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타레즈 서클 1
로버트 러들럼 지음, 김양희 옮김 / 노블마인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미국 합참의장이 살해되고, 동떨어진 지점에선 망명한 과학자 한 명이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로 누군가의 감시를 받고 있다. 킬러 스코필드는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있는 듯한 남자의 얼굴을 보고 무언가 잘못된 것을 느낀다. 이 남자를 죽여야 한다는 상부의 명령이 내려졌지만 앞뒤의 일을 살펴보고 이 남자의 얼굴 속에 감춰진 감정을 읽어봤을 때 그는 정말로 망명한 자라는 생각이 스코필드의 머리에 자리잡는데.. 상부 명령에 문제가 있음을 감지하고 그를 살려주지만 함께 있던 동료 킬러가 이미 그를 향한 총구를 들이대어 생명을 앗아가버린다.

 

 러시아의 탈레니예코프와 미국의 스코필드에게 각각 내려지는 명령에 왠지 의심을 품는 두 킬러에게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왠지 망원경이 연상되는 이름을 지닌 탈레니예코프와 프리즌 브레이크에서 큰 인기를 얻은 스코필드와 이름이 같은 킬러 스코필드. 킬러들의 세계에서의 살인은 범죄가 아니다. 그들은 정부의 주도하에 전문적인 훈련과 실력 있는 킬러로 길러지고 그들의 정부에 의해 정치적인 일들을 수행한다. 다만 손에 피를 묻히고 개인적인 행복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킬러는 오로지 국가를 위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가 인정하고 있지만 공공연히 드러내지 않는 그들의 비밀요원이자 불법적인 일을 도맡아 하는 것이 킬러의 일이다. 국가에 대한 맹목적인 애국심이나 개인적의 분노 때문에 자신을 놓는 것이 아니라면 쉽게 선택하기 힘든 일이다.

 

 탈레니예코프는 사랑하는 여인이 미국 군인들에게 잔인하게 살해되면서 그들의 국가에 복수하리라 마음먹고 킬러가 되었고, 스코필드는 총망 받는 인재로 출세를 보장받고 있었지만 사랑하는 연인이 킬러의 손에 죽게 됨으로써 그 분노에 의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킬러가 된다. 스코필드의 연인을 죽인 킬러는 다름아닌 탈레니예코프였고 이에 대한 복수로 탈레니예코프의 동생을 죽이고 만다. 둘은 서로 철천지 원수가 되어 서로를 죽이는 날을 기다리며 칼을 간다. 그 날까지 각각 서로에게 맡겨진 임무를 수행한다.
 
 그러던 어느 날 탈레니예코프는 자신의 옛 스승으로부터 '마타레즈'라는 집단에 대해 듣게 되는데 세계 권력을 장악하여 보이지 않는 뒤에서 정치적인 술수와 음모를 꾸미며 살인, 마약, 납치, 테러 등 갖가지 끔찍한 일을 벌이며 세계의 질서를 흩뜨려 놓으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게다가 그들의 목표는 러시아와 미국 두 나라를 한꺼번에 장악하는 것이며, 그것을 시험해보기 위해 무차별적 살인과 테러를 일삼는다. 거기에 더해 마타레즈는 권력의 최상부층에 명령하여 최고의 킬러인 탈레니예코프와 스코필드를 각각 자국의 변절자로 만들어버린다.

 

 결국 탈레니예코프는 스코필드와 힘을 합쳐 마타레즈 집단의 목적과 비밀을 풀 수 밖에 없는 입장에 놓이고 마주치자마자 자신을 죽일 것이 확실한 스코필드에게 백색 신호를 보낸다.
 
