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주르, 뚜르 - 제1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40
한윤섭 지음, 김진화 그림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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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아이들을 위주로 나온 책은 어떤 책일까? 궁금했다. 컴퓨터와 친한 아이들이 책을 보기나 할까 싶은데, 그런 중에 어른의 시선으로 지은 책은 더더욱 보지 않을 듯했다. 지루하고 가르치려드는 책보단 아무래도 재밌고 보여지는 식의 책을 읽지 않을까. 친구와의 우정을 쌓는 것보다 유학 가서 미래를 위한 스펙을 쌓는 일이 더 중요시되고 있는 요즘 아이들이 책을 통해 우정의 중요성을 깨닫고 분단 문제와 조국에 대한 가치관과 정체성을 확립시키는 게 가능이나 한 일일까 생각됐다.
 

 

 사실, 그런 건 열권의 책을 읽었다 하더라도 실전에서 몸과 마음으로 부딪히면서 겪는 것보다는 마음에 와닿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책을 읽지도 않고, 경험적인 일도 없다면 그 어떤 사회적 이슈든 문제의식을 가지기가 힘들것이고 고로, 자신의 일 밖에는 관심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만큼 시야도 좁아질 것이고 마음도 좁아질 것이다.

 

 

 지금 사회가 그렇게 되어가고 있고, 그런 사회 속에서의 개인들은 사회에 휩쓸려 극적인 이기주의적 행태가 만발하는 경우가 많다. 가족조차도 울타리가 되지 않고 오로지 구성원 개인들의 위주로 각자가 자기밖에 모르는 상태로 자라게끔 알게 모르게 의식이 주입되고 그들은 당연하게 그런 상태로 사회구성원이 된다.

 

 

 아이들도 자기만 알고 어른들도 자기만 안다. 모두 제각기 자기 이익에 맞게 모든 것을 생각하고 거기에서 구성원끼리 뜻이 맞지 않으면 다툼이 일어난다. 이런 다툼은 다소 비극적인 결말을 초래하기도 하는데, 어쨌든 최소로 마무리지어봤자 서로간의 단절이라는 사회적 문제점을 놓는다.

 

 

 모두가 자기만 알고 자기 이익에 맞게 자기만 편하게 살고, 자기만 알아달라고 할때, 이것이 집단이 된다면 무시무시한 것이다. 개별이기집단. 전혀 타인에 대한 손톱 만큼의 배려나 이해가 없다고 칠 때 사회는 그것 자체만으로도 타인이 지옥이 될 것이다.

 

 

 사회적 이슈가 될만한 사건들을 훑어보면 이외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단절과 소통 결여로 인한 비극적인 결과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자본주의 시대에 혹여 가난해질까, 손해볼까 싶어 비참하기 싫어서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겉만 번지리리한 돈이나 명예를 가질 미래의 직업을 구할 스펙 쌓기에 바빠 아무리 뭐라고 해도 타인과의 감성적인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이 그들의 귀에는 먼나라 남의 일처럼 들려버리는 수가 있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책을 읽고 우정의 중요성을 깨닫고 실제로 친구를 사귀면서 가치와 의미를 되새긴다,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직접 자신의 의견을 가지면서 고민해본다,고 하면 정말 그 아이는  멋진 아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1을 택할 때, 2를 택하는 용기와 2의 힘을 아는 아이이기 때문이다.

 

 '봉주르, 뚜르'에는 아버지의 일로 인해 프랑스의 파리에서 살다가 다시 '뚜르'라는 도시에 가서 살게 되는 봉주가 나온다. 봉주. 프랑스의 인삿말과 닮았다. 그만큼 왠지 프랑스에서의 봉주는 외국인이지만 낯설지가 않다. 이는 어쩌면 봉주에게는 의미 깊은 일을 겪게 될 도시라는 사실이 암시되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사온 첫날, 봉주는 자신의 방 책상에 비스듬하게 고개를 꺽어야만 보이는 '사랑하는 나의 조국, 사랑하는 나의 가족', '살아야 한다' 라는 글귀를 보게 된다. 이 나라에서 보는 한글은 왠지 낯설었고, 글귀가 풍기는 뉘앙스 또한 왠지 심상치 않

다고 생각한 봉주는 이 글을 쓴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글을 쓴 사람을 찾기 위해 홀로 추리도 해보고 집주인 할아버지에게도 묻지만, 그 방에 한국인이 머물 가능성이 없다는 대답만 듣게 된다.

 

 

 그러는 와중에 봉주는 새로운 학교에서 수업을 받게 되는데, 노랑머리로 염색한 일본인 아이 토시를 만난다. 토시는 왠지 모르게 퉁명스럽고 봉주의 인사에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봉주와 토시의 첫만남은 이랬다. 하지만 토시는 봉주를 처음 보았을 때 분명 반가웠을 것이다. 단지 개인사정 때문에 봉주와 가까워지는 것만은 피해야 했다. 토시는 북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북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할 수 없는 토시는 삼촌이 책상위에 남긴 글귀처럼 조국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지기도 힘든 나이였다.

 

 

 그럼에도 가족들이 위태로워질수도 있기 때문에 가족 이외의 사람에게는 비밀을 간직해야 하고 마음껏 사귀고 싶은 친구와 사귈수도 없다. 봉주가 과제로 한국에 대한 발표를 할때 프랑스 아이가 묻는다. 넌 북한과 남한 중 어디에서 온 거냐고. 봉주는 자신있게 자신은 남한에서 왔다고 말하며 북한 사람들은 가난하고 상황이 못되기 때문에 올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자 토시는 봉주의 말에 반박하며 얼마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실랑이를 한다. 딱딱하고 전투적인 현 분단상황에 대한 시선을 이 책에선 순수한 눈 그대로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 보듯이 볼 수 있게 한다.

 

 

 너무 깊게 들어가서 자칫 무거워지지 않고 봉주와 토시의 잔잔한 우정이 시작되는 과정을 그리면서 감성적인 부분을 강조한다. 안타깝게도 그들이 계속 만나진 못하지만 여운을 남긴 우정은 그들의 가슴에 영원히 남는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교훈을 주려는 목적은 전혀 없다고 썼다. 마침 아들이 태어났고 아이들이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었기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이 책이 선사해주는 재미와 잔잔한 감동, 진정성은 아이들에게만 주는 것은 아닌듯 싶다.
 


 '친구가 되려는 순간, 우리는 헤어져야 했다.. 라는 문장처럼 마지막은 여운을 남기지만 아쉬움은 없었다.  단지 또다른 토시 같은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분단현실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은 또 얼마나 안타까운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지 생각해보니 덤덤한 기분이었다.

 

 

 안녕.. 봉주와 토시는 비록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했지만 이 책 제목의 어감처럼 인사를 간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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