케를 잃은 라케는 비르기니아의 존재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할 수 있게된다. 가진것이라고는 물려받은 고가의 우표인 라케는 자신을 사랑하는 비르기니아에게 심한말을 하게된 후 정말로 자신이 그녀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녀와 함께 행복한 삶을 꾸려가려 하지만, 비르기니아는 이미 예전의 그녀가 아니게 된다. 마침내 비르기니아를 자신이 가진 개인적 최후의 공간에 들여놓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그는 한 생을 구원하려고 돌진하고 있었다. 바로 그의 생을 (1권 338p) - 
하지만 결국 그녀를 잃게 된 라케는 그녀를 그렇게 만든 엘리에게 복수를 하기위해 달려든다..
 
호칸과 라케는 오스카르와 대조되고, 비르기니아는 엘리와 대조된다. 어쩌면 호칸과 비르기니아는 우리가 선망하는 오스카르와 엘리의 모습을 극명하게 드러내주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는 동시에, 그렇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을 대표하기도 한듯 보여졌다. 
   

호칸은 앞서 말했듯이 그래도 진정 사랑하는 것에 대하여 최소한의 사랑과 집착의 경계를 정할 줄 알고있었다. 아니 어쩌면 시간이 그 부족한 사랑을 채워주길 바랬다. 하지만 오스카르의 등장으로 인해 그 희망은 무너져갔고, 결국 그녀를 위해 최후까지 헌신했지만 그의 심장은 육신과 따로 떨어지게 되고, 이성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욕망과 집착은 엘리를 막다른 벽으로 몰아넣는다.
  
- 호칸이 문간에 우두커니 서 있다는 사실이 한가지는 암시해주는 듯 했다. 그가 초대를 받아야 들어올 수 있다는 것 (2권 221p) -
 
하지만 그것은 엘리의 착각이었다. 이미 이성따윈 상실한 호칸은 결국 그녀에게 '들어가도 될까' 라고 물어보지 않은 채 엘리의 공간을 침범한다. 하지만 오스카르는 그것과는 대조적으로 순수함을 갖고선 엘리의 공간에 들어가고, 엘리를 선택하고, 엘리에게 선택받는다. 오스카르와 호칸의 마음에 큰 차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어쨌든 호칸은 엘리에게 선택받지 못한 존재였고 그는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호칸이 선택받지 못한 이유는 사랑의 크기가 아닌, 그가 갖지 못했던 오스카르 같은 순수함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미 성인이 된 호칸에게는 찾을 수 없는 순수한 욕망.
 
 
- 라케는 목이 메도록 케이크를 먹으면서 인간의 상대적 선과 상대적 악에 대해 생각했다. (2권 200p) -
 
너무 늦게 비르기니아에게 '들어와' 라고 말했던 라케의 비극은, 사실 엘리로 인한 것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것은 아무리 엘리와 오스카르의 사랑을 순수로 포장한다고 해도 불변하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엘리와 오스카르의 순수함과 동시에 라케와 같이 '상대적 선과 상대적 악' 을 생각하게끔 만든다. 어쨌든, 다만 비르기니아는 엘리가 뱀파이어가 됐을때와는 다르게 성인이었고, 그가 선택한 라케에게도 선택받았다. 그 사랑은 그녀가 라케와 함께 살아가고싶은 욕심과 더불어, 역으로, 라케를 위해서라도 그렇게는 절대 살아가서는 안된다는 결심을 심어주며 자신을 태울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그런 결심을 하는 부분, 자살아닌 자살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부분에서 정말로 울컥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어떤 오스카르와 엘리의 사랑보다 더 심장을 쥐어짜듯 아파왔다. 살아가고 싶은 욕구는 누구나 강하다. 그럼에도 그녀는 남들과 동일하게 살아갈 수 없는 운명을 갑작스레 짊어지게 되고, 그렇게 라케와 사는것은 결국 라케를 파멸하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므로써, 스스로의 삶을 끊게끔 만든다. 그녀는 엘리가 살아야만 했던 이유, 그저 자신에게 펼쳐질 '無'에 대한 두려움 보다 더 큰 '타인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있는 행복' 을 갖게 됨으로써 마침내 고통스럽고, 미치도록 싫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아주 조금이나마 행복하게 삶을 끊을 수 있던 것이다.   
- "비르기니아! 비르기니아! 자기야, 사랑하는......" (1권 342p) - 
그녀는 결국 라케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있었고, 라케를 자신의 마음속에 들일 수 있었기에...
 