 사실 이 책은 1권 초중반까지만 해도 인물 소개와 불시의 사건들의 설명으로 약간 지루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절정적 하이라이트인 스코필드와 탈레니예코프의 만남이 오기까지의 힘겨운 과정과 그 뒤로 이어지는 내용은 흥미롭기 짝이 없어 두꺼워 마지 않는 책의 장을 놓을 수가 없다. 보통 책의 두배 정도 되는 두께에 2권이나 되니 그 길이만 해도 엄청나다. 그럼에도 마지막장을 넘길 때까지 숨이 턱 막힐만큼 긴장감을 수시로 느끼느라 시간 가는줄 모르고 읽게 된다. 덕분에 드디어 소설의 끝을 알게 됐을 땐 후련함과 미련이 함께 남는 책이다. 마타레즈의 어두운 세력의 음흉한 계획과 양치기 소년의 정체를 알게 됐음에도 뭔가 해소되지 못한 느낌은 아마도 실제로도 이같은 세력이 곳곳에서 다른 양상이긴 해도 비슷한 형식으로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작가는 완전히 새로운 인물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스페인의 음흉한 사업가 '후안 마르치 오르디나스'를 본땄고 또한 삼각 위원회에서 마타레즈 위원회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뒤에서 세계의 정세를 움직이며 온갖 부정적이고 악한 행위를 저지르는 세력이 있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현실을 직시하는 경제학자 몇몇도 이미 보이지 않는 세력들에 대해 언급한 바 있고, 유능한 학자들 또한 세계 정세를 움직이는 부자들이라 호칭하며 권력자들에 대해 비난한 적이 있다. 전쟁이 그저 공격 받은 것에 대한 보복이 아니라는 점도 이라크 전쟁을 비롯한 몇몇 전쟁들의 내막을 통해 흔히들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일반인들은 의식하기 어려운 찰나에 많은 악명 높은 행위들이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그런 행위 뒤에 일부 집단의 정치적 음모와 이득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문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를 제대로 문제의식화 삼지 않고 대충 넘어가는 그 순간 이런 일들은 겉잡을 수 없이 번지고 어떤 곳이든 암세포처럼 자리 잡아 다른 형태로 모양을 바꾸기도 하며 전이된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한 곳에서 터지는 사건에서 아무리 해결하려 해도 너무 큰 것까지 건드려야 하는 판이라 결국 포기하고 덮는 것이 바로 부정의이다. 작가는 이런 부정의에 대한 불만을 소설에서 킬러를 등장시켜 마구 해소시키고 있다. 일반인이었다면 폭력에 대응하는 방식이 너무 순진하고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문적인 최강의 킬러 2명이 합치면 한계란 없어보이고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능력이 있다. 게다가 그들은 폭력에 대응하기 위해 암묵적이고 결단적인 방법을 쓸 수 있다. 마구자비로 미친 광자이자 살인자 한 명을 살려놓아봤자 그보다 몇 십배의 희생자가 생길 수 있다. 그러니 그들은 그들의 법으로 폭력자를 세상으로부터 차단한다.

 

 아무리 킬러라지만 한 인간이기에 킬러라는 직업에 비해 감정선 또한 누구든 느낄 수 있는 일반적 감정인 사랑과 우정, 존경심을 가질 수 있는 따뜻한 가슴을 가졌다는 것이 이 두 명의 킬러의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들에게도 소중한 사람이 있고 소중한 사람을 지키려 한다는 점은 이들의 인간미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스코필드에게 안토니아라는 가여운 여인이 마음에 자리잡으며 새로운 인생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처럼 이들에게도 평범한 삶을 꿈꾸는 희망이 있다. 그 밖에도 인물에 대해 푹 빠질만한 요소는 계속해서 나타난다. 그들의 직업적 능력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면모들에서 한층 빛이 나는 인물 캐릭터들이다. 영화화 됐을 때 아무래도 러시아인인 탈레니예코프는 '탐크루즈'가 맡을 듯 싶고, 스코필드는 '덴젤 워싱턴'이 맡지 싶다. 소설 자체가 탄탄하니 시나리오만 제대로 각색되면 훌륭한 두 배우의 멋진 연기가 무척 기대되는 작품이다.

 

 본 시리즈 팬인 나는 이 책이 그 작품의 모태인데다가 출간된지 꽤 오래됐었다는 것에 놀라울 따름이다. 첨단 기기로 무장한 킬러들의 세계가 아니더라도 이 작품은 고전적인 미를 가득 갖춘 소설이자 노련미를 고도로 끌어올려 볼거리가 풍부한 작품이다. 하룻 밤을 포기해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걸작이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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