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시대
장윈 지음, 허유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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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천지간에 버려진 고아일 것이다. 나의 부모는 황허일것이다. 내 어머니 날 낳으실 적 흘린 피가 황톳빛이리라. 그 누런 피가 지금까지 흐르고 흘러 고원에 흐르는 모든 물줄기의 근원이 되었으리라..." -28p


 느리게 글을 쓰는 작가. 장윈. 요즘은 빠른 템포의 글이 많은 세대이고, 나는 그 세대에 태어난 세대다. 하지만 나는 빠른 템포의 글, 느린 템포의 글 모두 분야를 가리지 않고 글 속에 담긴 철학을 보고 작품과 작가를 좋아하는 편이다. 본문 중 느리게 쓰이는 글들이 고전이 많다고 명명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나는 고전을 좋아하는 편이니 느린 글에 익숙한 편이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시적이지만 서사와 이야기가 함께 공존한다. 톨스토이, 셰익스피어, 디킨스, 조지오웰, 까뮈, 체호프.. 등등 고전작가들 중에 제법 좋아하는 작가들이 많다.


 [길위의 시대]는 작가가 지금은 잊혀져 가고 있는 시적 낭만이 살아 있는 시대에 대한 망향(望鄕)이다. 그 시대가 작가에게는 고향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1980년대의 중국은 시적 열망과 동경이 가득한 시대였다. 중국의 현대문학의 분위기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사실을 찾을 수 있었다.


 1957∼1958년의 반우파 투쟁과 1966년부터 10년 동안 있었던 문화대혁명은 저우양을 비롯하여 마오쩌둥 문예 노선에 충실하였던 인물까지도 숙청을 당하는 등 문학계 전체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후 비판당했던 작가들이 대부분 명예회복되었고, 젊은 세대 작가들이 등장하여 문화대혁명 당시를 비롯하여 현실의 부정적인 측면을 예리하게 파헤친 작품들이 나왔다. 이후 1981년부터는 새로운 시기의 개혁운동을 고취시키는 작품들이 또 하나의 조류를 형성하였다. 즉, 1980년대 중반부터는 개방이라는 사회 분위기와 함께 문단에서도 다양한 창작방법과 조류가 대두되고 있다. - 계몽출판사 웹백과 인용


 장윈은 "’상실’이 내 소설의 주제이자 이미지이며... 내 소설의 운명을 결정한다. 1980년대는 거대한 시대였고, 그 뒤를 이은 1990년대는 철저하게 물질과 욕망을 좇고, 이상과 도의, 낭만 같은 것들은 모조리 포기한 시대였다."라고 말한다.


 그녀는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을 겪은 시대에 태어난 세대다. 시대의 혼란기와 그런 일상에서 벗어난 피난처로써의 문학은 한 소녀에게 커다란 위안을 주었다.


 1990년대에 갑작스러운 시대의 변화는 그녀에게 인간의 본성과 금기의 충돌, 청춘의 아름다움과 장렬함, 거짓말과 신뢰, 파멸과 고통, 생명의 비애, 자유에 대한 갈망 같은 ’시’가 상징하는 모든 것들의 상실되는 아픔을 가르쳐 주었다. 이런 감정들은 고스란히 [길위의 시대]에 드러난다.


 쳔상과 망허, 예러우라는 인물들을 통해서. 사실 쳔상이 샤오촨이 시인의 아들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아들을 미워하고 자신은 파멸되어 가는 장면만은 쉽게 감응하기 어려웠지만 이를 통해 빚어내는 비극이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나타내기 위해 설정된 것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된다.


 비극이 없으면 비장함도 없고, 비장함이 없다면 숭고함도 없다. 설봉이 위대한 까닭은 산등성이에 등산가의 신이 묻혀 있기 때문이다. 대해가 위대한 까닭은 산등성이에 등산가의 시신이 묻혀 있기 때문이다. 대해가 위대한 까닭은 곳곳에 선체의 잔해가 떠돌기 때문이다. 달 착륙이 위대한 까닭은 챌린저호가 폭발했기 때문이다. 인생이 위대한 까닭은 백발, 이별, 어찌할 수 없는 실패가 자리하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는 바닷가에 위치했다. 피안의 세계를 동경하는 수많은 용사가 사나운 물결 속에 줄을 이었기 때문에 백세에 빛나는 그리스 비극이 탄생하였다. 투쟁 이후의 실패와 성공 후의 목락을 담담히 인정하면 우리는 더욱 냉정하게 안정을 찾을 수 있다. 조금 더 대범해진다면 더 이상 폐허를 쫓아내지 않을 것이다. - 사색의 즐거움 중


 187p의 ’장씨 집안의 한 가장이 양귀비에 취해 가산을 탕진하자 원래 장 씨 집안에서 머슴살이를 하던 이 씨 집안의 운명이 뒤바뀌게 된 것이다. 주인이 땅을 팔고 머슴이 땅을 사니, 주인과 머슴의 처지가 하루아침에 역전되었다.’
 - 펄벅의 대지의 줄거리가 떠오르게 하는 본문내용이기도 했다.


 그래도 한 마을을 일으켜세웠던 장씨 집안이었는데 그 집안이 몰락하고 나중에는 흔적조차 남지 않는 모습, 젊은 아내가 죽었지만 제대로 안장하지도 못해 후에 떠도는 유골을 아들을 통해 찾아 오게 한 노인의 이야기, 자신의 친고모부에 의해 ’사람시장’에 팔렸고, 거기서 ’멍석말이’ 방식으로 한 남자에 팔린 노파의 이야기 등 베이구 산, 평황청, 홍징텐, 사후커우를 돌며 예러우와 망허가 들은 내용들이다.


 1980년대 중국문학의 주요한 화두는 바로 인성, 이성, 주체성을 강조한 것이었다. 여성문학, 여성주의비평, 성별문화, 여성해방에 관한 주제가 가장 활발히 이루어졌던 때이기도 하다. 현지 답사 노트에는 그런 인식과 형상이 잘 나타나 있다.

      

 성숙함이란 밝게 빛나지만 자극적이지 않은 빛, 매끄럽고 달콤하지만 느끼하지 않은 소리이다. 더 이상 다른 이의 말을 엿듣고 낯빛을 살필 필요가 없이 침착한 모습이며, 주위에 호소를 하지 않아도 되는 당당함이다. 또한 허장성세할 필요가 없이 튼실하며,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지만 가파르거나 험준하지도 않은 높이라고 할 수 있다. - 사색의 향기 중


 장윈은 이런 성숙함을 유지하는 21세기의 흔치 않은 작가인 것 같다.


 1980년대 중국 작가들 - 예자오옌, 위화, 쑤퉁, 거훼이, 쑨간루 등과 80년대 중반기에 이미 명성이 자자했던 마위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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