 
- 그러나 머릿속에서는 계속그 생각이 맴돌았다. 난 존재하지 않아. 난 존재하지 않아 (2권 p95) -
 
- 그 몇 초 동안 오스카르는 엘리의 눈을 통해 보았다. 그가 본 것은...... 그 자신이었다.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근사하고, 더 잘생겼고, 더 힘이 센, 그리고, 사랑을 하고있는. (2권 302p) -  
 
물론 주인공은 오스카르와 엘리이다. 분노를 쌓아놀 수 밖에 없었던 오스카르는 아빌라 선생의 말처럼 달팽이 껍질에 숨어있다가, 엘리를 만남으로 인해 용기를 내서 자신을 위협하는 것들에 대해서 좀 더 눈을 치켜뜨고 바라볼 수 있게된다.
 
 
- "나 들어가도 되니? 들어가도 된다고 말해줘." /
이젠 엘리가 무서웠고 보고싶지도 않았지만, 정말로 그렇게 되길 바라는 건 아니었다. (1권 347) -
 
 엘리는 오스카르에게 들어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아야만 온전하게 그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다. 1권에서도 언급됐듯이, 남을 마음에 들이는 것은 아픔이 따른다. 아마 몇백년을 살았던 엘리는 그것을 뼈저리게 체감하고 있었거나, 그동안 갖지 못했던 그것을 동경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작 몇십년, 십몇년을 산 이들은 그것들을 잘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른다. 혹은 많이, 아주 많이 아프고 나면 이해한다. 남의 마음에 들어가기 전에 상대에게 동의를 구하고 그것이 설령 자신의 행복과는 어긋나는 결과일지라도 인정해야 하는 것.  

 
- 나는 떠나야만 살 수 있고, 머무르면 죽으리. 너의 엘리가 (1권 291p) -
 
보통때와 비교하면 보기드물게, 난 이들의 뒷 이야기에 대해서 상상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아마 엘리는 숨을 끊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누군가의 진심속에 들어갈 수 있었고, 진심으로 누군가를 들일 수 있게 된 엘리는 이제 그 지난한 자신의 생을 마감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마치 비르기니아 처럼 말이다. 

 



이 소설은 그것들을 위한 이야기라고 생각되어진다. 타인과의 거리. 자신의 사랑과 타인의 사랑. 그것이 만나는 지점에서 상대를 배려하는 일. 내가 향하는 마음을 허락 받는 일, 그것이 설령 no 라도 인정하게되는 일. 그리고 그 누군가를 들이는 사람은 아플지도, 정말 아픈 일 일지라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그것은 아픔과 동시에 최고의 행복이 되니깐.
 
그러니깐.. 나는 렛미인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게 아닌가 하고 생각할 따름이다. 순수함과 성숙함을 동시에 지닌 아이들도, 어른들도 관통하는 이야기. 누군가의 마음속에 들어가고, 누군가의 마음을 들이는 것은.. 그래. 쉬운게 아니다. 자칫했다간 피같은 눈물을 쏟을 수 있다. 엘리처럼. 그래도 인류의 역사를 따라서 끊임없이 행해지는 것. 행해질 수 밖에 없는 것. 그것이 바로 단순한 이 한마디. 'Let me in' 으로 아주 심플하게 표현되고 있는게 아닐까.  

  


 
사람을 가슴에 품으면 상처를 입게 되는 법.
비르기니아가 관계를 길게 이어가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사람을 가슴에 품지 마. 그들이 들어오면 상처받을 일도 많아져.
너 자신외에 너를 위로해줄 사람은 없어. 너 자신만의 문제라면 고통스러워도 그럭저럭 살 수 있을 거야.
희망을 품지 않는 한 괜찮을 거야.그러나 라케와 함께하면서 그녀는 희망에 매달리게 되었다.
그들 사이에 무언가가 서서히 싹틀 거라고, 그래서 마침내는. 언젠가는. 무엇이? (1권 338p) 
   
그럼에도 우리는 언젠가 말할 것이다. '들어와' 라고. 그것이 개인이 가진 불완전한 행복을 채워주는 유일한 길 일테니깐.
이것은, 사랑을 넘어 우정까지 관통하는, 관계와 소통에 관한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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