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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없다 - 사랑, 그 불가능에 관한 기록
잉겔로레 에버펠트 지음, 강희진 옮김 / 미래의창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사랑은 없다' 라는 다소 염세주의적 시각일 것 같은 제목에서 보듯이 이 책을 읽기 전에 고민해보라. 비판의식 없이 이 책을 읽다보면 세상이 무척 허무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부일처제'가 본능에 위배되는 것이며 남자들에게 선택권을 준다면 모두가 일부다처제를 택할 것이라고 하는 말은 무척이나 그럴듯하다. 반대로 여자 또한 그러지 않겠는가. 그런데 여자보다 남자들의 바람기가 더 활발한 이유가 난자와 정자수의 차이라니. 즉, 바람기는 자기의 피를 받은 자손을 퍼뜨리기 위한 본능이란다.

 여자들은 일정한 난자수를 갖고 태어나는데 이는 일생동안 자신의 자손을 낳을수 있는 기회의 수다. 그렇게 하여 임신을 하면서 겪게 되는 대가와 모성애로 치장한 보호본능에 의해 남성보다 여유가 없다는 이유에서 남성의 바람기에 대한 설명이 확립된다. 게다가 남자는 육체적인 배신을 더 용서할 수 없다고 하는 반면 여자는 정신적인 배신을 참을 수 없다고 한다. 이것 또한 저자는 그럴 듯한 논거들을 제시한다. 그만큼 남자들은 감정보다는 육체적이고 여자들은 육체보다는 감정적이란다. 마치 잡지같은 곳에서 보는 내용같지 않은가. 남성과 여성의 사랑에 대한 환상을 싸그리 접어두고 이성적인 뇌를 꺼내어 생각해보게끔 만드는 [사랑은 없다].

 지금 이 책을 읽는 순간은 거부하고 싶어도 수긍되는 사실들이 많다. 그럼에도 실생활에서 사랑에 눈이 멀다보면 이 책의 내용이 아무리 사실적이고 경험적이며 통계적이라 할지라도 '나는 사랑을 믿네.'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하지만 여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 책은 저 먼 옛날 이집트의 파라오의 여자에서부터 현재로 거슬러오며 인간과 다른 종의 동물까지 1:1의 연인과 1:다수의 연인들을 살펴보면서 종의 구분없이 사회를 이루는 모든 생명체들의 많은 수가 한 사람을 바라보며 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실험적 사실들로 확인한다.

 '질투, 정절, 결혼 같은 개념들도 알고 보면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라고 주장하는 저자의 말에 의하면 여자는 자신의 미래와 자신의 아이의 미래를 위해 일부일처제를 선호하며, 예부터 본능에 충실한 인간들의 문란한 성에 의해 사건사고가 많아지자 종교와 국가에서는 법적, 공적으로 개인의 사생활에 침범하여 관통죄를 만들어 사람들을 구속했다. 그러나 남녀차별이 심한 곳에는 여자의 관통죄는 매우 엄히 다스리는 한편, 남자의 관통죄는 비교해봤을 때 약한 편이다. 사람들은 남녀가 바람이 나면 바람난 남자보다 바람난 여자에게 더 욕을 퍼붓고 매정한 태도를 보인다. 특히 이런 태도는 지금 세대보다 예전 세대 사람이 더 강한 편이다. 그들 세대의 여자들보다 요즘 세대 여자들이 조금더 남녀차별을 덜 받는 까닭일께다.

 우리가 꿈꾸고 위대해마지 않는 사랑 이야기조차 이 책에서 거론되는 범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로미오와 줄리엣', '트리스탄과 이졸데' 사람들은 이들의 사랑을 보며 안타까워했고 또 짧은 순간이었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우며 사랑했던 이들을 찬양했다. 그래서 위대한 문학이지만 마치 실존한 인물처럼 생생히 남아 몇세기를 걸쳐서도 여전히 그 위상을 드높인다. 그런 남녀의 사랑이 짧았기 때문에 가능했고, 그들이 그때 죽지 않고 살아남아 둘이 함께 해플리 에버하게 살았다면, 과연 판타지한 사랑이 지속됐을까. 저자는 의문을 던진다.

 이런 것쯤은 저자의 의견이고, 이를 읽은 사람들이 생각권을 선택하는 거라 치자. 다른 생물종과 인간을 비교한 부분에서는 인간도 동물이라는 점에서 그럴 듯한 의견이 더 많이 보인다. 97% 유전자가 일치한다는 침팬지는 사람처럼 질투를 하고 치장을 하며 바람도 핀다고 한다. 그들이 인간과 같은 점이 많기 때문에 사람들은 마치 우리를 흉내내는 듯한 그들의 행위를 보며 신기해하고 웃기도 한다. 그런 그들은 그래도 지켜야 할 선은 결코 넘지 않는단다. 근친상간이나 수많은 폭력을 일삼는 인간에 비해 어떤 점에선 더 괜찮은 생명종이지 않나 생각이 든다. 그런 그들을 보며 우리는 종족 번식이라고 하지 인간네 삶처럼 그들에게 '삶'이라는 단어를 붙이지 않는다. 어쩌면 그들보다 언어감각과 몇가지 감각이 더 뛰어나다는 점에서 우월성을 지닌 인간의 눈으로 그들을 평가하는 게 정당한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많은 생명종들이 바람을 피운다고 한다. 이유는? 본능에 내재되어 있는 종족 번식을 위하여.

 흥미로운 점은 고귀하고 순결의 상징이라 여기며 평생 일부일처제로 산다고 생각했었던 '백조'들조차 유전자 검사를 해보니 같은 둥지의 새끼들의 일부분이 수컷과 유전자가 틀리다고 나왔다고 한다. 그래도 희박하게나마 3퍼센트 정도의 동물들은 일부일처제로 평생을 해로한다고 하니 희망적인가..

 아직 불타는 사랑을 경험해보지 못한 나로써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환상과 긍정적인 심상이 많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서 말하는 사랑은 없다!라는 주장에 반박하는 입장에서 책을 읽고자 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연관되는 여러가지 상황에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 논거들을 열거해나간 이 책을 읽다 보면 나 또한 이 책의 많은 부분에 수긍하면서도 모든 부분을 수긍하지 못하게 하는 사실들이 있다. 몇주전, UCC동영상에 나온 영상들이다. 고양이 한마리가 죽었는데 계속해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나머지 고양이 한마리의 모습과 도로 중간에 죽은 개를 다른 개 한마리가 구하기 위해 수많은 차들 사이를 헤치며 죽은 개를 물고 안전한 보도에 끌고 오는 장면이었다. 동물들은 종족 번식을 위해 본능적으로 움직인다는 주장에 비해 UCC에서 보여지는 동물들은 너무나도 감정적인 모습이 아닌가. 간혹 가다 이런 감동스런 장면을 목격할 때가 있다. 동물인 사람에게조차 말이다. 그런 장면을 보면서 그들의 관계를 맺는 사이에 빚어지는 것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라 설명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을 '본능에 내재된 종족 번식'으로 대체하기엔 아직도 설명되지 않는 인상 깊은 장면들의 진실이 일부분 남아 있다. 그럼에 믿고 안 믿고를 떠나 상황에 따라 자신의 가치판단에 따른 선택이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게다가 책에서도 언급을 피했듯이 게이와 레지비언에 대해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 문제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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