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1 줄리애나 배곳 디스토피아 3부작
줄리애나 배곳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대폭발이 일어나던 날 나노 기술 속에 집약되어 있는 어떤 기능에 의해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성질을 지니거나 혹은 전혀 색다른 무생물의 것과 융합이 되어 함께 살아가는 것에 적응해야 했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했지만 이런 대폭발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안전한 '돔'안에 미리 대피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최대한의 좋은 것이라면 다 끌어맞춘 유전자를 모아 일명 '코딩시술'이라 하여 우성 유전자를 발전시켜 적용시킨다. 신체적으로나 뇌발달적으로나 갑작스레 성장하게 된 이들 중 가장 우수한 사람들을 뽑아 비밀리의 프로젝트에 투입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 외의 사람들은 돔 안에서 역사적 사실을 차단 당한채 그것과 관련 없는 지식들을 배우며 생활을 해나간다.

 

 한편, 의식주를 전혀 보장 받지 못한 채 위태로운 생존경쟁을 해야 하는 돔 바깥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기이한 신체의 모습으로 위험에 노출된 채 살아간다. 이 사람들에게 있어서 대폭발 이전에 있었던 그 어떤 것도 추억 이상이 되지 못한다. 눈을 뜨면 매일같이 하루를 버틸 식량을 마련하는 데 머리를 굴려야 하며 그들을 사냥하는 혁명군에게 쫓기는 위태롭고 불안정한 삶이다. 그들의 적은 도처에 널려 있고 하다못해 걸어다니는 길이나 나무도 의심해보아야 할 대상이다. 어쩌다 땅과 융합된 사람들은 겉부분에서 인간을 닮은 약소나마 일부분이라도 가지고 있을지라도 그들의 마음은 상대방을 향한 공격성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먹고 먹히는 생존경쟁이 생각하는 인간이 포함되면 포악성과 잔인성을 생각할 줄 알기에 더 끔찍한 상황으로 치닫는 것일까.

 

 돔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바깥에 있는 무수한 위험으로부터 오염되고 타락된 사람들을 '천민'이라 일컫고, 천민으로 불리는 사람들은 자신이 그렇게 불리는 것조차 모르고 돔 사람들을 '퓨어'라고 부른다. 퓨어는 알다시피 순수한 것을 뜻한다. 소설 속에서의 퓨어는 오염되지 않은 사람, 즉 다른 것과 융합되지 않은 사람을 의미한다. 대폭발 이후에도 역시 신분이 구분되며 역사는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대목이다. 어쩐지 이런 상황이 의심스럽고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브래드웰'은 새와 융합이 되어 등에 날개를 달고 있는 천민이다. 그는 조심스레 사람들을 모아 자신이 밝히고 있는 사실들을 말하며 그들이 함께 힘을 모아 이 모든 것을 뒤에서 조종하는 강력한 힘과 맞서기를 바라지만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기에 그저 말만으로 그칠 뿐이다.

 

 돔 안에서 일부의 자유를 억압 당하긴 하지만 안정과 의식주가 풍부하게 갖추어진 곳에서 살아가던 패트리지는 모든 정보를 알고 있는 강력한 권력을 가진 아버지가 있었지만 사이가 좋지 않다. 모든 면에서 완벽하고 아버지와 사이가 좋았던 형이 있었으나 어떤 사건인지 알 수 없는 사건으로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패트리지는 어머니와의 함께 했던 행복한 추억을 지니고 있지만 그의 어머니는 오래 전 죽은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말대로라면 그의 어머니는 성녀같은 여인이었고 자신을 희생하여 돔 안에 들어오지 않고 죽음을 택했다고 들으면서 컸기에 그는 모친이 죽은 걸로만 알고 있었다. 패트리지는 예전에 자신의 모친이 자신에게 먹인 알약 때문인지 코딩 시술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 유일한 돔 안에 사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모친에 대한 궁금증을 여기게 되면서 돔 바깥으로 나가야겠다고 결심한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다.

