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 누구나 말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조준현 지음 / 카르페디엠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자본주의]는 자본주의라는 개념을 명확히 들여다보기 위한 책이다. 다소 공격적이고 표현이 과격한 부분도 있어 그 점이 주목을 끌게 하는 데 어떤 점은 너무 자기 주장이 강해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는지 의아한 부분도 조금 있었다.


 83p에서부터 이후의 몇페이지까지는 장하준의 [사다리 걷어차기]를 언급하며 그가 말한 보호주의에 대한 주장에 대한 강한 반박을 한다.  장하준은 "사다리를 타고 정상에 오른 사람이 그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는 것은 다른 이들이 그 뒤를 이어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수단을 빼앗아 버리는 행위로, 매우 잘 알려진 교활한 방법"이라는 문장으로 보호주의를 옹호했는데 이 책의 저자의 주장은 다르다. 

 그는 정책의 '누구'의 이익을 추구하는지 물어야 옳다고 말했다. 현실에서 자유무역 제도가 확립된 것은 산업자본가계급이 승리한 결과라고 말하며 보호무역에서 또한 다른 나라의 산업자본과 경쟁해야 하는 산업자본가계급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는 계급을 초월한 국민적 이익이라는 것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후진국을 예를 들며 자유무역을 통해 농산물이 수입되는 것을 옹호한다.


 아이티를 비롯한 많은 개발도상국들의 예를 들며 그들이 보호무역을 통해 자급자족을 한다고 해서 잘 사는 건 아니라며 비교 우위 이론에 대해 설명하는데 문제는, 그의 말대로라면 각자 다른 나라에서 생산해내는 물건들을 최대한 많은 선택의 기회를 가지고 교환을 이룰 때 집단과 사회, 국가와 민족이 더 행복할 수 있다고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경쟁에서 밀린 자국의 생산 체제가 약해져 결국 가격 경쟁 때문에 접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하나 둘 주 생산 관련 일을 접으면 결국 이 생산업은 자국에선 찾아볼 수 없어 무조건 외국의 생산물에 의지해야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는 것이 문제란 말이다. 장하준씨가 우려했던 것도 이것이었다.


 대책이 없으면 몽땅 하나 둘씩 다른 나라것에 의지하는 생산물이 많아질 것이고 그렇게 되다 보면 의지하는 나라와 사이가 나빠지거나 그 나라에 문제가 생기면 자국 내에 문제가 생기게 될 것이다. 아니면 그 생산업이 발전한 나라는 그걸 빌미로 불리한 무역을 하려고 할 가능성도 있다. 어째 그것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을까 의문이다. 기존의 질서가 깨어지면 그와 관련된 여러 세세한 것들이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니 변화는 그 모든 상황에 대한 대처와 마련이 우선 계획되어져야 한다.


 사실 생산 체계의 일이 한 가지씩 변화하면 서서히 그와 관련된 여러 가지 것들이 간접, 직접적인 형태로 영향을 받게 되있다.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생길지 누가 알겠는가. 그걸 사람이 데이터화해서 예상하기도 힘든 일이다. 만일 한국이 전적으로 일본의 물건에 의지해야 할 물품이 있다고 치면, 얼마전 발생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일본 지진과 원전 폭발에 따른 위험 요소들에서 어떻게 함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자유무역에 관해서는 저자의 논지는 생각해볼만할 논란이 아직 많이 있다.
 언제는 보호무역을 하다가 언제는 자유무역을 강요한다는 식의 이해가 역사적 사실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었다며 신랄하게 꼬집어 비난하기도 한다. 특히 206p에서도 장하준의 저서를 언급하며 신랄하게 비판한다. 저자의 비판은 조금 오버되지 않았나 생각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각자가 자신의 견해를 가지고 있을 텐데 어떤 특정 내용을 들먹이며 그것을 무지에서 비롯됐다느니 하는 말은 약간 감정에서 나온 인신공격인 느낌이 있어 좀 그랬다.


 가장 인상깊은 장은 제7장이었다.
 
 기업의 독점 문제에 대해서 언급되었을 때는 삼성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삼성의 비리를 알린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책이 1,2권까지 나왔음에도 삼성은 여전히 한국의 독보적인 기업이다. 기업세를 내기 싫어하는 이건희는 TV에서 볼 때는 쩔뚝이며 걸으며 약간은 노장의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주는데 그와 관련되어 나오는 기사들을 보면 아직까지도 장장한 것 같다. 이미지화를 통한 동정심 얻기인진 몰라도 그의 탐욕은 나이와 함께 성장한 듯 보인다.  


 '진실을 말한다면 백 사람 가운데 단 한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가진 미덕이 아니라 다른 아흔아홉 사람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30p라는 냉정한 저자의 말은 어째 보면 사실이기도 하고 어째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사람도 있고 안 그런 사람도 있다.는 생각이 더 옳은 듯 하다. 그러니까 미덕으로 성공한 사람도 희박하긴 하지만 있긴 있다. 그 점을 외면할 수는 없으니까.


 "자본주의의 생산력을 사람을 위해 사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산업생산 그 자체가 자연을 착취하고 환경을 파괴한다고 믿는다. 아마존의 열대우림이 파괴되는 현실을 곧잘 예로 든다. 그러나 많은 나라들에서 숲을 파괴하는 것은 땔감을 구하고자 하는 농민들이다."

  - 이 부분은 어떻게 저자가 단정할 수 있는 지 의문이다. 확실하게 알 수 없는 모호한 내용을 확신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저자는 장하준이 증거 없이 주장만 한다고 했지만 자신 또한 마찬가지다. 땔감을 구하고자 하는 농민들이 한 순간에 그렇게 환경을 파괴하는 것이 가능할까.. 숲이 파괴되는 치명적인 이유는 그저 나무를 베어내는 일 때문만이 아니다. 자연을 마음대로 착취하고 오염시켜도 상관 없다는 의식이 바탕이 되어 생산제로 사용하기 시작하면 한계가 없게 된다.



- "농민들이 스스로 새로운 사회 관계를 만들지 못했던 것은 어던 사회를 건설할 것인가에 대한 자신들만의 전망과 계획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민혁명의 과정에서 농민들이 부르주아계급을 지지한 것은 바로 부르주아지들에게서 그 전망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67p


 "프랑스혁명이 진행되는 동안 정작 총을 들고 싸운 사람은 부르주아지였을까? 당연히 아니다. 혁명의 최전선에서 무장으로 투쟁했던 것은 상퀼로트. 즉 귀족들이 입던 반바지를 입지 않고 긴 바지를 입은 무산계급의 노동대중들이었다. 그런데도 우리가 이 혁명을 부르주아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어도 그때까지는 부르주아지가 모든 근로계급의 이상을 대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혁명이 성공하고 그들 자신이 권력을 잡자마자 부르주아지가 가장 먼저 배신한 것은 바로 프롤레타리아트였다. -113p -

 67p, 113p에 대해선 공감하는 바가 컸다. 책의 표지에 나와 있는 카피를 보면 왠지 장하준의 책 표지에 나온 카피의 문구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비꼬아서 책 속에는 장하준의 주장을 꼬집는 내용들이 많다. 그럼에도 저자의 의견과 장하준이 주장한 내용들 중 같은 것을 추구하는 점이 많다는 점이 주목할 만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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