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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의 동행
미치 앨봄 지음, 이수경 옮김 / 살림 / 2010년 3월
평점 :
[슬픔아, 내게 가르쳐 다오. ]
나는 신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그리고 신의 자녀로써 일한다는 사람도 많이 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 속에 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믿은 적은 별로 없었다. 아쉽게도 나는 그런 면에서 신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을 만나본 이 책의 주인공처럼 운이 좋은 편은 못되었다. 신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중에는 신을 팔아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사람을 더 많이 보았고, 신을 자녀로써 일한다는 사람중에는 신을 내세워 자기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사람이 더 많았다. 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신을 믿는 사람이라면 내면이 자비와 사랑으로 가득차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은 권력으로 사람들을 지배하려 하지도, 과하게 물질적 욕심을 취하는 것도 안된다고 말이다. 지금의 나는 무신론자나 회의론자에 가깝긴 하지만 다양한 종교들에 대해서 관대한 편이고 호기심도 있다. 사실 종교 그 자체보다는 사람이 종교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니까.
누군가는 신은 죽었다라고 말했고 어떤 사람은 신은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는 시대에서 착한 종교인으로써 현명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책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인물이었다. 내게 힘든 일이 너무 많아서, 바빠서, 신이 있다고 믿기에는 세상은 너무 험악해져 있어 마음에 믿음을 둘 곳이 없었다. 마치 못된 사람은 더 잘 살고 행복해하는 것 같고 착한 사람은 못 살고 더 불행해지는 것 같았다. 게다가 착한 사람은 더 빨리 죽는 것 같았다. 이래저래 마음이 심란했다. 어느 순간은 믿을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는 사람중에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일반인보다 더 교활한 사람이 많았고 남에게 피해를 주기도 했으며 절에서는 음흉한 마음을 품은 땡중이 표나게 돈을 요구하며 성불하라고도 했다. 모든 종교에서는 돈을 요구하며 건물과 자기네들의 배만 채우는 일이 잦아졌다.
그런데 웃긴 건 가장 힘든 일이 있을 때 마음 속으로 도대체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는 거냐고. 신에게 원망하고 있거나 무언가 결과가 나오기 전에 떨리는 마음을 안고 제발, 제발 꼭 되게 해달라고 신에게 빌고 있다는 것이다. 달리 무언가 의지할 상대가 없어서이기도 했고 나를 전적으로 자비와 사랑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상대는 신밖에 없다는 생각이 어쩌면 무의식의 세계에 존재하고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생각보다 약하다. 특히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거나 무언가를 잃었을 때는. 그때는 무언가라도 붙잡고 싶은 것이 인간이며 신이 없다고 하기에는 삶이 너무 견디기 어려울 때가 있는 법이다. 그러니 신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인간에게는 위안이 되는 게 사실이다.
[8년의 동행]이라는 책을 보고 느낀 점은 종교인에 관해서 나의 시선이 달라진 것이 아니다. 나는 여전히 회의론자이다. 그러나 렙과 헨리의 삶의 형태는 내 마음 속에 있는 무언가를 물컹하게 만들었다. 그들의 믿음을 통해서 인간에 대한 선과 희망을 볼 수 있었다. 매일같이 몇번이나 실망하게 만드는 인간들에게서 과연 희망을 확인할 수 있을까.하는 마음이 들때도 있지만 렙과 헨리의 모습에서 한 가지 답은 찾을 수 있었다. 극히 소수이긴 하지만 렙과 헨리같은 사람도 있다고. 그러니 조금이라도 위안을 얻고 힘을 내자고. 어쩌면 내 삶의 일부분도 조금이나마 세상에 빛을 보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왕이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서로를 도와가며 생을 사는 게 고루고루 좋지 않을까. 지옥과 천국의 다른 점이 서로 돕고 안 돕고의 차이라고 본문 어느 부분에도 나오지 않았나. 렙의 삶을 들여다보면 어떻게 사는 삶이 마지막 순간에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는지 느끼게 해준다.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믿음을 가지는 것이 결코 소홀하고 헛된 일이 아님을. 많은 사람들이 삶을 살면서 공허감을 느끼는 것은 이 셋의 조화가 이루어지지 못해서가 아닐까.
