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 1 밀레니엄 (뿔) 2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뿔(웅진)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밀레니엄]은 정말 읽으면 읽을수록 심장이 떨리면서 서서히 중독된다. 다 읽고 나서도 주인공들이 궁금해서 안달나게 만드는 책이다. 특히 2부작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는 1부작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보다 더 복잡한 복선 위에 늘어져 있는 트릭 위로 인물관계도가 꼬여 복잡한 퍼즐을 풀어나간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수학적 난제까지 언급하며 스토리에 묘하게 접합하여 흐름을 이어간다. '불능'. 불가능한 방정식처럼 사회적 불능자 '리스베트'의 행적들은 독특한 형식들로 드러나고 과거와 현재를 이어 그녀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한 사람을 정의하기 위해 갖가지 난무한 에피소드들을 쏟아놓는다.

 

 살인자로 누명을 쓴 리스베트는 자신의 상황이 아무리 억울할지라도 그것 자체를 가지고 밝히기 위해 애를 쓴다기 보단 그녀가 죽인 것으로 알려진 미카엘 만큼이나 사회적 악에 대한 불타는 의협심과 순수한 정열을 가진 다그 스벤손과 그의 아내가 죽은 내막에 살라Zala라는 익명의 인물이 존재한다는 것에 더 관심을 가진다. 살라. 이 이름은 리스베트가 알고 있는 이름이었으니까.

 

 책 속 인물 중 누구보다도 여유롭고 누구보다 불사신 같은 존재 '리스베트'. 겉으로는 비교적 반사회적 인격 장애증을 앓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끔찍한 범죄에 대한 강한 반발심을 가진 누구보다 정의감에 넘치는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고 가장 좋아하는 주인공이다. 리스베트는 또 인물들 중 가장 믿음직스럽게 일처리를 하는 탁월한 인재다. 하지만 알다시피 그녀를 정의하는 사회적 도표에는 정신 박약, 심신 장애, 외톨이, 폭력적 성향, 위험.. 같은 단어들로 점철되어 있다.

 

 이는 또, 사회적 시스템의 허점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사회적 명성이 자자하고 여러 전문 저서를 출간했다고 해서 그들의 말들이 모두 신뢰가 있다고 할 수 없으며 그것이 또한 그들의 인격을 결정한다고 할 수도 없다. 리스베트를 정신 박약아로 정의한 의사와 상담가, 경찰, 선생, 동급생 등등. 그들이 리스베트라는 인물을 그런 식으로 판단했다고 해서 리스베트의 모든 것이 정의된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판단할 때 이는 무척이나 주관적이다. 그러니까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상황을 맞은 쌍방이 서로에게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는 건 인간인 이상 쉽지 않은 문제다. 이것은 인간이 가진 한계이니까.

 

 반면에 리스베트를 진심으로 대한 복싱 코치와 밈미, 아르만스키, 팔름그렌, 미카엘은 그녀가 미스테리하고 폭력적인 성향이 있지만 그녀의 분노는 항상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녀로써는 그에 맞썬 최대한의 방어로 표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리스베트가 그 어떤 변명을 하지 않았음에도 그녀에 대한 근원적인 믿음을 가진다.

 

 1부에서 미카엘은 같은 기자지만 선정적인 기자를 쓰면서 독자를 자극해서 신문을 팔아치우려 하는 기자들을 비판했듯이, 2부에서도 역시 어떤 인사든 만나기 쉬운 유리한 위치에 있는 기자들이 그 점을 이용해 나쁜 짓을 서슴 없이 하고도 한점 부끄러움 없이 기사에서는 울대를 세우고 불의를 비난하며 별 깊이 없이 갈겨대는 행동을 비판한다. 많은 기자들이 진짜 불의를 폭로해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다기 보단 아직 정확하지도 않은 정보와 마녀사냥처럼 상대를 지목해 그들의 모든 일상을 까발리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사실 또한 미카엘의 분통을 터뜨리게 한다. 마찬가지로 언론의 희생자가 된 리스베트는 자신과 관련됐다고 해서 함께 공격 당하는 밈미를 보며 그저 자신과 연관됐다는 이유만으로 고통을 당하는 밈미에 대한 죄책감을 지니게 된다.
 
 미카엘의 비판의 화살은 경찰 또한 벗어날 수 없다. 그런 교육을 전문적으로 받은 경찰이기 때문에 일반인보다 더 노련하게 사건을 풀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들에게 미카엘은 범죄자라고 경찰에게서 확정된 한 남자를 한 일반인 여자가 몇년간이나 고군분투하며 누명을 벗겨준 사례를 들며 경찰들이 가진 오만함을 비판한다.  

 

  어린 소녀들을 성노리개로 삼는 집단과 사회 상위층의 성구매자. 다른 사회적 폐단들도 널려 있기 때문에 여기에 예산을 써서 굳이 악의 뿌리를 뽑기 위해 힘을 쓰지 않는 정부 시스템, 그 허점이 가진 틈 속에 소외 당하는 피해자들이 있다.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이 항상 피해자가 된다. 그리하야 그 속에는 리스베트가 있다. 그녀는 연약했고 가난했다.
 
