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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 - Travel Notes, 개정판
이병률 지음 / 달 / 2010년 7월
평점 :
생각이란 것은 크게 공간의 제약을 받는것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방 한귀퉁이에서도, 일터에서도, 학교에서도, 복잡한 기차 플랫폼에서도 그리고 그 어디서라도. 실제로도 현실로서의 여행에 회의를 느끼고 책을 통해서 그곳에 대한 상상으로서의 여행을 즐기는 이도 있기는 했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는, 나름의 ‘정신적 여행’ 을 하면서도 대부분은 저마다 인생에서 한번이상을 어딘가로 떠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긴 인생속에서 어느 공간, 어느 사람에 머무는 것이 또 긴 부분이라고 친다면, 몸과 마음을 일상에서부터 떠나보내는 여행은 어쩌면 인류에게 필수불가결한 요소였을 것이다. 물론 역사상 지금까지도 여행하지 않고 많은 업적과 행복을 누린 사람들이 적지는 않을 것이고, 그런 논리에 입각한 ‘생각’은 앞서 말했다시피 시공을 넘어서 확장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여행은 확실히 그 생각들의 촉매제 혹은 변수의 역할을 한다. 그것이 왜, 어떻게 촉매제와 변수가 되고 사고를 확장시킬 수 있는지를 이 [끌림]은 아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는 여행했던 공간에서 그 이상의 공간을 본다. 낯선 어느 공간에서 마주하는 것은 낯선 풍경과 낯선 사람뿐만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봐왔던 자신의 공간을 넘어가보는 일이 된다. 전혀 관련이 없다고 생각될만한 공간에서 잊었다고 믿었던 그리운 이를 다시금 떠올리며 텅빈 가슴을 달래보기도 하고, 말도 통하지 않으면서 낯선 누군가를 동경하기도 하고, 자신의 삶에 대해서 성찰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거창하게 얘기하자면 여행이란것은 개개인에게 바꿀 수 없는 추억이 되고, 삶을 살아가는 제 나름의 밑거름이 된다. 물론 그것은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힘은 당장 없을지라도, 한방울씩 떨어지는 물이 세월을 타고 돌을 깎아 내리듯, 천천히 삶의 방향을 되잡아주기도 한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느끼지 못하기도 하고, 실제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은) 또한 처음 마주하는 공간에 대한 경이감을 탄생시키면서도, 자신이 잊고있던 많은 것들에 대해서 불현듯 꺼내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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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지요.
차곡차곡 쌓은 환상도 펴보면서,
때론 그것들이
조용히 허물어지는 것도 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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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그런 경험들을 타인과 나누기 위해 누군가는 그 여행지를 추천해주고 설명해주지만, 누군가는 그 경험들을 시적 언어로 풀어놓음으로써 당시의 사색들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향유한다. 이병률 시인의 [끌림]도 두말할 것 없이 후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시인의 감수성과 성찰이 듬뿍 담긴 언어들의 향연에 취해있다가도, ‘아 언젠가는 저곳에 꼭 가보고 싶다, 나도 저런 낯선 장소에서 많은것을 생각해보고 싶다’고 느껴지니, 사실 이보다 더 좋은 여행추천도서 또한 없을까 한다. 다만 실용적인 것에 중점을 둔 여행책들은 그 여행지들과 여행에 대하여 찬양하기위해 길게 길게 늘어놓는다면, 이 [끌림]은 짧고 간결하고 조용하지만, 그럼에도 낯선곳을 향한 여행의 즐거움에 대해서 차분하게 그려내고 있다. 삶을 사색하는 시인의 태도에서도 낯선 여행지의 매력적인 모습이 보여지고, 그런 낯선 여행지의 모습에서도 사색하는 시인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때로는 여행이 우리에게 이렇다 할 생각들을 던져주지 못할때를 본다면(혹은 실제와는 다르게 그렇게 생각함에도), 시인의 감성과 성찰로 가득한 ‘낯선곳에 대한 안내’를 책 한권으로 어느정도 대신할 수 있는것은 참으로 저렴한게 아닌가싶은 생각도 든다. [끌림]은 작가가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그곳에서 자신이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말그대로 더욱 ‘끌리게끔’ 아름다운 언어들로 표현해내는데, 책의 어느곳을 펴봐도 놓치고 싶지 않은 글이 가득하고, 꼭 가보고 싶은 풍경이 있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그리워지고, 때론 삶에 대한 찬양으로 가득찬 글과 사진을 보며 맘껏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계를 둘러싼 것들에 대하여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어느샌가 책장을 덮으면,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서 그의 언어와 사진들이 한편의 외화를 보듯 눈앞에 떠오르기도 하며 낯선곳에 대한 호기심과 열망을 불태우게 된다. 비록 나는 낯선곳에서 이처럼 아름다운 글을 짓지 못한다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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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그런 의미에서 기차다.
함께 타지 않으면 같은 풍경을 나란히 볼 수 없는 것.
나란히 표를 끊지 않으면 따로 앉을 수밖에 없는 것.
서로 마음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같은 역에 내릴 수도 없는 것.
그 후로 영원히 영영 어긋나고 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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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끌림]에서는, 시인의 감수성과 낯선 체험이 가지는 힘이 조화가 되서 곳곳에서 시가 탄생한다. 공간속에서 시가 탄생하기도 하고, 시 속에서 공간이 탄생하기도 하고, 타인의 삶이 시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곧, 그 시 안에 남겨두고온 자신이, 떠나보낸 자신이, 마주하게 될 자신이 서로 사이좋게 펼쳐진다.
쓴 자신에 대한 성찰이, 읽는 자신에 대한 성찰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여정을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된다. 책 한권으로 세계 곳곳을 누려본 듯한 정신적 충만함과, 그리고 그것이 봄날의 파릇한 새싹처럼, 때로는 가을날의 낙엽처럼 가슴을 저리게 만들어 간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끌리게끔’ 되어있다. 그의 가슴을 적시는 글들에 끌리고, 그가 가보았을 많은 공간들에 대해서 끌린다. 아마 그것은 궁극적으로, 자신을 향한 여행에 끌리는 것이지 않겠는가. 결국 시인 또한 외부로 향하여 나갈수록 자신에 대해서 안으로 향하게 되고, 그로 인해 무엇하나 버리기 싫은 사색들이 탄생을 하고, 그것이 우리를 또 세계의 낯선곳으로, 내면의 중심으로 끌어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러니깐 이 산문집은 결국 자신안으로의 여행안내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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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사랑은 아무 준비가 돼 있지 않은 당신에게서 많은 것을 쏟아놓을 것이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나 세상을 원하는 색으로 물들이는 기적을
당신은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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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일이 쉬이 세계를 변화시키는 일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면 분명 다른 한가지는 가능 할 것이다. 우리 내면을 향해 좀더 여행하고, 다듬고 변화시키는 것. 그리고 그 길을 누군가와 동행한다면 나와 그 사람을 둘러싼 그 세상은 분명 좀더 아름다운 향기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