어쩌면 자본주의라는 물질시대에서 이 책이 조금 진부한 스토리를 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진부한 것이 가장 진실이며 아름다운 것이다. 꼬집어 뜯는 코미디로 각본,감독을 잘하는 우디 앨런의 말이기도 하다.
지난 몇년 간 읽은 신과 믿음에 관한 책으로 가장 생각나는 게 윌리엄 폴 영의 [오두막]과 닐 도날드 월시의 [신과 집으로]다. 그들 책에선 나름대로 선과 악이 내재되어 있는 삶의 모순에 대한 궁금증을 신의 대답이라면 어떻게 설명해줄 수 있을지 작가들 나름의 견해로 밝히고 있다. 책을 읽을 당시에는 그들의 말들이 매우 감동스럽게 가슴에 남긴 하지만 사실 그보다는 실질적으로 내가 부대끼며 살고 있는 인간에게서 희망을 찾고 싶은 게 솔직한 나의 소망이다.
[8년의 동행]에서 저자는 각기 다른 두 종교인을 보며 믿음과 삶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간다. 헨리는 역사적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미션]에서 나왔던 죄를 지었으나 더 독실한 믿음을 지니고 사랑과 자비를 위해 옳은 일을 하게 되는 로버트 드니로가 맡은 역할 '로드리고 멘도자'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제레미 아이언스가 맡았던 '가브리엘 신부'를 빼놓기가 서운하겠지. 말할 필요도 없이 내게 감동을 주었던 인물이었다. 그를 보면서 모든 종교인들이 가브리엘 신부(렙 또한 마찬가지) 정도였다면 세상은 지금 180도정도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영화를 보고 드는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8년의 동행]에서 렙이 말하던 '성스러운 공동체'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바른 길로 가는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고 했나. 헨리은 옛날에 렙이라고 부르기도 했단다.
나는 기쁨과 함께 일 마일을 걸었네
그녀는 내내 이야기를 재잘댔네
하지만 나는 조금도 더 지혜로워지지 않았네
그 모든 말을 다 듣고 나서도.
나는 슬픔과 일 마일을 걸었네
그녀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네
하지만, 아, 나는 그녀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네
슬픔이 나와 동행했을 때
- 로버트 브라우닝 해밀턴 -
이 시를 보고 나면 내 삶에서도 배우는 것이 있으니 그래도 그리 절망적이진 않은 것 같다. 종교에 대한 믿음을 말하고 있지만 나는 종교보다는 종교인에게 더 관심을 가지고 이 책을 보았다. 솔직히 신에 대한 것이라면 누구도 정확하게 알고 있진 않으니까 믿는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사람에 관해서라면 그 사람의 생애, 언어, 감각, 사상을 통해서 무언가를 깨달을 수도 있고 그를 좋아하게 될 수도 있다. 내 생각엔 렙이 저자에게 추도사를 부탁해서 깨달음을 얻은 것은 미치 뿐만이 아닌 것 같다. 렙 또한 미치를 통해 자신의 믿음을 확인함으로써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 아닐까. 더욱 더 믿음을 굳힐 수 있었고 말이다. 렙은 죽었지만 책을 통해 그의 정신은 영원히 살아있다. 그리고 나는 그의 유머감각과 음악감각을 잊지 못할 것 같다. 헨리 또한 종교인이지만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인물이다. 몇번이나 인간의 나약한 면에 유혹 당했지만 결국 평범한 사람들보다 바른 길로 접어들은 그의 모습이 왠지 더 공감이 된다고나 할까. 해봤으니 그것이 얼마나 나쁜 것인지 알고, 당해봤으니 그것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 아니 그는 불쌍한 사람들을 더 가슴 깊이 공감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헨리가 더 편하고 그에게서 희망을 찾는다.
책이니까 이런 인물이 있지.하고 약간 실망스럽다면 이들이 실화 속 인물이라는 것을 기억해두리라. 그리고 나와 같은 시대를 살기도 했던 사람들이라고. 세계시민을 꿈꾸는 나이니 언젠가 여행 중에 그들이 살았던 곳을 스쳐갈지도 모르리라. 어두운 것을 보면 계속 어두운 것들만 생각나듯이 밝은 것을 보면 점점 밝은 것들이 생각난다. 아예 희망을 포기하는 것보다는 하나씩 사소한 일에서라도 희망을 찾아봄이 어떨지 떠올려보며 잘 여물은 책 하나 덮어 품속에 안아본다.


