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의 한 다스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문화인류학, 개정판 지식여행자 7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이현우 감수 / 마음산책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대개의 사람들은 자기와 자기민족, 자기나라를 중심으로 세계가 돌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동설과 천동설의 만남보다는 천동설끼리의 충돌이 태반이다."

 불운의 기운을 담은 서양의 '13'에 비해 중국과 일본에서 '13'은 신성한 숫자로 쓰인다. 한 다스라면 12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마녀에게 한 다스는 13개라고 한다. 이렇듯 같은 숫자는 각 나라에 따라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 이 간단한 이야기는 이 책 전체의 주제를 요약하기도 한다.

 '요네하라 마리'씨는 러시아 통역가로 그녀의 직업에서 느꼈던 일들과 재미있는 일화, 통역가로써 성장하는 순간들, 세계인으로써, 한 나라의 국민으로써 느낄 수 있는 상대적 이해관계, 언어를 통해 그것을 알지 못하면 알 수 없는 이해와 감정들을 흥미진진하고 그녀의 언어로 전혀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해준다.


  그녀의 많은 이야기들에는 일본의 역사가 종종 등장하는데, 제국주의 열강에 휩쓸려 한참 침략전쟁에 눈이 멀었던 일본군도 한때는 소련군에게 포로로 잡혀 많은 수의 일본인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자로 일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마리는 일본인이므로 자신의 나라 사람들의 전체적인 특성을 한국인과는 다른 시선으로 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인'하면 울컥 악감정부터 솟아나는 일부 한국인들에 비해 비교적 객관적으로 일본인을 바라보는 마리씨는 일본 또한 다른 아시아들을 침략했던 사실들을 꼬집어 비난하기도 한다.

 어쨌든 소련군은 자국의 필요하에 일본 포로들을 노동력으로 썼고 일본의 거듭되는 포로 반환 요구도 무시했다. 그런 와중에 이지메라는 것이 일본인의 특성이었는지 포로인 가운데에서도 약하고 비실비실한 한 남성이 동료들에게 심한 이지메를 당했다. 일본인에게는 흔한 장면이었을지 모르나 소련의 한 소장에게는 전혀 익숙하지 못한 장면이었고 그는 이지메를 당하던 남자를 불쌍히 보고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하인으로 쓰게 된다.

 이리 하여 하루하루가 고난의 연속이었던 남자는 편안하게 지낼 수 있게 되고 소장의 은혜를 마음 속 깊이 간직한다. 왜, 옛말에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고 했다고도 하는데 하물며, 이 일본인은 이 소련 소장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으로 보였기에 얼마나 하해와 같은 고마움을 느끼지 않았겠는가. 

 뒤에 포로 반환으로 인해 본국으로 돌아가게 된 남자를 마중까지 나올 정도로 정이 깊이 든 소련의 소장은 이 날이 둘의 마지막 만남이라는 것은 몰랐다. 그렇게 본국으로 돌아온 남자는 이런일 저런일 끝에 사장이 되고 빌딩 몇채를 가진 성공한 사업가로 변신한다. 그는 성공한 후 소련의 소장을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찾았지만, 그가 죽고 그의 부인과 자식들만 남았음을 알게 된다. 그는 그들을 일본으로 초대해 최고의 관광과 환상적인 자신의 호텔에서 맘껏 즐길 수 있게 해준다. 그 호텔 이름이 '러브 호텔'이었으나 그 날은 다른 손님도 받지 않고 최고급 시설과 인테리어로 장식된 호텔이었으니 이 러시아 가족들은 그것이 언어자체가 뜻하는 '러브호텔'의 이미지를 생각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단지 최고급의 호텔이라 생각했을 뿐.

 그녀가 통역일을 하면서 겪는 재미난 일상적인 에피소드로는 다른 나라 언어가 자국의 언어로 해석하면 하체를 향한 말들과 비슷한 발음이 난다는 것에서 오는 난처함도 있다. 그럴땐 통역을 해야 할지, 완곡히 표현해야 할지 망설이는데, 망설일 수 있는 시간은 단 몇 초 밖에 없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실시간 이루어지는 대화들을 실시간 바로바로 통역을 해야 하는 것이 그녀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이런 단락단락의 에피소드와 이야기들은 이 책을 맛깔난 유머를 높이는 데 한 몫 단단히 한다. 그저 언어로써만이 갈리는 나라들의 특성 뿐 아니라 각 나라의 음식문화, 같은 걸 보고도 다른 생각을 하는 데 오는 가치관 문화들이 만들어내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아닌 웃긴 이야기에서 저자 '마리씨'는 그 사이 사이의 틈을 발견해내 틈을 통해 상대적 시각을 가지고 문화를 바라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문화 이야기라면 이 책이 아무리 두껍던들, 2권, 3권... 식으로 연재된다고 하더라도 질리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생리현상은 신분, 나이, 직업, 성을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 그런 보편적인 걸 통해서 웃음을 발할 수 있는 책이 바로 '마녀의 한다스'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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