 

 자신의 어머니가 살아 있을지도 모를 단서를 발견하고 돔을 탈출하려는 계획과 드디어 돔을 탈출하는 석연치 않은?! 우연한 계기를 통해 10년 가까이 보지 못했던 바깥 세상을 구경한 그는 암울하고 절망적인 풍경에 경악하고 만다. 나오자 마자 목숨을 위협 받는 상황에서 한 소녀의 도움으로 위험을 모면한 패트리지는 소녀에게 다시 한번 도움을 요청한다. 엄마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를 '롬바드 거리'를 찾는 것... 소녀는 퓨어인 패트리지의 모습을 보고 잠깐 깜작 놀라지만 곧 그의 요청을 받아들인다. 이 일을 도와주고 소녀 또한 그에게 도움을 받을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소녀가 '프레시야'였다. 목에 선풍기와 융합된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혁명군으로부터 언제 징집될지 모르는 두려움에 숨어 살던 소녀.
 

 물물교환을 하기 위해 시장에 나선 소녀에서 시작하여 주변 사람들과 배경이 어떤 모습을 띄고 있는지 차근차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꾸려가는 '퓨어'는 자칫 유치해질 수도 있는 소재를 가지고도 아주 진중하고 침착하게, 처참하지만 너무 무거워 고리타분해지지 않게, 매혹적이고 완벽한 구성과 짜임새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놀라웠다. 처음에 펴들때는 가벼운 소설로 여겼다가 읽으면서 표현과 섬세한 에피소드 구성의 퍼즐들이 하나씩 맞추어져 나가면서 나타나는 전체적 맥락이 감탄사가 절로 나게 했다. 요즘 헐리우드 영화계가 뜸했다면 이 소설이 영화화되면서 다시 부상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영화로도 잘만 만든다면 볼거리도 우수하고 메시지 또한 강력해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리라. 코맥 매카시와 비견된다고 하는데 책을 절반 이상 읽고 나니 그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코맥 매카시의 책이 단문으로 짧고 굵은 여운을 남긴 반면, 영화는 큰 매력을 느낄 수 없었던 것에 비해 '퓨어'는 영화로도 기대감이 큰 소설이다.

 

 종말이라 부를 만한 대사건 뒤에도 사람들은 살아가고 생의 일부에서 어떤 가치있다 할만한 것들을 곁에 두고 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인구 축소 프로젝트라 하여 명단을 추려 명단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을 온갖 위험 속에 방치해두고도 그 사람들 모두가 끔찍한 형태의 전혀 인간답지 못한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루 하루가 고비인 생존경쟁에서 제대로 먹지 못해도 인간다움을 간직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그럼에도 프레시야는 우리가 보기에 일반적 인간적 인성에서 벗어나지 않는 인물이고 그녀의 할아버지 또한 마찬가지다. 하다못해 아직은 캐릭터가 불분명하긴 하지만 등에 동생과 융합이 된 '앨 캐피턴'조차 그의 마음 일부분은 이해가 간다. 희망은 가지기 때문에 생기는 거라고 했던 본문의 내용이 묘하게 마음 속에 자리잡는다.


 비슷한 시기에 일부분이 비슷한 부분이 있는 소설이 나온다는 게 신기하다. '스타터스'에서는 칩을 사람 뇌에 이식시켜 몸을 바꾸고 감시하거나 그것을 관리하는 회사에서 칩을 이식한 사람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을 시 폭발하게 하는 시스템이 있다고 하는데 이것과 비슷한 부분이 '퓨어'에서도 나온다.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바뀌어 버린 세상의 모습 뒤에 일어난 일을 말하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여러 사람들이 말하는 일들이 가까운 미래에 일어나는 일들이 종종 있듯이 이 소설들은 미래에 일어날 사건들을 예상해본 시나리오가 아닐까. 퓨어는 좀더 스토리가 촘촘하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문장구성력이 좋다는 것이 개인적인 감상이다.

 

 음모와 배반, 조종하는 사람과 그 안에 배치되어 있는 인물들이 엮어가는 이야기가 책을 순식간에 넘기고 다음 책을 열어보게 한다. 뒷 내용을 빨리 확인하고 싶어 책을 빠르게 넘기면서도 이야기가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