 리스베트의 입장에서만 보자면, 일단 그녀에게서 '모든 악'이 시작하던 그 때는 바로 가정 폭력에서부터다. 가정 폭력을 사회적 문제로 보지 않고 쌓여진 다른 일들도 많기에 귀찮아하는 정부 무리에 비해 그녀의 가슴 속에서 느끼는 상처와 절망의 크기는 엄청나다. 정부는 개인을 원하는 게 아니라 개인이 뭉쳐진 대중을 원한다. 개인은 힘이 없으니까. 뭉쳐진 대중 속에 외면 당한 리스베트는 아버지의 폭력에 의해 무자비하게 냉패개쳐진 가정과 모친의 무너진 모습을 보면서 가슴 속에 증오부터 키워냈다. 모친을 괴롭히는 부친을 죽이려는 딸. 이렇게만 보면 마치 차원을 뛰어넘은 신화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것처럼 낯설지만 리스베트의 입장을 정말로 이해한다면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다.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거식증에 걸린 주인공에게 애착을 느끼게끔 쓰는 작가도 있다면, '리스베트'라는 작은 체구의 여자를 사랑하게끔 작품을 쓴 스티크 라르손.  말광량이 삐삐의 열광적 팬이었던 그는 리스베트의 생김새를 어쩌면 삐삐에서 연상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삐삐는 영원히 그런 소녀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리스베트는 소녀의 이미지의 모습위에 누구든 접근 하기 힘든 경계막을 둘러친 분위기를 지니고 있긴 하지만 이는 그녀의 환경과 연결된 결과이다. 연약함과 강함을 동시에 지닌 여인 리스베트. 그녀라는 인물에게 작가는 의협심과 확고한 윤리관을 확립시켰다. 
 
 1권 156p - "여러분은 어떤 정당도 아니고, 어떤 노조 단체도 아니에요. 또 여러분 자신을 제외하곤 그 누구에게도 빚진 게 없지요. 하지만 여러분은 이 사회의 결함들을 겨냥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주저 없이 엿을 먹이죠. 그리고 때로는 이 세상에 변화를 가져오고도 싶어해요. 여러분은 스스로 냉소주의자나 허무주의자인 척하지만, 사실은 나름대로의 확고한 윤리가 있고, 오직 그것에 따라 이 잡지를 이끌어가고 있지요. 중략.. <밀레니엄>에는 어떤 영혼이 있어요.." 


 밀레니엄 속의 밀레니엄 지사에 대한 언급은 바로 이 책을 압축하는 내용이기도 하고 실제로도 이런 지사를 꿈꾸는 작가의 이상향을 작품 속에 드러낸 것 같다.

 - '밀레니엄' 소설 밖에서

  미국 드라마 중에 '밀레니엄'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세기말 광신적 범죄조직에 맞선 밀레니엄 그룹의 수사 기록을 담고 있는 시리즈로, 엽기적 살인사건, 연쇄살인, 우상숭배 등 다양하고 충격적인 범죄들을 다루고 있다고 한다. 크게 성공한 TV 시리즈 <엑스 파일>의 제작자 크리스 카터의 미스테리 스릴러 시리즈인데, 밀레니엄 소설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지만 범죄에 맞서서 해결해 나간다는 어떤 일부 요소가 닮아 있다.

 

 

 스웨덴에서는 벌써 이 책이 영화화 되어 나와 있다. (위) 표지 인물은 소설 속 리스베트와 매치 되는 느낌인데 (아래쪽) 미카엘은 아무래도.. 너무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밀레니엄3.jpg

 


    좀 느끼한 미카엘.. 역시 영화보다는 소설 속에서 더 많은 것을 상상해낼 수 있는 것 같다.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 캐릭터부터가 왠지 소설을 보면서 생각하고 있던 이미지에 부합되지 않는 듯. 밑에 포토 사진에 다시 등장한 리스베트 역시 생각하던 소녀 이미지와는 먼 듯하다. 영화보다는 소설에서 더 많은 매력을 발견할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다. 소설 속 내용들은 빈틈 없이 모두 각자 중요한 역할과 인상 깊은 에피소드들이 있다. 거기에서 골라서 추리고 요약한 영화 속에서 과연 얼마나 멋드러지게 완성시켰을지 궁금하긴 하다. 헐리우드판 영화도 개봉되었는데, 글쎄.. 내용이 어떨지 궁금하다.

 

 

밀레니엄.jpg

 <헐리우드판 밀레니엄>

 

 

 혼자 연상한 건, 프리즌 브레이크에는 모든 사건이 시작되는 계기와 끝에 '실라'라는 미스테리한 정체가 등장한다. 밀레니엄에서 등장하는 '살라'를 보고 프리즌 브레이크의 실라를 떠올린 건 우연이었을까. 모든 것의 시작과 끝에 등장하는 살라. 어쨌든 살라는 밀레니엄의 2부작에 등장한 정체니까. 뒤로 가면 아마 리스베트의 자매 카말라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할 듯 싶다. 너무 아쉬운 건 10부작을 계획해둔 작가가 3부작까지밖에 탈고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2부작을 읽고 나니 더 아쉬운 느낌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1부작보다 2부작이 더 재밌었다.

 

 나는 밀레니엄을 읽으면서 여러가지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어느 나라, 사회에서나 부정 부패, 비리, 결함들은 비슷한 양상으로 일어나나보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그것을 남용하고 힘 없는 자들을 농락하는 힘있는 자들이 있고 가정 폭력에 고통 받는 여성들이 있으며, 자신의 일이 아니면 일단 씹고 보는 언론과 대중이 존재하고 개인적인 문제와 공적인 문제를 구별 못하는 전문가가 있고...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한국 사회에도 존재하는 여러가지 부끄러운 자화상을 떠오르게 한다.

 

 나는 이 책에 별을 아무리 줘도 아깝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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